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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로켓의 심장’ 154.21초간 타오르다

75t급 엔진 연소시험 르포

7월 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75t급 액체엔진의 마지막 연소시험이 진행됐다.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건물이 연소시험장이다.

 

 

"우 르르르콰쾅!"

 

하늘 전체를 울리는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거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흰 연기는 순식간에 상공으로 퍼져, 짙게 뒤덮고 있던 구름과 맞닿았다.


7월 5일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있는 나로우주센터. 시험발사체 인증모델(QM·Qualification model)의 마지막 연소시험이 진행됐다. 오후 5시 5분 자동 발사 소프트웨어가 시작되고 9분 56초 뒤, 드디어 엔진에 불이 붙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연소시험 참관은 연소시험장과 1.4km 떨어진 연구동 옥상에서 이뤄졌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도 엔진의 위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1초, 2초, 3초…. 주변에서 “134초를 넘겼다”는 얘기가 들렸다. 액체엔진은 그 뒤로도 20초 간 연료를 더 태웠다. 최종 기록은 154.21초. 성공이었다.


오승협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발사체추진기관개발단장은 “연소 시간을 약 145초로 예상했는데, 이보다 더 오래 탔다”며 “산화제 26톤(t)과 연료 12t을 태웠다”고 밝혔다.


현재 상용 발사체인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은 86t급 엔진(Merlin)이 약 180초간 힘을 내며, 유럽우주국(ESA)의 ‘아리안5’는 98t급 엔진(Vulcain)이 최대 600초간, 러시아 ‘소유스’에 달린 85t급 엔진(RD-107)의 경우 약 280초간 연소한다.

 

 

75t급 액체엔진 자력 개발


시험발사체 QM은 한국형발사체에 사용될 75t급 액체엔진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별도로 개발된 모델이다. 3단으로 구성된 한국형발사체 1단에는 75t급 액체엔진 4기가, 2단에는 75t급 액체엔진 1기가, 3단에는 7t급 액체엔진 1기가 들어간다. 한국형발사체는 2021년 2월과 10월 두 차례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75t급 액체엔진의 연소시험이 중요한 이유는 이 정도 추력의 액체엔진을 국내 기술로 개발한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2013년 나로호 발사 당시 2단에 쓰인 7t급 엔진은 자체 기술로 개발했지만 고체엔진이었다. 국내 액체엔진 기술은 2002년 발사한 ‘KSR-III’를 개발하면서 13t급을 확보했고, 이후 액체엔진의 핵심 부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왔다. 현재 한국형발사체 3단에 쓰일 7t급 액체엔진 기술도 독자적으로 확보했다.

 

7월 5일 시험발사체 인증모델(QM)의 마지막 연소시험이 진행됐다. 이날 엔진은 154.21초간 연소에 성공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75t급 액체엔진을 시험발사체 QM에 장착해 올해 두 차례 연소시험을 진행했다. 5월 17일 1차 연소시험에서는 30초간 버티는 데 성공했다. 오 단장은 “연료탱크에서 발사체에 산화제를 공급하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데, 이 때 엔진이 최소 30초간 버텨야 한다”며 “이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1차 연소시험에서는 30초를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2차 연소시험은 6월 7일에 이뤄졌다. 1차 연소시험보다 30초를 더 늘려 60초간 연료를 태웠다. 오 단장은 “발사체가 비행할 때는 가속도가 붙기 때문에 지상에서 실험할 때보다 연료탱크에 가해지는 압력이 더 크다”며 “실제 비행 환경을 적용해 버틸 수 있는 최대 시간을 계산한 결과 65초로 나왔고, 안전을 고려해 60초를 목표로 잡았다”고 말했다.

