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질문_배아를 알록달록 물들인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 예를 들어 근육세포, 신경세포, 피부세포를 보면 생김새와 기능이 모두 다릅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세포들은 모두 똑같은 유전물질을 갖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이렇게 다를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세포들이 서로 다른 유전자를 발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배아가 모든 기관을 제대로 갖춘 하나의 개체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세포 분열과 분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배아에서 생겨난 세포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모양과 기능을 갖추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발생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설이 있었는데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분화 과정 중 유전자가 유실돼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발현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2017년 8월호 기사 ‘체세포 하나가 개구리로 자란다?’ 참조).
일상생활에서 ‘발현’이라는 단어는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나타낸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자 발현은 유전정보가 단백질이나 RNA로 형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 무늬를 새긴 판화의 틀을 유전정보라고하면, 그 틀로 찍어낸 종이들을 RNA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전물질이 먼저 RNA로 복사되고, 이후 RNA가 번역되면서 단백질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RNA와 단백질이 세포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기에 세포들은 유전정보를 부지런히 발현시켜야 합니다.
‘무색무취’ RNA, 탐침으로 찾아낸다
그렇다면 배아 발달 과정 중에 다리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와 뇌에서 발현되는 유전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단백질과 RNA가 특정한 색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띌 만큼 큰 것도 아닌데 말이죠.
과학자들이 고안한 방법 중 하나는 형광물질을 이용해 RNA를 감지하고 시각화 하는 방법입니다. 일명 ‘형광 제자리 부합법(FISH·Fluorescence In Situ Hybridization)’입니다. 형광 제자리 부합법의 기본 원리는 DNA와 RNA의 경우 상호 보완적인 짝이 있으면 쌍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퍼가 맞물리는 것처럼요. DNA가 이중나선인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 다른 지퍼는 맞물리지 않듯 DNA와 RNA 역시 자신에게 꼭 맞는 짝하고만 쌍을 이룹니다.
자, 그럼 형광 제자리 부합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볼까요. ‘유전자 X가 다리에서는 발현되지만 뇌에서는 발현되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웠다고 합시다. 이 가설이 맞다면 우리는 배아의 다리에서 유전자 X의 RNA를 감지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유전자 X의 RNA 염기서열과 짝을 이룰 수 있는 짧은 DNA 또는 RNA 가닥을 만듭니다. 이것을 탐침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형광물질을 더해줍니다.
이후 배아를 구성하는 세포 속 물질들이 움직이지 않도록 화학처리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준비한 탐침을 넣습니다. 그러면 탐침은 짝을 이룰 유전자 X의 RNA에 가서 찰싹 달라붙습니다. 반면 유전자 X의 RNA가 없는 세포에서는 탐침이 그냥 머물다가 금세 밖으로 배출됩니다. 가설이 맞다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봤을 때 다리 부분이 형광으로 빛나고 뇌 세포는 빛이 나지 않겠죠(아래 그림).
형광 제자리 부합법은 여러 유전자의 발현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목표로 삼은 유전자들의 RNA에 맞게 탐침을 여러 개 만들고 서로 다른 형광물질을 붙이는 방식입니다. 이 방법을 초파리 배아에 적용하면 신체 각 부위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어디에서 얼마나 발현되는지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아래 그림). 보이지 않는 RNA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노력이 대단하지 않나요.
최영은_yc709@georgetown.edu
미국 바드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발생학 및 재생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우는 과학이 아닌 질문하는 과학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과학교육에 발을 담그게 됐다.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부에서 유전학, 발생학 등을 가르치며 새로운 대학 과학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2. 두 번째 질문_하나의 유전자로 뼈와 모공 모두 만든다?
위, 폐, 심장… 우리 몸의 각종 기관은 어떻게 생겨날까요. 배아세포가 특정한 세포로 분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피날레’는 항상 유전자가 장식합니다. 특정 기관, 또는 특정 세포가 되는 데 필요한 유전자가 발현돼야 합니다.
