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상선(商船) 제조 기술을 가진 나라다. 하지만 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과는 예상외로 많지 않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는 그 가운데서도 명실상부 최초, 그리고 최고다. 선박 엔지니어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학과라고 할 수 있다. 17, 18학번 재학생들에게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 ‘승선’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었다.
학업에 대한 집념, 내신 6등급→1.7등급 18학번_공도윤
광주 조선대학교부속고를 졸업하고 수시 기회균형선발전형으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 입학한 공도윤 씨는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작곡가를 꿈꾸던 예술고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술고 진학에 실패해 일반고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수학과 과학 같은 과목은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학년 때는 성적이 바닥을 칠 정도로 나빴어요. 수학의 경우 1학기 중간고사 점수가 한 자릿수일 정도였으니까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내신은 6등급이었죠.”
하지만 공 씨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스마트폰으로 그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촬영하는 등 절치부심했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영상을 보면서 친구들의 공부법을 분석하고, 자신만의 학습법을 만들었다. 그 결과 성적은 빠르게 향상됐고, 3학년 때는 1.7등급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공 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학습법을 코칭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또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을 모아 교실에 방치된 고장 난 비품을 수리해 주는 활동을 기획하기도 했다.
소규모로 시작했던 이런 활동들은 전교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큰 규모로 확대됐다. 공 씨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학습법 정립을 시도하고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서 진행했던 점들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제대로 과학을 접하게 된 공 씨는 운송수단에 관심을 갖게 됐고, 선생님의 추천으로 ‘조선기술’이라는 책을 읽으며 조선해양공학에 대한 흥미를 키워갔다. 음악을 좋아하는 공 씨는 앞으로 수중음향학을 연구해 보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다.
연구 활동만 8개, 성실함으로 승부_18학번 강원석
영재학교인 대구과학고를 졸업한 강원석 씨는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했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기간을 진로 탐색 시기로 생각했다”며 “영재학교의 이점을 살려 다양한 활동을 한 뒤 조선해양공학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말했다.
강 씨는 고교 재학 중 연구 활동을 무려 여덟 개나 진행했다. 진로 캠프에도 네 차례나 참여했다. 일반고에 비해 연구의 기회가 많은 영재학교에서도 여덟 개나 되는 연구에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진로를 탐색했다는 뜻이다.
그는 “2학년 1학기 때 물리와 생물 분야를 융합한 주제의 연구를 했는데, 생물 부분이 무척 어려웠다”
고 말했다. 또 화학 수업을 들을 때는 학문마다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걸 느꼈는데, 물리학적인 관점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 씨가 조선해양공학으로 진로를 정한 결정적인 계기는 2학년 때 참여한 서울대 공대의 ‘청소년 공학프런티어캠프’였다. 대학원 연구원들이 진행하는 슬로싱 실험을 체험하면서 큰 흥미를 느꼈다.
슬로싱이란 용기에 저장된 유체가 움직이면서 저장 공간의 벽면에 충격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운반하는 선박은 영하 164도의 극저온으로 액화시킨 천연가스를 저장탱크에 실어 운반하는데, 그 과정에서 슬로싱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탱크가 파손되면 심각한 해상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슬로싱 실험은 배를 안전하게 설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조선해양공학으로 진로를 정한 강 씨는 서울대를 목표로 본격적으로 수시 일반전형 구술고사를 준비했다. 기출문제 풀이와 모의 면접 등을 중점적으로 공략했다. 목표를 명확히 설정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시험을 준비하고 치를 수 있었다고. 강 씨는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대학에 진학하면 선택지가 줄어드는 만큼 고등학교 때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진로를 탐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내신 약점 자소서로 만회 18학번_류희균
대구일과학고를 졸업하고 수시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류희균 씨는 교내 서울대 지원자들 중에서는 내신 성적이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하지만 1차 관문인 서류평가만 통과하면 문제 풀이가 중요한 2차 면접 및 구술고사에서는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수시 일반전형에서 1차 서류평가는 내신 성적을 포함한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등을 토대로 지원자를 정원의 2배로 추린다. 류 씨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내신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고교 2년 동안 진행한 다양한 활동을 강조했다. 친구들과 진행했던 자율탐구활동과 화학실험 동아리에서 했던 화학 실험 등을 기록했다.
