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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국내 첫 과학기구, 스누볼 발사기

이관중 서울대 교수팀이 4월 28일 강원도 삼척에서 발사한 과학기구. 폴리에틸렌 필름 재질인 벌룬 안에는 헬륨가스를 채웠다.

 

 

아직 새벽바람이 제법 차가운 4월 말. 우리 연구팀은 몇 년전 폐쇄된 강원도 삼척의 한 공장에서 ‘과학기구(Scientific Balloon)’ 발사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긴장한 연구원들의 이마를 훑고 지나갔다. 밤새 내린 비로 발사장 바닥이 미끄러웠다.

 

과학기구는 지름 7.4m의 둥근 풍선에 직육면체 모양의 상자가 달린 형태다. 통신 장치와 트랜스폰더(transponder·항공 교통 관제용 자동 응답 장치), 페이로드(payload·비행체에 실리는 탑재물) 분리장치, 카메라, 간단한 기상 실험 장치를 싣고 있어 무게는 총 21kg이다. 이름은 ‘스누볼(SNUBall)’
이라고 붙였다. 과학기구로는 국내에서는 처음 띄우는 것이라 더욱 긴장됐다.

 

발사팀이 공장 벽을 바람막이 삼아 발사 준비를 시작했다. 갑작스런 돌풍으로 벌룬이 찢어지진 않을까 손놀림이 조심스러웠다. 바다 위로 떨어질 페이로드는 튼튼하게 고정돼 있는지, 통신장비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며,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벌룬과 페이로드를 회수할 울릉도의 기상 상황과 기구의 예상 궤적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발사팀은 이틀 전 울릉도에 미리 나가 있던 회수팀에 연락을 취했다.

 

“이제 발사합니다. 울릉도까지 예상 비행 시간은 2시간, 도착 시간은 오전 11시 전후가 될 것 같습니다. 준비하세요.”

 

발사팀의 손을 떠난 기구는 동해로 빠르게 멀어져 갔다. 같은 시각, 울릉도에 있던 회수팀은 낙하 예상지역으로 출항을 서둘렀다. 이미 몇 차례 회수로 낯을 익힌 선장님과 함께였다. 계획대로라면, 삼척을 떠난 기구는 서서히 상승하며 고도 25km에 도달해 170여 km를 2시간 동안 비행한 뒤, 울릉도 앞바다에 떨어질 예정이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회수팀이 벌룬과 페이로드를 안전하게 회수하면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나게 된다.

 

 

하늘 위 실험실, 과학기구


과학기구는 보통 성층권 이상의 고도에서 과학적 또는 공학적 연구 목적으로 활용되는,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체를 말한다. ‘성층권 기구’ 또는 ‘대기구(big balloon)’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학기구는 공기를 가열해서 생기는 밀도차로 부력을 얻는 열기구와 달리 헬륨가스를 이용해 부력을 얻으며, 성층권 이상의 높은 고도까지 올리기 위해서 매우 얇은 폴리에틸렌 필름으로 제작한다. 바나나 껍질 모양의 필름(gore)을 이어 붙여 만든 거대한 기낭(envelope)과 연구 수행에 필요한 페이로드, 회수를 위한 낙하산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과학기구는 설계와 운용방식에 따라 다시 영압기구(zero pressure balloon)와 초압기구(super pressure balloon)로 나뉜다. 간단히 설명하면 영압기구는 풍선 하부가 외부로 개방돼 있어 기낭 내부와 외부의 압력차가 없는 형태를, 초압기구는 완전히 밀폐돼 목표 고도 진입 이후에도 기낭 내외부에 일정한 압력차가 존재하는 형태를 말한다.

 

현재 연구팀에서 개발하고 있는 형태는 영압기구인데, 제작과 운용이 비교적 용이하고 대형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영압기구는 밤에 부력이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닥짐(밸러스트·ballast)을 조금씩 버려줘야 하는 만큼 장기간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초압기구는 완전히 팽창됐을 때 호박 모양이 되며, 별도의 바닥짐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 장기간 체공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공에서 내외부의 압력차를 견딜 수 있도록 고강도의 재료를 써야 한다는 점 때문에 설계와 제작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위성보다 효율적인 과학기구


로켓이나 인공위성 같은 익숙한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구를 연구 개발하는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비용의 효율성이다. 과학기구는 동일 임무 기준으로 로켓이나 인공위성에 비해 운용비용이 10~100분의 1 수준으로 적다. 둘째, 페이로드의 형상에 구애받지 않는다. 제한된 공간에 페이로드를 욱여넣어야 하는 로켓이나 인공위성과 달리 과학기구는 지상에서 사용하던 임무용 장비를 그대로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구글(왼쪽)과 NASA(오른쪽)에서도 과학기구를 개발 중이다. 구글은 기구를 이용해 무선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셋째, 과학기구는 페이로드의 회수와 재사용이 가능하다. 임무 장비를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로켓이나 인공위성에 비해 엄청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발사 준비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설계에서 발사까지 최소 2~3년 걸리는 로켓이나 인공위성에 비해 과학기구는 대략 6개월 정도면 모든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사 장소 선택이 자유롭다. 발사에 필요한 장비가 상대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별도의 발사 기지가 필요 없다. 다만 발사 준비 중 생길 수 있는 물리적 손상을 대비해 실내 발사 준비 장소가 있는 것이 좋다.