세포 속 유전자가 아무 때나 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때에 특정한 세포에서만 발현되죠. 이를 조절하는 것이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s)’입니다. 전사인자가 DNA에 붙어야만 유전자가 비로소 발현이 되니까요.
예를 들 어 볼까요. 눈 이 만 들어지기 위해서는 ‘Pax6’ 유전자가 꼭 필요합니다. Pax6 유전자는 유전자의 상하관계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하위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합니다. 그리고 이 하위 유전자들이 눈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죠. 이때 Pax6 유전자가 발현돼 만들어진 Pax6 단백질이 바로 하위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하는 전사인자입니다.
전사인자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Pax6 유전자를 초파리 유전체에서 지우면 눈이 없는 초파리가 태어납니다. 반대로 Pax6 유전자를 눈이 생기지 않는 곳, 가령 날개 부분이나 다리 부분에 발현시키면 날개나 다리 부분에도 눈과 비슷한 모양의 기관을 만들어 내죠(2017년 7월호 기사 ‘초파리 다리에 ‘눈’이 생긴 사연?’ 참조).
하나의 유전자, 뼈와 피부에서 ‘멀티플레이’
오늘 소개하는 ‘Sox9’ 유전자도 Pax6처럼 기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Pax6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눈 형성에만 관여하는 Pax6과 달리 Sox9 유전자는 여러 개의 기관 형성에 관여하거든요.
먼저 Sox9는 뼈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유전자입니다. 배아 발달 중 팔과 다리가 생성되는 곳이 바로 ‘팔 다리싹(limb buds)’이라는 부분인데요. 인간 배아의 경우, 수정 후 약 4~5주가 지나면 몸통에서 팔다리가 생길 부분이 뭉툭하게 솟아오릅니다. 이 부분을 팔다리싹 이라고 부릅니다. 유전자 변형 기술을 이용해 쥐 배아의 팔다리 싹에서 Sox9 유전자를 제거하면 팔과 다리가 아예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위 그림).
그런데 Sox9 유전자를 쥐의 피부세포에서 제거해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언뜻 생각하면 피부에서는 뼈를 만들어내지 않으니, Sox9 유전자를 제거해도 정상 배아처럼 발달할 것 같죠. 그러나 이렇게 태어난 쥐는 몸에 털이 하나도 없습니다. 털은 피부에 있는 모공에서 만들어 지는데, Sox9 유전자가 모공 발달에도 꼭 필요한 유전자이기 때문입니다(아래 사진).
뼈와 모공, 전사인자 활동 달라
Sox9 유전자가 발현되며 만들어낸 단백질 Sox9는 Pax6과 마찬가지로 전사인자로서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합니다. 그렇다면 똑같은 Sox9가 어떻게 팔 다리싹에서는 뼈를 만들어 내고, 어떻게 피부에서는 모공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Sox9의 하위 유전자들이 Sox9 외에 다른 전사인자를 필요로 하고 또 세포들마다 필요로 하는 전사인자들이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쉽게 말해서 뼈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Sox9와 전사인자 A가 필요한데, 모공을 만드는 데에는 Sox9와 전사인자 B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전사인자 A는 오직 뼈세포에서만 발현되고 전사인자 B는 피부세포에서만 발현된다면, Sox9는 뼈세포와 피부세포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유전자 발현에 모두 관여하는 셈입니다.
뼈와 모공 발달에 둘 다 영향을 주는 Sox9 기작을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뼈세포에서는 모공발달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다른 단백질에 꽁꽁 묶여 있어서 전사인자인 Sox9가 가서 붙을 수 없고, 뼈 발달에 필요한 유전자들에만 Sox9가 가서 붙을 수 있다고요.
마찬가지로 피부세포에서는 뼈 발달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꽁꽁 묶여 있어서 전사인자 Sox9가 가서 붙을 수 없고, 대신 모공 발달에 필요한 유전자의 발현만 유도하게 되겠죠. 하나의 유전자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배아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