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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대칭미 갖춘 '최후의 만찬'

미술


매일 저 보기 싫은 흉물과 마주하느니 차라리 파리를 떠나겠다.” 프랑스혁명 1백주년을 기념해 개최될 예정이던 만국박람회의 상징물인 에펠탑의 골조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며, 소설가 모파상은 이렇게 불평했다고 한다. 모파상은 건조하고 기계적으로 보이는 이 철탑 때문에 대리석의 도시, 벽돌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의 우아하고 고풍스런 미관이 훼손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파리시민은 물론 이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도 에펠탑이 보기 싫어 파리를 떠나겠다고 투덜대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기술적 진보를 드러내려 했던 에펠탑.수직 상승의 대칭구조다.


에펠탑은 거인의 형상

 

당시 유럽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했던 산업화, 근대화정책의 정수를 선전하는 만국박람회는 말 그대로 제조기술, 가공능력은 물론 자본력을 과시하는 장이었다. 프랑스로서는 1851년에 영국이 박람회를 개최하며 선보였던 수정궁(水晶宮: 현재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미술관)을 능가하는 기술적 진보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박람회운영위원회는 여전히 보수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던 건축가보다는 엔지니어인 에펠에게 이 탑의 설계를 의뢰했다. 그 결과 에펠은 간단명료하지만 풍부한 의미와 싱징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기계적 공정’의 위력을 한껏 발휘한 탑을 세울 수 있었다.

 

전통의 도시인 파리를 일약 문명의 도시, 현대성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로 만든 에펠탑은 기본적으로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대칭구조에 의해 축조됐다. 네 개의 아치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가 균형을 이루며 상승하고 있어서 멀리서 이 탑을 보면 지면에 발을 굳건하게 내린 거인의 형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산업소재인 강철을 이용한 이 탑은 17세기 베르니니가 로마의 나보나 광장에 세웠던 분수조각인 ‘네 강의 원천’의 기본구조를 참조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바로크 고전주의의 거장인 베르니니는 신화적 인물로 의인화한 나일, 갠지스 등의 강을 바로크의 격정적인 양식으로 표현했다. 뒤틀린 듯한 공간처리와 역동적인 인물표현에도 불구하고 그 비례에 있어서 균제와 조화, 질서라는 고전적 아름다움의 원리를 적용했다.

 

미완에 그친 국제노동자동맹 기념비

 

에펠탑이 축조된 지 30여년 뒤에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 혁명이념을 고취하고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할 목적으로 블라디미르 타틀린이란 예술가가 모스크바의 네바 강을 가로지르며 세워질 거대한 기념비의 설계에 착수했다. 에펠탑이 프랑스혁명 1백주년이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면 이 탑은 제3차 국제노동자동맹(코민테른)의 결성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이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전인 지구라트, 그리고 에펠탑을 참조하면서도 타틀린은 혁명의 역동성과 사회주의의 발전된 미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70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철골구조물이 나선형의 골조에 의해 상승하는 형태로 설계했다. 에펠탑이 지상에서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완벽한 대칭을 보여준다면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는 이 기념탑은 그런 만큼 훨씬 강렬한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혁명과 3년에 걸친 내전으로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해있던 소비에트연방으로서는 이런 기념물을 위해 그 어마어마한 강철을 허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레닌조차 이런 계획을 예술가들의 터무니없는 환상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축소모형만 전시되고 만 미완의 기념비였다. 그러나 계획대로 이 탑이 세워졌더라면 옛소련으로서는 1931년에 완공된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무려 25m나 더 높은 현대적 구조물을 미국보다 먼저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비록 이 기념탑이 70도로 기울어진 형태를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축을 중심으로 대칭과 균형 잡힌 구조를 이루고 있음은 당연하다.

 

심메트리아와 에우리드미아


블라미드르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날을 위한 기념비' 원래 모형이 파괴돼 196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대칭이란 개념과 종종 혼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균형을 들 수 있다. 지각심리학에서 시각적인 집합 형태를 조성하는 힘들이 서로를 보완하는 역동적인 상태를 균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긴장들 간의 중화는 균형중심에서 움직이지 않는 부동성이라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에 비해 대칭은 ‘한 분할선이나 분할평면, 또는 중심이나 축 주변의 양 반대면 위에 반분돼 조성된 집합형태, 즉 형식의 정확한 일치’를 의미한다. 이 경우 수직축은 수평축보다 좀더 효과적으로 시각적인 대칭을 만들어낸다.

