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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비브라늄으로 무장한 슈퍼히어로, 블랙팬서

 

마블 최초로 흑인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 ‘블랙팬서’가 최근 개봉했다. 특히 블랙팬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추격신을 부산에서 촬영해 한국 관객들에게 깨알 같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블랙팬서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흑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고뇌하는 와칸다 왕국의 왕이자 슈퍼히어로다. 와칸다는 아프리카대륙에서 에티오피아와 우간다, 케냐 사이에 위치한 가상의 나라다. 자기부상열차가 상용화돼 있고, 최첨단 고층건물이 즐비하다. 이런 요소들은 가난과 후진적인 이미지로 점철된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뒤집는 강렬한 요소다.

 

슈퍼히어로인 블랙팬서도 화려한 기술로 치장했다. 아이언맨에 필적하는 최첨단 수트로 무장하고, 우주선 같은 개인 전투기를 몰고 다닌다. 특히 이들 장비는 ‘비브라늄’이라는 가상의 광물로 제작한 것으로 나온다. 비브라늄을 탈취하려는 악당과의 대결, 비브라늄이 가진 특별한 힘을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는 배신자의 야망을 꺾기 위한 블랙팬서의 활약이 펼쳐진다.

 

우주에서 온 최강 광물 ‘비브라늄’


영화에서 10만 년 전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졌다고 설정한 비브라늄은 여러 측면에서 이리듐(Ir)을 떠올리게 한다. 원자번호 77번인 이리듐은 지구보다 우주의 소행성에 더 많이 존재하는 원소다. 때문에 6500만 년 전 지구에 지름 10~15km의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공룡이 멸종됐다는 가설의 핵심 증거로 지목된다. 당시 지층에서 무려 30배나 많은 이리듐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공룡 멸종설과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비브라늄을 함유한 운석이 떨어져 지구의 식물상이 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리듐과 달리 비브라늄은 전 세계로 퍼지지 않았고, 오직 와칸다와 남극에서만 발견된다. 지구와 충돌한 천체의 충돌에너지가 65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보다는 작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행성의 구성 성분이 지구 전역에 퍼지려면 소행성의 구성 성분과 운동에너지, 충돌 각도 등 다양한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며 “6500만 년 전 충돌은 크기 10km가량의 소행성이 초속 20km로 충돌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촉매와 전극 등에 쓰이는 이리듐은 산업적으로 유용한 광물이라는 점에서 비브라늄과 유사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비브라늄은 이리듐에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운동에너지를 흡수하는 성질이다. 분자 구조 덕분에 운동에너지를 흡수하고, 큰 충격을 가해도 임계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파괴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서 만든 블랙팬서의 수트와 전투기는 빗발치는 총탄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특히 블랙팬서의 수트는 흡수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초능력(?)까지 갖췄다. 마블의 또 다른 히어로인 캡틴아메리카의 방패도 아이언맨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비브라늄 합금으로 만들었다.

 

비과학적인 설정처럼 보이지만, 총알도 튕겨내는 비브라늄의 능력은 사실은 과학적인 원리에 기반 했다. 바로 방탄복 재료로 쓰이는 아라미드 섬유다. 이 섬유는 비브라늄처럼 운동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방탄복을 착용한 사람을 보호한다. 철보다 부피당 밀도가 작지만 강한 화학결합 덕분에 더 강한 힘을 견딜 수 있어 같은 무게의 철보다 강도가 5배나 크다.

 

비브라늄으로 만든 수트를 입은 블랙팬서(가운데). 뒤로 블랙팬서가 몰고 다니는 전투기가 보인다. 이 전투기는 투명으로 변신하는 특수한 능력을 갖췄다.

 

 

아라미드는 탄소와 수소, 산소, 질소 원자가 규칙적으로 정렬된 사슬 형태의 분자가 여러 번 결합한 구조다. 수많은 사슬을 병렬로 연결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사슬 한 줄을 끊는 것 보다 두 줄을 끊기가 어려운 것처럼 수많은 사슬을 동시에 끊기가 어렵기 때문에 섬유의 강도는 더욱 커진다.

 

방탄복은 그물망처럼 짜인 아라미드 섬유를 여러 겹으로 쌓은 구조다. 총알이 방탄복에 닿으면 아라미드 섬유 전체로 총알의 운동에너지가 순식간에 전파된다. 빠르게 날아가는 테니스 공이 네트의 그물망에 걸려 멈추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화합물 외에 단일 원소로 이뤄진 물질 중에서 뛰어난 방탄 성능을 나타내는 물질로는 단연 그래핀을 꼽을 수 있다(과학동아 2017년 11월 특집기사 참고).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육각형으로 배열된 그물망 모양의 평면 구조로, 다이아몬드보다 강도가 높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한다. 2000년대 들어 ‘꿈의 신소재’로 주목 받으면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재황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그래핀의 분자 구조에서 운동에너지가 전파되는 속도가 총알의 속도(초속 1000m)보다 약 22배 빨라서 아라미드 섬유로 만든 케블라 보다 두 배 강한 방탄 성능을 나타낸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 2014년 11월 28일자에 게재하기도 했다.