 

 

기구로 통신망 구축 꿈꾸는 구글


과학기구의 이런 장점에 주목해 구글은 몇 년 전부터 ‘프로젝트 룬(Project Loon)’이라는 대규모 과학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구 상공 32km에 기구를 촘촘히 띄워 올려 전 세계를 잇는 무선 통신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남미나 아프리카처럼 지하 광케이블 매설이 쉽지 않은 곳에서는 저렴하게 통신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기상 정보를 활용해 적절하게 고도를 조절하며 기구를 원하는 범위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기술이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실행된다면, 과학기구의 활용성과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과학기구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783년 몽골피에(Montgolfier) 형제의 대형 열기구부터 생각하면 200년을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진 셈이다. 근대적인 과학기구 탄생의 기술적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30년대 초 영국의 화학기업 ICI에서 개발한 저밀도 폴리에틸렌 필름이다. 가볍고 질긴 재료의 출현으로 비로소 성층권 이상 비행이 가능한 기구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1940년대 미 해군의 후원을 받은 미네소타대는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현대적인 과학기구의 원형을 개발했다. 초기에는 항공공학자들이 아니라 우주선(cosmic ray)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과학기구의 개발을 주도했다. 1960년대에는 1.8t(톤)의 탑재 중량을 지구 상공 최고 30km까지 올리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통신뿐만 아니라 기구 제어에 전자공학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과학기구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일본도 과학기구의 연구 역사가 짧지 않다. 1950년대 고베대 천문학자들이 연구를 시작해, 1971년 우주과학연구소(ISAS)에 산리쿠 기구센터(Sanriku Balloon Center)가 설립되며 도약의 전기가 마련됐다. 현재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운영하는 홋카이도의 다이키항공우주연구센터(TARC·Taiki Aerospace Research Center)를 중심으로 연간 10~15기의 과학기구를 발사하고 있다. 2012년 9월에는 자체 개발한 과학기구를 지구 상공 53.7km까지 올려, 세계 최고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제 막 연구 시작된 한국


필자는 비행체의 개념 설계와 성능 해석을 주로 연구한다. 과학기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였다. 기상 관측이나 천문우주 분야에서 고무로 만든 ‘러버 벌룬(rubber balloon)’을 이미 널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국내에 어느 정도 연구기반이 축적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연구를 시작해보니 가는 길마다 첩첩산중이었다. 국내에 과학기구를 설계하거나 제작해본 경험이 있는 기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동서로 폭이 좁은 우리나라의 지형학적인 특성 상, 육지를 통한 기구의 회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도 연구를 시작한 뒤에야 알게 됐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연구팀이 3월 27일 발사한 시험용 러버 벌룬(위 오른쪽 사진)에 탑재된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위 왼쪽 사진은 러버 벌룬이 지구 상공에서 촬영한 이미지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거의 2세대 정도 늦게 시작된 국내 과학기구 연구가 다행히 뛰어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활용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과학기구 연구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기구 제작과 운용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탑재 중량이 100kg 이상인 경우에는 지상 운용, 발사, 관제를 위해 일정 규모의 시설이 필요하다. 과학기구는 운용 경험 축적이 기술 발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위해 관련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과학기구를 이용한 우주과학 교육 활성화도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와 운용비로 대학에서도 교육과 연구 목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천문, 기상, 극지 연구 분야와 협력해서 임무를 개발하고, 공동운용 기술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국내 가용 연구 자원을 고려해 연구 방향의 선택과 집중이 이뤄진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절반의 성공, 그리고 새로운 도전


안타깝게도 이번 발사에서는 거센 풍랑으로 벌룬과 페이로드 회수에 실패했다. 동서로 폭이 좁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기구 회수는 바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바다를 통한 임무장비 회수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수를 제외한 벌룬의 발사와 추적까지는 완벽하게 이뤄졌으니,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발사였다. 독자들이 이 책을 받아볼 때인 5월 말쯤 필자는 다시 삼척에 있을 것이다. 바람 방향이 바뀌는 6월 전에 시험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그 때는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관중_kjyee@snu.ac.kr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현 기계항공공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방부, 부산대를 거쳐 현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비행체 설계와 항공기 운항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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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관중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 에디터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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