 

 

2시간 지연 뒤 성공, 154.21초 연소


이날 이뤄진 3차 연소시험은 한국형발사체 발사 과정과 동일하게 설정하고 진행됐다. 한국형발사체는 발사 직후 약 127초가 지나면 1단이 분리된다. 그때까지 음속을 돌파하고 발사체에 전달되는 최대 압력을 견디는,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75t급 엔진이 안정적으로 연료를 태워 제대로 힘을 내줘야 한국형발사체 발사 성공에 한 걸음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3차 연소시험은 오후 3시 30분으로 예정됐지만 2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자동 발사 소프트웨어에서 이상이 감지돼 시험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로켓을 발사할 때 버튼을 눌러서 이륙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발사의 전 과정이 컴퓨터의 자동 발사 프로그램에 따라 이뤄진다. 발사 전 발사체의 모든 부위와 상태가 발사에 적합한지 컴퓨터가 하나씩 확인하고, 하나라도 오류가 발견되면 자동으로 발사를 중단한다. 발사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를 ‘자동 발사 시퀀스’라고 부른다.


나로호도 2013년 발사 성공까지 자동 발사 시퀀스에 따라 수차례 발사가 중단됐다. 나로호는 발사 과정이 총 600단계로 이뤄져 있고, 자동 발사 시퀀스에 따라 15분간 이 단계를 모두 점검한다. 이 단계를 모두 정상적으로 통과해야 컴퓨터에서 엔진 점화 명령이 내려지고 발사체가 이륙할 수 있다. 시험발사체의 경우 자동 발사 시퀀스는 9분 56초간 이뤄진다.

 

엔진을 구성하는 부품들은 각각 가공을 거쳐 용접, 접합으로 조립된다. 연료와 산화제를 엔진으로 보내는 터보펌프는 액체엔진의 핵심이다.

 

 

하루 전 전기적 신호 점검 등 최종 리허설에 해당하는 드라이 런(dry run)에서는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간단한 문제면 빨리 해결하고 연소시험을 재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연소시험을 미뤄야 한다. 시험발사체 QM을 장시간 세워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산화제로 쓰는 액체산소는 영하 183도의 극저온 상태여서 발사체에 주입한 뒤 시간이 지나면 기화한다.


한국형발사체개발연구본부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시험발사체 QM과 지상 관제실 사이에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 단장은 “실제 비행에서처럼 이륙 직전 지상과 발사체의 전자장비 사이에 통신을 주고받는데, 지상에 있던 장비가 이 신호를 수신하지 못했다는 오류가 발견됐다”며 “다행히 프로그램 업데이트에 따른 작은 오류라는 사실이 확인돼 빠른 시간 내에 오류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산화제를 추가로 주입한 뒤 연소시험이 재개됐다. 5시 5분 자동 발사 시퀀스를 시작한 시험발사체 QM은 5시 14분 56초 드디어 시뻘건 화염을 토해냈다. 오 단장은 “시험발사체 비행모델(FM)과 동일한 연료, 동일한 시퀀스, 발사 당일과 동일한 프로세스를 따랐다”며 “발사체가 날아가지 않도록 지상에 묶어놨을 뿐 비행 시 자세 제어 등 시험발사체 FM의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지상에서 시험했다”고 말했다.

 

 

조기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은 “3차 연소시험에서는 시험발사체의 자세를 제어할 수 있는 추력벡터 시스템까지 검증하는 등 시험발사체 FM 발사에 필요한 모든 성능을 검증했다”며 “시험발사체 FM과 동일한 자동 발사 시퀀스도 적용한 만큼
사실상 시험발사체 발사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진은 3차 연소시험에서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조 팀장은 “실제 시험발사에서는 무선 송수신 시스템의 한계로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제한적”이라며 “연소시험에서는 이보다 3배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75t급 액체엔진을 총 9기 제작해 85회에 이르는 연소시험을 진행했다. 연소시간을 모두 합하면 6471.1초에 이른다. 단일 최장 연소 기록은 220초다.


