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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읜 백혈구


DNA는 생명의 신비를 간직한 블랙박스다. 이곳에는 갖가지 유전정보(유전자)가 들어 있다. 피부와 머리의 색깔, 쌍거풀 등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정보도 있고,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는 유전자나 비만을 조절하는 유전자도 들어 있다. 이와 같은 유전자가 인간의 DNA에는 약 7만개 들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수면을 조절하는 시계 유전자와 같이 특별한 것들도 많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DNA에 어떤 성질의 유전자들이 들어 있고, 이것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1990년부터 미국국립보건원을 비롯해 전세계 1백여개 유전자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유전자지도의 완성도는 2% 수준이며, 2005년에 완성될 예정이다.

그런데 유전자지도가 하나 둘씩 알려지면서 이를 이용한 유전공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응용분야는 유전성질환이나 불치병을 치료하는 신약개발 분야다. KAIST 의과학연구센터(소장 유욱준)가 세계 최초로 인체백혈구 증식인자(G-CSF)를 생산하는 흑염소'메디'를 탄생시킨 것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인간 백혈구 증식인자 만든 KAIST 의과학연구센터

사람의 골수에서 피가 만들어질 때 백혈구의 증식을 돕는 백혈구 증식인자가 소량 분비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인의 얘기다. 백혈병, 악성빈혈, 암, 에이즈와 같이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수술을 받거나 화학치료를 받으면서 백혈구가 급격히 감소한다. 그래서 백혈주 증식인자를 보충해주지 않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더이상 살 수가없다. 그런데 유전공학을 이용해 사람이 아닌 동물로부터 백혈구 증식인자를 생산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사람의 DNA에는 백혈구 증식인자를 만드는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를 사람의 DNA에서 분리해낸 다음 동물 속에 있는 젖을 만드는 유전자에 붙이면, 동물은 젖을 만들어낼 때 사람의 백혈구 증식인자를 함께 만들어낸다.

KAIST 의과학연구센터는 이런 원리를 이용해 1994년부터 생명공학연구소, 충남대 수의과대학, 한미약품과 공동으로 백혈구 증식인자를 만드는 동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먼저 공동연구팀은 생쥐를 이용해 인간의 유전자와 동물의 유전자가 결합한 후 백혈구 증식인자를 만들어내는지 시험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두번째 단계는 젖을 생산하는 동물을 찾는 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양이나 소를 이용한다. 그런데 공동연구팀은 우리나라 토종 흑염소를 선택했다. 우선 토종 흑염소는 소보다 임신 기간이 짧다. 또 양을 선택했다가 다른 나라에서 먼저 개발한다면 특허분쟁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흉내내지 못할 토종 흑염소를 택했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 됐다. 공동연구팀은 사람에게서 백혈구 증식인자를 설계하는 유전자를 채취한 다음 미세주사기로 토종 흑염소(한번도 임신하지 않은 처녀 흑염소)의 수정란 속에 삽입시켰다. 그런 다음 수정란을 다른 흑염소(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그리고 5개월 후인 지난 3월 마침내 20여마리의 대리모 중에서 백혈구 증식인자를 생산하는 흑염소가 세계 최초로 태어났다. 흑염소의 이름은 '메디' 라고 지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백혈구 증식인자는 대장균에서 발현된 것으로 사람의 백혈구 증식인자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나마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싸다. 그런데 KAIST 의과학연구소가 흑염소 메디를 개발함으로써 인간의 백혈구 증식인자를 대량생산하는 길을 텄다. 요즘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 백혈구 증식인자의 값은 1g당 11억원(금괴 80kg의 값에 해당). 1회 주사료만도 34만원에 이른다. 백혈구 증식인자의 세계시장규모는 연간 12억달러(약1조8천억원)에 이른다고 볼 때, 메디 10마리만 있으면 세계시장 전체를 소화해낼 수 있다. 그래서 메디는 '살아있는 의약품 공장'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세계 최초로 인간의 백혈구 증식인자를 가진 흑염소 메디를 탄생시킨 KAIST 의과학연구센터는 1995년 6월 설립돼 유전공학을 이용한 의약품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욱준 교수를 중심으로 30여명의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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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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