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 유산, 스트레스 때문?
‘자연 유산(miscarriage)’은 의학적으로 임신 20주 이전에 자연적으로 임신이 종결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변에서 겪거나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현상이지만 자연 유산의 발생률과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죠. 이번 강의에서는 유산과 관련된 세포의 감수분열과 인간의 난자 형성 과정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미국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임신 진단을 받은 사람이 자연 유산을 겪을 확률은 15~20%입니다. 강의 때 이를 언급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깜짝 놀랍니다. 발생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다고요.
이처럼 자연 유산에 대해서는 대중들의 오해가 많습니다. 2015년 미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와 몬테피오레 메디컬센터 등 공동연구팀이 미국인 108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자연 유산 발생률이 5% 이하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자연 유산의 원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6%가 스트레스를 꼽았습니다. 중복 응답으로 무거운 물체를 드는 행동과 경구 피임약을 원인으로 지목한 사람도 각각 64%, 22%로 많았습니다. doi:10.1097/AOG.0000000000000859
진짜 원인은 감수분열 오류
하지만 자연 유산의 약 60%는 부모의 행동과는 무관한, 우연한 염색체 수 이상으로 발생합니다. 인간 세포는 22쌍의 상염색체(autosome)와 1쌍의 성염색체(sex chromosome, X와 Y), 즉 46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는데요. 수정란의 염색체가 이보다 한두 개 적거나 한두 개 더 많으면 스스로 발달을 멈춥니다. 즉, 임신이 종결되죠.
그렇다면 수정란의 염색체 수는 왜 정상(46개)보다 적거나 많아지는 걸까요? 바로 생식세포를 만들어 내는 세포 분열, 즉 감수분열에 오류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먼저 일반적인 감수분열을 살펴볼까요. 감수분열의 목적은 염색체의 수를 반으로 줄여 23개의 염색체를 갖는 생식세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수정란의 염색체 수가 46개가 돼야 하니까요. 세포는 분열에 들어가기 전에 유전물질을 복사합니다. 우리가 흔히 염색체를 ‘X’ 모양으로 그리는데, 이는 복제를 통해 2개가 된 자매염색분체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대로 복사를 했으니 ‘자매’보다는 ‘쌍둥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네요.
복제된 염색체는 자신의 짝인 ‘상동염색체’를 찾습니다. 예를 들면 엄마에게서 받은 염색체 1번이 아빠에게 받은 염색체 1번을 찾아가 붙습니다. 23쌍의 염색체가 모두 짝을 찾으면 세포의 양쪽 극에서 방추사가 뻗어 나와 염색체에 붙습니다.
그 결과 염색체가 반씩 찢어지며 세포의 양쪽 끝으로 당겨집니다(위 그림). 이후에 세포질이 분열되면 염색체 분리가 한 번 더 일어나고, 마지막에 23개의 염색체를 갖는 생식세포 4개가 만들어 집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죠. 염색체 구조에 문제가 있거나, 한쪽 극에서 나온 방추사가 쌍을 이룬 염색체 두개에 모두 붙을 수 있습니다. 방추사가 염색체에 아예 붙지 않는 경우나, 방추사가 세포의 양극 외에 또 다른 곳에서 뻗어 나와 염색체에 붙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경우엔 염색체가 동등하게 양쪽으로 분리되지 못하고 하나의 세포에 더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염색체 수가 정상(23개)보다 적거나 많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염색체 수 이상 현상은 정자 생성 과정보다 난자 생성 과정에서 더 자주 일어납니다. 왜일까요? 다음 질문에서 자세히 이야기 나눠 보죠.
최영은_yc709@georgetown.edu
미국 바드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발생학 및 재생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우는 과학이 아닌 질문하는 과학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과학교육에 발을 담그게 됐다.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부에서 유전학, 발생학 등을 가르치며 새로운 대학 과학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2. 큰 난자의 부작용이 유산?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아물 때 필요한 피부세포를 만드는 방법은 유사분열입니다. 정자와 난자를 만들어 낼 때의 감수분열은 이것과 차이가 있죠. 재미있는 사실은 난자를 생성하는 감수분열과 정자를 생성하는 감수분열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세포 분열은 유사분열과 감수분열 두 가지입니다. 유사분열은 수정란을 비롯한 우리 몸의 모든 체세포들이 분열하는 방법입니다. 반면 감수분열은 생식세포를 만들어 내는 분열 방법입니다.