자율탐구활동의 경우 류 씨는 광학 분야에서 빛이 휘어져서 진행하는 현상인 회절을 연구했다. 프레넬 회절은 광원이나 관측점이 빛을 휘어지게 만드는 물체와 유한한 거리에 있는 경우를 나타낸다. 프라운호퍼 회절은 광원 혹은 관측점이 회절시키는 물체보다 무한히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경우다.
류 씨와 친구들은 프레넬 회절의 경우 계산이 까다롭기 때문에 프라운호퍼 회절로 근사해서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프레넬 회절을 프라운호퍼 회절로 근사할 수 있는 조건과 그렇지 못한 조건은 무엇인지 분석했다.
류 씨는 “활동 내용이 조선해양공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과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는 부분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원하는 학과와 관련된 연구나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약점인 내신 성적을 자기소개서로 만회한 류 씨는 면접 및 구술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결국 합격했다. 구술고사는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각자 조사한 정보와 문제를 모아 풀면서 효율적으로 준비했다. 류 씨는 “구술면접에서 주어진 문제를 모두 풀었다”며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것이 합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서 진로 결정 용기 얻어 17학번_김예린
일반고인 대전 괴정고를 졸업하고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합격한 김예린 씨는 “이공계로 진로를 정한 계기는 독서활동 덕분”이라고 말했다. 막연하게 바다와 배를 동경했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하던 당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쓴‘과학자의 서재’라는 책을 읽게 됐다. 그 책에는 과학을 전공해도 다양한 길로 진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았고,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김 씨는 이공계 학과 중에서 평소 동경하던 배를 만들 수 있는 조선해양공학으로 진로를 정했지만, 조선해양공학과 관련있는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학문 자체가 고등학생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면접관인 교수가 조선해양공학과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물었다. 난처한 순간이었지만 김 씨는 “고교 수준에서 조선해양공학 분야의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 기초가 되는 수학과 물리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김 씨는 수학과 물리학이 조선해양공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른 과목보다 신경을 더 많이 썼다. 김 씨는 “자기소개서 내용을 꾸며서 쓰기보다는 솔직하게 쓰려고 했다”며 “책을 읽거나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느낀 점들을 기록해 두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패에서 배운 점 강조 17학번_이다원
서울 혜원여고를 졸업하고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합격한 이다원 씨는 학교에서 지역균형선발전형에 응시할 기회를 얻기 위해 내신 성적 관리에 신경을 썼다. 지역균형선발전형은 학교별로 단 두 명만 추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는 수시모집에 합격해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있기 때문에 내신과 수능 성적이 고루 좋은 학생이 지역균형선발전형 지원자로 추천받을 가능성이 높다.
내신 성적이 지원 자격을 얻기 위한 요소라면,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는 면접에서 자신을 차별화시킬 수 있는 요소다.
이 씨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으로 자신을 차별화시킨 케이스다. 소논문과 과제 연구, 글쓰기와 표어, 영어 대회 등 다양한 학교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통해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그는 “비록 실패했던 것이라도 조선해양공학으로 진로를 정하는 과정에서 했던 다양한 활동을 자기소개서에 적었다”고 말했다. 가령 이 씨는 친구들과 에어컨 바람을 분산시키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고등학생 수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포기했다.
실패한 내용을 적는 것을 꺼려할 수 있지만, 이씨는 오히려 실패를 통해 배운 점을 강조했다. 그는 “실제 면접에서도 교수님들이 실패한 연구에 대해 물어봤다”며 “대학에서 공부한 뒤에 다시 도전하면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입시를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 때문에 작은 실패에도 낙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많이 경험하면서 자신이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