 

영화 속 ‘비브라늄’은 ‘카바인’과 닮아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 중에서 비브라늄에 가장 가까운 물질을 꼽는다면 ‘카바인(carbyne)’을 들 수 있다. 이미 상용화된 아라미드나 활발히 연구 중인 그래핀이 안정적인 물질이라면, 카바인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물질인데다 아직 실험실에서 안정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수준이다. 오직 운석과 우주의 성간 먼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한 물질이기도 하다. 우주에 존재한다는 점과 희소성 면에서는 비브라늄과 흡사하다.

 

카바인은 그래핀처럼 탄소로만 이뤄졌다. 다만 구조가 그래핀과 다르다. 카바인은 탄소가 일렬로 결합한 사슬 모양의 1차원 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훈경 건국대 물리학과 교수와 보리스 야콥슨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ACS나노’ 2013년 10월 5일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카바인은 그래핀에 비해 잡아당기는 힘을 견디는 강도가 2배 더 뛰어나다. 카바인이 그래핀보다 분자를 구성하는 탄소 원자끼리 더 많은 전자를 공유하면서 강하게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바인은 또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변할 때 물질의 밴드갭에 변화가 생기는 독특한 특징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반도체 등 전자기기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 교수는 “카바인은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흥미로운 물질”이라며 “방탄복 소재는 물론 나노 전자기기나 수소 저장장치 등에 대한 활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밴드갭 물질의 전자가 갖는 에너지 상태의 특성으로, 밴드갭이 없으면 점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도체가 되고, 넓으면 절연체가 된다. 반도체는 인위적으로, 밴드갭을 조절해 전기전도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블랙팬서가 비브라늄으로 만든 자동차를 타고 부산 시내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

 

노준석 POSTECH 교수팀이 메타표면으로 만든 홀로그램. POSTECH 글자는 가로 20cm,세로 10cm가량의 실제 이미지다.

 

 

‘투명 전투기’ 만드는 투명망토 기술

 

블랙팬서에는 마치 투명망토를 씌운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전투기’도 등장한다. 이 전투기는 가상현실(VR)게임을 하듯 원격으로 조종할 수도 있다. 또 블랙 팬서는 와칸다 왕국의 신하들과 홀로그램으로 통신한다.

 

물체를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술은 SF의 단골소재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망토가 이런 역할을 하면서 ‘투명망토 기술’로 불리기도 한다. 투명망토 기술의 핵심은 메타물질이다. 메타물질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 나노미터(nm·1nm 10억 분의 1m) 수준에서 구조를 인공적으로 정교하게 디자인해 만든 물질이다.

 

 

물질의 구조를 새로 디자인하면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가시광선의 빛이 입사한 뒤 정상적으로 반사되지 않고 흡수되거나 휘어져 나가게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관찰자가 물체를 보지 못하게 돼 투명망토를 덮은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메타물질은 2006년 처음 개발됐는데, 당시에는 마이크로파 영역에서만 물체를 감췄다. 지금은 가시광선을 비롯해 음파를 흡수하거나 휘어지게 만드는 메타물질도 개발됐다.

 

국내에서는 최근 투명망토뿐 아니라 홀로그램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메타물질이 개발됐다. 노준석 POSTECH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팀은 반도체 연구에 쓰이는 실리콘을 가시광선 파장인 400~700nm보다 짧은 50~150nm 단위로 정밀하게 가공해 메타물질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이 메타물질을 평면렌즈 표면에 배열해서 가로세로 1mm인 정사각형 모양의 ‘메타표면’을 만들었다. 이 메타표면은 가시광선을 휘어지게 만들어 뒤에 있는 물체를 보이지 않게 할 뿐 아니라 홀로그램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메타물질을 정밀하게 배열해 메타렌즈를 지난 빛이 휘어지면서 ‘POSTECH’을 공중에 그리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기존의 가시광선 홀로그램에 비해 2배 더 선명했다. 노교수는 “다른 단어를 표현하려면 메타물질의 배열을 바꿔야 하는데, 현재 기술로는 이 배열을 자유자재로 바꾸기 어렵다”며 “세 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메타표면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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