유사분열은 1번, 감수분열은 2번
유사분열은 분열 전 세포와 분열 후에 생긴 세포가 유전적으로 동일합니다. 즉, 분열 전 모세포가 46개의 염색체를 가졌다면 분열 후 생긴 두개의 딸세포 역시 46개의 염색체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딸세포가 모세포로 자라 다시 분열할 때 세포 분열로 인해 염색체 수가 줄어드는 일이 생기지 않으니까요. 때문에 분열을 준비하는 세포는 자신의 유전물질을 복제한 뒤, 분열할 때 염색체를 반반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생식세포를 만들 때는 이런 유사분열이 일어나면 큰 문제가 됩니다. 수정란의 염색체 수가 세대를 지날수록 배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 체세포처럼 정자와 난자에 46개의 염색체가 있으면 둘이 만나 생긴 수정란에는 총 92개의 염색체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수정란이 어른으로 자라 자신의 생식세포를 만들고 수정을 이루면 그땐 수정란의 염색체가 무려 184개나 됩니다.
따라서 생식세포를 만드는 감수분열은 유사분열과 달리 염색체 수를 반으로 줄이기 위해 두 번의 분열 과정을 거칩니다. 그 덕에 생식세포에는 46개가 아닌 23개의 염색체가 들어가게 되고, 감수분열 후에는 2개가 아닌 4개의 딸세포가 생깁니다.
감수분열과 유사분열의 또 다른 차이점은 감수분열에서는 염색체가 분리되기 전에 자신의 짝을 찾는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아빠에게서 받은 염색체와 엄마에게서 받은 염색체 사이에 유전물질 교환이 이뤄집니다.
염색체 수 확인하는 셀프 시스템
그런데 흥미롭게도 정모세포와 난모세포가 각각 감수분열로 만들어낸 생식세포 수가 다릅니다. 정모세포가 감수분열을 해서 4개의 정자를 만들어내는 반면, 난모세포는 감수분열 후 단 하나의 난자를 만들어 냅니다. 난모세포가 분열을 할 때 세포가 동등하게 반반씩 나눠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모세포만큼 큰 딸세포 하나와 이에 비해 아주 작은 두 번째 딸세포가 생기고, 작은 딸세포는 결국 퇴화합니다(위 그림).
난모세포가 4개의 난자가 아닌, 하나의 큰 난자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정란에게 충분한 세포 소기관과 단백질, mRNA 등을 제공하기 위해서죠(과학동아 2017년 11월호 기사 ‘수정란은 엄마가 먹여 살린다?’ 참조). 그러나 난자의 이런 특성은 염색체 수에 이상 현상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세포주기 확인점(cell cycle checkpoint)’이라는 기작을 작동시킵니다. 분열 중 염색체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는 경우, 이 기작을 통해 세포 분열의 진행을 막습니다. 염색체 수가 이상한 딸세포가 생성되지 않도록 애초에 막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자 생성 과정에서만 이 기작이 먹통이 됩니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한 실험에서는 염색체 분리가 일어나기 전의 쥐 난모세포를 반으로 잘라 세포질의 양을 반으로 줄였습니다. 그 결과 세포의 염색체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으면 세포주기 확인점이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doi :10.1371/journal.pone.0027143 또 다른 실험에서는 개구리 난자를 이용했습니다. 염색체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분열을 지속하는 개구리 난자 추출물에 정자의 핵을 넣었습니다. 염색체를 두 배로 늘린 거죠. 그 결과 세포주기 확인점 기작이 작동하면서 분열을 멈췄습니다. doi:10.1016/0092-8674(94)90256-9
결론은 세포질과 염색체의 비율이었습니다. 난자의 경우 염색체 수에 비해 세포질의 양이 너무 많아서 염색체가 제대로 분리되는지 스스로 점검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나의 큰 난자를 만들어내는 대가로 자연 유산의 빌미가 생긴다니, 참 아이러니한 생명 법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