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2015년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대중창업, 만중창신’이라는 말로 중국의 산업 발전 방향을 선포했다. 모든 대중이 창업할 수 있게 하고, 그들 모두가 혁신에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3.5일마다 ‘유니콘’ 탄생
놀라운 것은 이 말이 그저 표어에 그치지 않고 착실히 실행되면서 중국 경제에 기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창업 관련 평가는 기관마다 다르고 평가하는 방법도 다양해 쉽게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1235억 원) 이상의 미상장 스타트업을 의미하는 ‘유니콘’의 수로 국가나 도시의 창업 지수를 표현할 수 있다.
중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후룬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유니콘은 2018년 2분기 기준 약 162개다. 3개에 불과한 한국에 비해 중국의 창업 열풍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수치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만 52개의 스타트업이 유니콘에 이름을 올렸다. 3.5일에 하나 꼴로 ‘스타 기업’이 태어난 셈이다.
현재 중국의 유니콘 숫자는 미국에 이어 2위다. 중국 전체 유니콘의 43%가 몰려있는 베이징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뉴욕, 영국의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유니콘이 많은 창업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중국 유니콘의 수는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유니콘을 산업별로 분석하면 인터넷 기업이 약 25%로 1위를 차지한다. 2위가 온라인 금융 기업(21%), 3위가 엔터테인멘트 기업(14%)이며, 헬스케어와 부동산, 물류, 빅데이터 같은 산업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온라인 금융도 넓은 의미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산업으로 본다면 결국 중국에서는 인터넷 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로 꼽히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업체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창업 성공 돕는 다섯 ‘엔젤’
중국은 어떻게 창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보통 벤처 투자자를 일컫는 ‘엔젤(천사)’에 빗대 설명하고 싶다. 첫 번째 엔젤은 절박한 정부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2001년 110만 명 수준이었던 대학 졸업생은 2016년 기준 76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최근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 정부는 창업을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주목했다.
두 번째 엔젤은 급성장한 중국의 벤처 투자 자본, 즉 벤처캐피털이다. 글로벌 기술시장 분석회사인 CB인사이트와 머니트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중국은 스타트업에 710억 달러(약 79조7685억 원)를 투자해 740억 달러(약 83조1390억 원)를 투자한 미국에 근접했다.
특히 투자 규모가 연간 50%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조만간 미국의 투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한번에 투자하는 규모가 크고(건당 투자액이 미국의 1.7배 수준) 투자 진행 속도도 매우 빨라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에게 적절한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속한 칭화대 전자공학과의 왕위 교수가 설립한 디파이(Deephi)라는 인공지능(AI) 칩 기반의 스타트업은 불과 2년도 안 돼 1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고, 조만간 유니콘 편입을 앞두고 있다.
이런 과감한 결정과 공격적인 투자가 벤처 투자에서 가장 중요하고 배워야할 부분이다. 매출이 발생해 자립하기까지 약 3년 정도의 ‘암흑기’를 보내야 하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에게 빠르고 과감한 투자는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세 번째 엔젤은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의 IT 공룡들이다. 이들 기업은 새로운 기술을 가진 신규 기업을 발굴해 적극적으로 지분 참여를 하고 있다. 직접 벤처투자를 하기도 한다. 중국 인터넷 매체인 제몐(界面)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비상장 인터넷기업 상위 30개사(기업가치 기준) 가운데 80%가 BAT의 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화권 유니콘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중국의 유니콘에 투자한 자본 규모에서 각각 2위와 6위에 랭크됐다.
이 같은 대기업의 행보는 단순히 후발 스타트업의 후견인이 된다는 의미를 넘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IT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수많은 현금을 유보금으로 쌓아 놓고 투자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국내 대기업에게는 큰 시사점이 아닐 수 없다.
네 번째 엔젤은 13억 명에 이르는 중국의 인구다. 거대한 내수 시장이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천군만마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스타트업에 대한 기업 가치 평가액은 한국 스타트업의 약 10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일한 기술로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 한국 기업이 100억 원의 가치로 평가받는다면 중국 기업은 1000억 원 정도로 평가된다는 뜻이다.
이런 가치 평가의 기반은 시장 규모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중국 기업들은 내수를 목표로 상품을 개발하면 되지만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은 초기부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생존하기가 힘들다. 현재 중국 기업 중 42개가 뉴욕 증시에, 84개가 나스닥(NASDAQ)에 상장돼 있다. 우리나라는 KT와 SK텔레콤, 라인(LINE) 등 9개 회사가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다.
마지막 엔젤은 창업에 뛰어드는 엄청난 규모의 우수한 인력이다. 현재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혁신 미래기술 칩 연구센터’에서는 디파이를 포함해 6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났거나 준비 중이다.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그 수를 더욱 늘리는 것이 연구센터의 목표다. ‘대중창업, 만중창신’이 중국의 현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