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우리 강아지가 밤새 헐떡이며 침을 흘리고 돌아다녀서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 어젯밤에 강아지가 구석에 들어가서 벌벌 떨고 있는데, 너무 안쓰러워서 혼났어요.
# 방문을 닫으면 문을 열어달라고 밤새도록 문을 긁고, 열어주면 안아달라고 졸라대서 강아지도 저도 밤새 못 잤어요.
소음공포증의 75%, 천둥번개공포증
천둥번개가 치는 비 오는 밤에 강아지가 이런 증상을 보인다면 ‘소음공포증(Noise phobia)’의 한 종류인 ‘천둥번개공포증(Thunderstorm phobia)’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소음공포증이란 특정 소음에 대해서 불안과 공포를 나타내는 상태로, 입술을 핥는 불안 증상부터 헐떡이고 침을 흘리며 벌벌 떠는 증상까지 다양합니다.
소음공포증의 경우 공사장 기계음, 자동차 경적, 총 소리, 가전제품 소리, 알람 소리 등 다양한 소리에 공포 반응을 보일 수 있지만, 가장 흔한 자극원은 천둥번개와 불꽃놀이(폭약)입니다.
동물의 행동의학적인 문제를 진료하는 동물정신과에서 근무하다 보면, 1년 365일 중 특히 전화 문의가 많은 날이 있습니다. 바로 천둥번개가 지나간 다음 날이나, 미국 전역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7월 4일 독립기념일 다음 날입니다. 그래서 7월과 8월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소음공포증에 대한 전화 문의로 바쁩니다.
개에게 왜 소음공포증이 나타나는 걸까요?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국 포틀랜드주립대에서 개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하는 멜라니 장 박사의 연구 결과, 개 중에서도 특정 혈통에서 더욱 발생률이 높았습니다. 즉, 유전적인 소인이 뚜렷하다는 뜻입니다.
doi:10.1016/j.jveb.2008.09.024
그리고 글로벌 동물약품회사인 조에티스(Zoetis)가 2013년 해리스 여론조사를 통해 반려견 보호자 78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반려견이 소음공포증을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2001년 캐런 오버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사가 ‘미국수의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소음공포증을 가진 개의 약 75%가 천둥번개공포증도 갖고 있습니다.
doi:10.2460/javma.2001.219.467
결국 소음공포증을 겪고 있는 개가 매우 많다는 얘기입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 보면 한국에서도 여름에 천둥번개공포증으로 고생하는 반려견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민감성소실역조건화 행동치료가 도움
우리집 반려견이 소음공포증이나 천둥번개공포증을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개를 혼내기보다는 숨어 있게 내버려두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숨어 있는 곳에 백색소음을 들려주거나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혹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좋아하는 간식이 있다면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개가 너무 두려운 상태에서는 잘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평상시에 ‘민감성소실역조건화(DSCC·Desensitization Counterconditioning)’라고 부르는 행동치료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먼저 천둥번개 소리나 불꽃놀이 소리, 또는 무서워하는 소리를 작은 소리로 들려주면서 이 때 맛있는 간식을 줍니다. 만약 개가 불안 증상을 보이지 않으면, 소리를 약간 키운 뒤 다시 맛있는 간식을 줍니다. 만약 개가 불안해한다면 이전처럼 소리를 줄입니다. 이런 식으로 개가 불안 증상을 보이지 않는 수준에서 소리를 조금씩 키우고 간식을 제공하는 과정을 반
복합니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만큼 불안 증상이 심각한 경우에는 꼭 수의사와 상담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는 항불안제를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천둥번개공포증은 천둥의 소리뿐만 아니라 어두워지는 하늘, 기압의 변화, 비 내리는 날의 습도 등 다양한 요소가 섞인 복합적인 상황에 대한 공포증입니다.
그래서 천둥 외의 다른 소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소음공포증에 비해 민감성소실역조건화 행동치료의 효과가 떨어집니다. 약물치료가 더욱 효과적입니다. 만약 천둥번개공포증 이외의 소음공포증이 나타난다면 행동치료를 필수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 때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치료 효과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개가 6개월령이 되기 전에 공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리를 긍정적으로 경험하면 소음공포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필자는 그래서 3~16주령의 강아지들을 위한 사회화 교육 과정에서도 강아지들이 살면서 접하게 될 다양한 소리를 맛있는 간식과 함께 긍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추천합니다.
물론 천둥번개가 매일 치는 것은 아니며, 불꽃놀이도 1년에 몇 차례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이 공포에 떠는 행동을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공포증을 자주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필요한 경우에만 약물을 복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진공청소기나 세탁기 등 여러 가지 생활 소음에 공포증을 보인다면, 민감성소실역조건화 행동치료와 함께 전문가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