조 팀장은 “이번 연소시험으로 140초 이상 연료를 태워도 발사체의 추진제 공급 시스템, 발사체 제어 시스템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연소시험 이후 발사체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세밀하게 점검한 결과 발사체 상태도 정상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7월 말까지 엔진, 추진 공급계, 전자탑재장치, 열제어화재안전계 등 각 시스템을 최종 점검하고 분석해 시험발사에 대비할 계획이다.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 10월 시험발사 예정인 시험발사체 비행모델(FM)을 조립하는 모습. 2 75t급 액체엔진 연소시험에 사용된 시험발사체 인증모델(QM). 3 시험발사체 QM을 조립하고 있다. 맨 아래 복잡한 구조의 75t급 액체엔진이 보인다.

 

 

10월 시험발사 앞두고 조립 마무리


현재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는 10월로 예정된 시험발사에 사용될 시험발사체 FM 조립이 한창이다. 3차 연소시험이 진행된 날 조립동에서는 시험발사체의 1단과 2단을 잇는 작업이 진행됐다.


시험발사체 FM 1단은 한국형발사체의 2단과 동일하고, 2단은 한국형발사체 3단과 동일하게 설계됐다. 전체 길이는 25.8m, 무게는 약 52.1t이다. 다만 시험발사체 FM은 75t급 액체엔진의 성능을 확인하는 게 주요 목적인만큼 1단에는 75t급 액체엔진 1기만 달린다. 2단에 인공위성과 같은 탑재체도 싣지 않는다. 실제 발사체가 아닌 만큼 단 분리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탄도비행 뒤 나로우주센터에서 약 400km 떨어진 해상으로 자유낙하한다.


장영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발사체체계개발단장은 “시험발사체 FM의 2단은 한국형발사체의 3단과 중량이 동일한 중량시뮬레이터”라며 “시험발사체 FM이 궤적에 따라 비행할 때 자세를 제대로 잡을 수 있도록 중량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10월 발사예정일을 맞추려면 7월 말까지 시험발사체 FM을 완성해야 한다. 또 각 부분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정렬측정), 무게중심이 잘 맞는지(중량특성 분석) 등 비행 전 필요한 지상시험도 거쳐야 한다.

 

특히 8~9월에는 발사대에 시험발사체 FM을 세웠을 때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발사체에 연료와 산화제를 넣고 빼는 시험, 발사 절차를 검증하는 시험도 진행할 예정이다. 당초 나로우주센터 발사대는 나로호 규격에 맞춰 설계돼 이를 한국형발사체에 맞춰 구조를 조정한 만큼 발사대 테스트가 필수다. 발사체의 케이블과 고정 장치의 연결과 분리도 검증해야 한다. 장 단장은 “10월로 계획한 시험비행까지는 큰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2021년 한국형발사체 발사


시험발사가 성공하면 한국형발사체 개발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형발사체는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저궤도(600~800km)에 올릴 수 있는 우주발사체다. 3단으로 구성된 한국형발사체의 길이는 약 47.2m로 아파트 15층 높이에 해당한다. 최대 지름은 3.5m에 이른다. 무게는 약 200t으로 몸무게 70kg인 성인 2857명과 맞먹는다. 2021년 2월 첫 발사에서는 시험위성을 싣고, 10월에는 소형 과학위성을 탑재해 발사할 예정이다.


한국형발사체 1단에는 75t급 액체엔진 4기를 하나로 묶은 300t급 액체엔진이 들어간다. 조 팀장은 “현재 한국형발사체의 1단과 3단에 해당하는 체계개발 모델과 인증모델을 제작하고 있다”며 “시험발사체와 마찬가지로 종합연소시험을 거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실용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등 6개국에 불과하다. 한국형발사체가 성공한다면 우리나라가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전환점이 된다.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발사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난제로 일정이 미뤄지기도 했지만, 연구진의 노력 끝에 가장 중요한 관문인 종합연소시험을 문제없이 완료했다”며 “2021년 한국형발사체를 성공적으로 발사할 수 있도록 남은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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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고흥 = 이정아 기자
  •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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