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팔씨름을 소재로 한 영화 ‘챔피언’이 5월 개봉한 지 12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팔 두께가 20인치(50.8cm)나 되는 ‘팔뚝 요정’ 마동석 씨의 열연이 흥행의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손에 땀을 쥐게하는 팔씨름 선수들의 경기 장면 또한 영화의 백미다. 백전백승, 팔씨름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을 팔씨름 선수에게 직접 들어봤다.
“어깨부터 가슴, 상완이두근으로 이어지는 힘을 토크(회전력)로 만들어서 넘겨보세요.”
백성열 선수(대한팔씨름연맹 소속)의 지시대로 마주잡은 그의 팔을 힘껏 밀었다. 웬걸. 벽을 미는 느낌이었다. 한 때 팔씨름 좀 했다는 자존심에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손목을 비틀어 내리 누르기를 시도했다. 역시 꿈쩍도 안했다. 국내 팔씨름 통합랭킹 1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대학에서 설계를 전공하고 3년 전까지 발전소에서 설비 운전을 담당했다는 그는 팔씨름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을 과학으로 설명했다.
힘이냐 기술이냐? 정답은 둘 다
“팔씨름 경기에서 이기려면 힘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게 기술이죠.”
백 선수는 팔씨름에서 이기려면 힘과 기술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질문에 “힘 또는 기술이 아니라 힘 더하기 기술”이라고 답했다. 19세부터 17년 동안 팔씨름 훈련을 했다는 백 선수는 영화 ‘챔피언’에서 마동석, 강신호 두 배우의 훈련을 담당하고 영화의 긴박한 팔씨름 액션 합을 지도했다(깜짝 출연도 했다).
그는 보디빌더와 팔씨름 선수의 예를 들었다. 유튜브에는 보디빌더와 팔씨름 선수의 승부 영상이 심심찮게 보인다. 대부분 팔씨름 선수의 압승으로 끝난다. 날씬한 사람의 허리 두께만한 팔뚝을 가진 보디빌더들이 ‘덩치 값’을 못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백 선수도 팔씨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비슷한 수모(?)를 당한 적이 있다고. 그는 “경량급 선수라도 본인의 힘은 최대한으로 쓰고, 상대편은 힘을 못 쓰게 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자세를 예로 들어보자. 팔씨름 선수들은 힘을 가하려는 방향과 발 방향을 나란히 하고, 주먹과 몸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든다. 팔 근육의 회전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다. 팔꿈치 관절을 회전축으로 볼 때 근육의 회전력은 근육의 힘(주로 상완이두근)과, 관절에서 힘의 작용선에 이르는 수직거리(모멘트 암)의 곱이다. 그런데 모멘트 암은 팔의 각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주먹을 테이블 가까이 내렸을때보다 몸쪽에 붙였을 때 길어진다.
팔의 각도에 따라 낼 수 있는 힘의 크기도 변한다. 근육의 길이와 장력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어서 근육의 길이가 너무 길어져도, 너무 짧아져도 큰 힘을 낼 수 없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먹이 몸에 가까운 상태일 때, 적당한 근길이에서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다.
기술은 좀 더 복잡하다. 백 선수는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식기술이 크게 5가지 정도가 있다”며 “넘기는 힘(사이드 프레셔), 당기는 힘(백 프레셔), 내리 누르는 힘(다운 프레셔), 들어 올리는 힘(업 프레셔)을 적절히 써야 한다”고 말했다(아래그림 참조).
김영관 전남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이러한 기술이 근신경학적 메커니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팔씨름 처럼 당기는 힘을 쓸 땐 손목이 몸 바깥쪽으로 돌아가는 ‘회외’ 자세가 자연스럽도록 근신경이 발달돼 있다는 것이다(멱살을 잡아당길 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는 반대로 손목이 몸 안쪽으로 꺾여있다면 당기는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경기가 시작된 직후 선수들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한 이유다.