 

미술에서 균형이나 대칭 혹은 균제는 다같이 비례와 관련돼 있다. 비례의 미에 대해 논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심메트리아’(symmetry)란 용어를 사용해 설명했는데, 그들이 비례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질서’가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는 질서’, 즉 감각이 아닌 지성에 호소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으로서의 균제미였다. 따라서 그들은 조각가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례보다 기하학자가 구성한 수에서의 비례와 아름다움을 더 근본적이며 중요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비례 속에 사물의 신성한 본질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례를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의 지배를 받는 비례는 따라서 그 아름다움보다 신성함 때문에 보다 높게 평가받을 수 있었으며 더욱이 지적으로도 신비적 경향을 띤 것이었다.

 

‘심메트리아’(대칭 혹은 균제)가 우주적 질서, 즉 자연의 영원하고 신성한 절대적 질서를 의미한다면 ‘에우리드미아’(eurhydmia)는 감각적 질서, 즉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질서를 의미했다. 고대 그리스 건축이론가인 비트루비우스는 자신의 저서 ‘건축10서’에서 “에우리드미아는 우아한 외관, 즉 전후관계에서 부분적인 것들을 적절하게 배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그는 “적절한 비례로 지어진 건축물에서 모든 부분들이 전체적으로 대칭되게 잘 어울릴 때 조화가 획득된다”고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비례도.인체에서 원과 사각형의 기하학적 비례를 찾아냈다.


인체 표현의 대칭성

 

비트루비우스의 이러한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계승됐으며 그는 인체를 건축과 같은 구조로 파악, 척추를 둘러싼 근육이 평형의 원칙에 따라 척추를 중심으로 서로 반대방향으로 잡아 당겨줌으로써 머리가 마치 건축물의 돔처럼 척추와 목의 힘을 받아 똑바로 서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미의 불변하는 규범인 대칭(심메트리아)의 원리가 엄격하게 적용된 대표적인 건축이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세워진 ‘파르테논’이었다.

 

또한 대칭의 원리는 건축뿐만 아니라 조각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발전했던 고전기(기원전 5세기) 이전에 많이 제작된 청년상(Kouros)을 통해 이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이집트 조각에 비해 근육이 부드러워지고 세부묘사에 있어서도 사실성이 훨씬 돋보이는 이 고졸조각들을 통해 인체를 이상적 비례의 전형으로 파악했던 그리스인들의 관념을 읽을 수 있다. 비록 한 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좌우대칭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여전히 운동보다 안정이 더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의 정지상태에 역동성을 부여해준 인물이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했던 폴리클레이토스라는 조각가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창을 든 남자’는 왼쪽 발을 뒤로 밀어 약간 들어올림으로써 온몸의 무게가 오른쪽 발목에 쏠리는 한편, 왼손으로 창을 쥐고 있으므로 왼쪽 어깨는 긴장된 채 위로 약간 치켜 올라간 형태를 보여준다. 체중이 오른쪽 발목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골반은 수평이 아니라 한쪽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조각가는 이 작품의 안정을 위해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놓아 전체적으로 신체구조가 완만한 ‘S’ 곡선을 그리도록 했는데, 이것을 ‘대비’(contrapposto)라고 한다. 이 조각은 고졸기의 청년상이 지닌 정적인 대칭과 달리 사지가 긴장과 이완이 교체하는 가운데 운동 속의 안정을 지향하고 있으며 후대의 예술가들이 감각에 비쳐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조각이 여전히 고전기의 원칙인 균제미로부터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수학적 질서인 심메트리아와 감각적 질서인 에우리드미아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은 조각가는 ‘원반 던지는 사람’의 뮈론이었다. 이 조각의 운동감이 매우 뛰어났던 까닭에 훗날 미술사학자들이 체육선수에게 이 조각과 같은 포즈를 취하게 했더니 원반이 날아가기는커녕 그 선수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원반이 선수의 손을 떠나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갈 것만 같은 시각적 역동성 못지 않게 균형잡힌 포즈라는 시각적 효과를 동시에 얻고 있다.

