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내에서 출시된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Switch)’는 게임기보다 게임팩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정확히는 게임팩의 ‘맛’이다. 유튜브에 ‘닌텐도 스위치’를 검색하면 게임팩 ‘먹방(먹는 방송)’이 뜬다. 게임팩에 혀를 대고 맛을 보는 것이다. 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못 먹을 걸 먹었다’는 표정이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쓴맛 ‘끝판 왕’
기자가 직접 게임팩 맛보기에 도전했다. 게임팩이 혀에 닿는 순간 쓴맛이 강하게 밀려와 다급히 뱉어냈다. 하지만 역겨움은 1분가량 계속 입 안을 맴돌았다. 닌텐도가 ‘핵쓴맛’ 게임팩을 만든 이유도 이처럼 게임팩을 곧바로 뱉어내게 하기 위해서다.
닌텐도 스위치의 게임팩은 가로 3.4cm, 세로 2.3cm로 한 입에 들어갈 만큼 작다. 만에 하나 어린이가 삼킬 경우 질식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쓴맛을 내는 화학물질을 바른 것이다. 한국닌텐도는 공식 홈페이지에 “닌텐도 스위치의 게임팩에는 쓴맛을 내는 성분인 ‘데나토늄 벤조에이트(Denatonium Benzoate)’가 칠해져 있다”고 공개했다.
류미라 한국식품연구원 감각인지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사람의 혀에 있는 수용체들 가운데 쓴맛 수용체는 다른 수용체와 달리 한 수용체가 다양한 작용기와 결합한다”며 “이 때문에 단맛이나 짠맛 등 다른 맛에 비해 쓴 맛에 유독 민감하다”고 말했다.
쓴맛을 내는 화학물질 중에서도 데나토늄 벤조에이트는 ‘쓴맛의 왕’으로 불린다. 지구상에서 가장 쓴 화학물질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특별한 색이나 냄새는 없다. 이 물질은 1958년 영국의 제약회사인 맥팔렌 스미스가 국소마취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데나토늄 벤조에이트의 농도가 0.05ppm(1kg에 0.05mg 들어있는 수준)만 돼도 쓴맛을 감지했다. 사람이 보유한 쓴맛 수용체 25개 가운데 8개(TAS2R4, TAS2R8, TAS2R10, TAS2R16, TAS2R39, TAS2R43, TAS2R46, TAS2R47)가 데나토늄 벤조에이트와 결합해 쓴맛을 느끼게 만든다.
이 때문에 데나토늄 벤조에이트는 주로 고미제(苦味劑)로 쓰인다. 유독성 물질인 메탄올이나 부동액에 첨가해 사람의 섭취를 막고, 전선에 발라 동물이 갉아 먹지 못하도록 한다.
“호기심에 계속 맛보지는 말아야”
한국닌텐도는 공식 홈페이지에 “게임팩에 발라진 물질은 건강에 해롭지 않으므로 안심해도 된다”고 설명한다.
산업안전보건법 41조 규정에 따르면 데나토늄 벤조에이트는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비치 대상물’로 유해물질로 분류된다. 안전보건공단이 발행하는 화학물질정보 데이터베이스인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따르면 쥐 실험에서 밝혀진 데나토늄 벤조에이트의 ‘LD50’은 584mg/kg이다. 몸무게 1kg인 쥐가 데나토늄 벤조에이트 584mg을 섭취할 경우 절반이 죽는다는 뜻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발행하는 유해물질 데이터베이스인 ‘해즈맵(Haz-Map)’도 데나토늄 벤조에이트의 독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 물질을 섭취하거나 흡입, 접촉한 경우 두드러기와 천식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보고가 1980건에 이른다. 피부와 눈에 들어갈 경우에는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아직 발암 가능성이나 장기 노출에 대한 독성은 보고된 바 없다.
이나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화학물질정보연구부장은 “농도가 10ppm만 돼도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쓴맛이 난다”며 “게임팩에 의한 질식 등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데나토늄 벤조에이트의 농도를 낮춰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장은 “낮은 농도라고 할지라도 알레르기 등 독성 반응을 유발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며 “섣부른 호기심에 계속 맛을 보는 행위는 삼가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