한편 몸을 움직여 체중을 싣는 것도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실제로 영화 속 경기 장면은 ‘팔뚝 액션영화’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몸 쓰는 장면이 많았다. 한 발 이상 바닥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상대편 팔을 패드에 닿게 하기만 하면 이기기 때문이다(단 팔꿈치가 2번 이상 떨어지면 실격이다). 선수들과 배우들은 몸의 높이와 어깨의 각도, 팔씨름을 하지 않는 손등을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강력한 팔뚝 만드는 법
자세와 기술을 머릿속으로 이해해도 실전은 별개다. 백 선수는 “근육과 관절, 인대가 조화롭게 움직이려면 최소 3년 정도는 훈련을 해야 한다”며 “근육의 힘을 키우는 훈련과 관절을 적응시키는 훈련을 복합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씨름 선수들은 보통 일주일에 1~2회, 한 번에 2시간씩 근력 훈련을 한다. 근육이 견딜 수 있는 최고 무게를 5회 미만으로 들어 올리는 고중량 훈련을 하되(그래야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다), 중간 중간 그보다 가벼운 중량을 15~20회 들어 올리는 저중량 훈련을 번갈아가며 한다.
이는 근육에 손상이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근육은 가느다란 근섬유 다발로 이뤄져 있다. 운동을 하면 근섬유가 손상되고, 우리 몸은 혈중 아미노산을 끌어와 새로운 근섬유 세포를 만들고 손상된 근섬유를 회복시킨다. 운동을 반복하면 근육세포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근육이 굵어진다. 실제로 백 선수의 팔뚝은 18인치가 넘었다.
백 선수는 팔씨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지근과 속근이 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느리지만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는 근육이 지근섬유이고, 오래 지속할 수는 없지만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근육이 속근섬유다. 팔씨름 선수에게는 속근섬유만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백 선수는 “순간적으로 팔을 당길 때는 속근이 중요하지만, 상대편이 당기는 것을 버틸 때는 지근이 쓰인다”고 답했다.
관절은 연습 경기와 훈련을 통해 단련시킨다. 모든 경기는 세계팔씨름연맹 기준에 맞춘 테이블에서 한다. 테이블의 높이, 팔꿈치 패드의 크기와 위치, 손잡이(핸드 페그)의 규격 등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팔씨름은 ‘통뼈’가 잘한다?
인터넷에 ‘팔씨름 잘 하는 법’을 검색하면 여러 가지 비법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과장된 정보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악력이다. 영화에서도 선수들이 악력을 키우기 위해 악력기를 잡았다 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백 선수는 “기술이 올라갈수록 악력에 대한 부담이 떨어진다”며 “고장력 악력기 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손목과 팔꿈치, 어깨에 오히려 무리가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팔씨름을 할 때는 손을 무조건 꽉 쥐는 것보다 넓은 면적을 감싸 쥐듯이 쥐고 손가락 끝에 힘을 줘 ‘잠그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손이 클수록 유리한 셈이다.
소위 ‘통뼈’가 팔씨름을 잘한다는 말도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뼈가 두꺼운 사람일수록 전완근이 두껍게 발달할 수 있지만(근육의 단면적이 넓어 큰 힘을 낼 수 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뼈가 얇아도 훈련을 통해 전완근을 키울 수 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보통 체중이 많이 나가면 근육도 많고 체중이 더 많이 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도 같은 종목은 두 선수가 같은 기록을 세웠을 때, 몸무게가 가벼운 선수가 승리한다는 규칙을 두고 있다. 팔씨름 경기에는 보통 마이너스 70kg, 마이너스 80kg, 마이너스 90kg, 플러스 90kg 등 네 가지 체급이 있다.
체급 없이, 필요한 근육을 만들지 않고 무작정 체중을 실어 팔씨름을 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백 선수는 “팔씨름은 나이가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평생 스포츠”라며 “어떻게 해야 다치지 않는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