 

뮈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매우 균형 있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실제로 이런 자세로 원반을 던지면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소우주와 대우주의 관계

 

그렇다면 그림에 있어서 대칭성은 어떻게 표현됐을까? 르네상스 시대에 확립된 원근법은 눈에 비친 외계를 2차원의 평면에 옮겨놓고자 한 노력의 결과였으나 그 속에는 비례의 법칙이 적용됐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근법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인문학자이자 예술가로서 르네상스 자체의 이념을 완전하게 표현한 사람은 알베르티였다. 그는 원근법을 통해 우주 한 가운데 서있는 새로운 인간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 즉 원근법은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했던 천동설의 연장이자 주체적 시각에서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의 승리를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과학자를 꼽는다면 누구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들 것이다. 그는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론을 새롭게 주목해 유명한 인체비례 도식을 만들었다. 이 소묘는 우주의 질서를 반영하고 있는 작은 세계(소우주)로서 이상적 인간이란 그의 관념을 잘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두 팔을 벌린 길이는 신장과 같으며, 두 다리를 신장의 4분의 1만큼 벌리고 팔을 뻗쳐 중지를 정수리 높이까지 올린 다음 원을 그리면 그 중심은 배꼽이 되며, 배꼽과 두 다리 사이의 공간은 정확한 이등변 삼각형이 된다. 다빈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인체의 외곽에 정사각형과 원을 그려 넣었다.

 

이처럼 다빈치가 ‘구조’에 그토록 몰두했던 것은 사물의 도식(schema)을 알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생겨난 대단히 실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 결과 그는 자전거, 자동차, 기중기, 글라이더, 심지어 오늘날 팩시밀리에 해당하는 문자전송장치까지 창안할 수 있었다. 다빈치의 과학적인 관심이 예술적 천재성과 결합된 대표적인 작품은 밀리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이다. 이 작품은 원근법의 원리를 적용해 마치 수도승들이 예수와 함께 같은 식당에 앉아 식사를 하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내도록 만들고 있다.

 

공간과 일체 되는 구도의 완전성

 

그림 속의 예수를 중심으로 열두 제자들이 각각 세 명씩 한 그룹을 형성, 좌우로 두 그룹을 배치함으로써 화면의 통일성을 고양시키고 있다. 예수의 뒤에 있는 세 개의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과 그 너머 풍경은 2차원의 평면에 깊숙한 공간감을 부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돌출한 식탁 위에 놓여진 각종 그릇이나 음식물조차 마치 우리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보는 것과 같은 실재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충격적인 말에 놀란 제자들의 소란과 동요가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제자들의 손짓과 표정을 통해 지극히 대칭적인 구도 속에서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칭과 고도로 조절된 질서를 가지고 있는 ‘최후의 만찬’은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자기충족적인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개방된 차원은 정면을 향한 것인데, 이 정면의 차원에 의해 최후의 만찬은 그림이 그려진 머리 높이의 식당벽의 축과 연결된다. 이 때문에 그림이 걸려있는 주변의 실내가 그림의 구조틀과 일체가 돼 그림 전체의 구도가 건축적인 세팅에 안전하게 편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구도의 통합성은 원근법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또는 식당 창문을 통해 그림의 장면이 쏟아지는 듯 보이는 빛에 의해서도 손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지배했던 조화와 균제에 의한 통일성의 원리는 근본적으로 유동적이고 변화가 많았던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안정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원근법이 비록 과학적 성과라고 할지라도, 그 결과는 환영(illusion)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화가가 의문을 갖고 탐구하는 것은 물리적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들이 반응하는 것으로서의 자연이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화가는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떤 효과의 메커니즘에 관심을 쏟는다. 그가 문제삼는 것은 하나의 심리학적인 문제, 즉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그림자 하나조차도 일치하지 않는데도 그 속에서 설득력 있는 이미지를 추출해내는 그런 문제인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좌우대칭의 구도로 식당의 전 공간과 일체가 돼 내부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식사하는 느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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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최태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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