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과학자들이 마음에 새기고 있는 단어가 있다. ‘하늘을 이고 땅 위에 선다’는 뜻의 사자성어 정천입지(頂天立地)다. 홀로 서서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당당한 기개를 의미하는 말이다.
미국과 함께 G2로 꼽히는 중국의 성장세는 정천입지의 의지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과학기술에서도 최근 중국의 성적표는 G2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는 정부 주도하에 강력하게 추진된 중국 과학기술정책이 있다.
과학기술 혁신 제13차 5개년 계획
‘13·5’ ‘인터넷 플러스(互聯網+)’ ‘과기혁신 2030’.
중국 과학기술회의에 참석하면 꼭 듣게 되는 말들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새마을운동)을 수립해 경제 발전을 견인했듯, 중국은 과학기술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판단 아래 과학기술 5개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2020년까지 추진되는 ‘과학기술 혁신 제13차 5개년 계획(13·5)’ 중에 있다. 13·5가 현재의 중장기 로드맵이라면, ‘인터넷 플러스’ ‘과기혁신 2030’ 등은 중장기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술이다.
중국에 방문하면 길거리에 무리지어 다니는 노란색 자전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공유자전거인 ‘오포(OfO)’다. 2015년 설립된 벤처인 오포는 현재 부산을 포함해 세계 250여 개 도시에서 1000만 여 대의 공유 자전거를 운영할 만큼 성장했다. 모든 기기에 인터넷을 더한다는 중국의 ‘인터넷 플러스’ 정책 덕분이다.
중국 정부는 기존 산업에 모바일 인터넷,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을 융합해 인터넷 금융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 정책은 소위 ‘BAT’라 부르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인터넷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IT 불모지였던 중국 시장은 급속히 성장했고, 알리페이(쯔푸바오), 위챗 월릿(웨이신쯔푸)과 같은 온라인 지불 시스템으로 결제하고, 디디추싱(DiDi Chuxing)으로 차량을 공유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중국 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 업무회의에서 ‘과학기술혁신 2030 중점 프로젝트(과기혁신 2030)’ 가동을 공표했다. 선진국 따라잡기에서 벗어나 과학기술 대국에서 강국으로의 도약을 예고한 것이다. 막강한 생산력을 발판으로 2020년까지 혁신형 국가 대열에 진입하고, 2030년에는 혁신형 국가의 선두에 올라서는 것이 목표다. 6개 중점 프로젝트와 9개 중점 공정을 통해 제조부터 우주 개발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 개발을 강화해 분야별 원천기술 개발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과기혁신 2030의 핵심이다.
‘네이처 인덱스’ 2위 기록
중국 신정부 수립 이후 수립된 로드맵이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있기 때문일까. 중국 과학자들 역시 정부의 전략을 전반적으로 신뢰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합리적인 연구관리 정책이 과학자들의 노력을 북돋아주고 있다.
중국에서 국가 주도 연구과제는 크게 기초와 산업분야로 나눌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이들 과제를 서로 다른 관리 목표를 설정해 관리한다. 기초 분야 연구 결과물은 주로 논문, 특허 등 지적재산이 평가요소다. 반면 산업 과제는 논문보다는 실제 사업화에 목표를 둔다. 따라서 산업 과제의 성공 유무는 개발된 기술을 이용해 실제 시장에서 얼마를 벌었느냐가 된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산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과제가 성공적인 과제로 평가받는 것이다.
산업 과제의 경우 과제 기간 내 개발이 완료되지 않으면 과제를 종료시키지 않는다. 이때 미완성 과제가 있는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하고 이 과제를 완료할 때까지 다른 산업과제의 참여도 제한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어떻게든 끝까지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당연해 보인다.
덕분에 각종 과학기술분야 지표에서 이미 중국은 G2에 걸맞는 성과를 내고 있다.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 1월 18일자에는 양자통신위성 ‘모쯔(墨子·Micius)’를 이용해 7600km, 세계 최장 거리 양자암호 통신에 성공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글로벌 과학출판그룹인 ‘네이처’가 각국의 과학기술력을 평가한 2017년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중국의 평점(WFC)은 미국(1만 6223점)에 이어 2위인 6537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이보다 많이 뒤 처진 1037점에 그쳤다. 중국은 유명 저널에 발표한 논문 수, 인용 횟수, 국제협력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2012년 이후 꾸준히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2005년 대비 과학기술력이 2배 이상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필자는 한국의 과학기술정책도 오랫동안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발전에 기여할 방향으로 로드맵이 수립됐는지 점검하고, 과학기술이 정치를 위한 들러리로 악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할 때다. 정권 교체 때마다 과학기술정책을 쌓고 부수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돌 때 경쟁국은 중장기 전략을 가지고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
정홍식_hongsikjeong@tsinghua.edu.cn
연세대 물리학과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21년간 메모리반도체 분야 연구 개발에 참여했다. 상무로 퇴직한 뒤 연구자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 2016년 9월 중국으로 향했다. 현재 중국 칭화대 전자공학과 교수 및 인공지능센터 연구원으로 인공지능용 소자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