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Issue]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가다

백화(白化)로 몸살 앓는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

호주 북동쪽 그레이트배리어리프(Great Barrier Reef) 해양국립공원. 스쿠버다이빙을 이끌던 ‘다이브마스터’가 활짝 펼친 손바닥을 머리 위로 올렸다. 상어가 나타났다는 의미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이가 족히 1m는 넘을 것 같은 상어가 헤엄쳐온다. 입에 문 레귤레이터(스쿠버다이빙용 호흡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소리를 지르려다 물만 잔뜩 먹었다. 두꺼운 입술을 가진 나폴레옹피시가 시비를 걸듯 어깨를 치고 지나가더니, 바다거북이 살랑이며 헤엄친다. ‘리프 인카운터(Reef Encounter)호’에 승선해 2박 3일.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둘러봤다.

 

英 방송기자 “17년 전보다 못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 지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BBC 선정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호주 북동쪽 해안을 따라 2300km가 이어진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는 이토록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도 보인다는 산호초 지대는 다양한 해양 생물과 이국적인 산호초들로 이뤄진 ‘바다의 숲’이다. 면적은 무려 20만 7000km2로 남한의 2배에 이른다. 스쿠버다이버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곳을 지난해 말 찾았다.

 

드넓은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하루에 둘러보기는 힘들다. 고도 150m 정도에서 나는 경비행기로 일대를 둘러보거나, 숙식 시설을 갖춘 배에 탑승해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7일간 암초 지대를 탐방하는 ‘리브 어보드(Live aboard)’ 투어가 있다.

 

스쿠버다이버인 기자의 선택은 당연히 리브 어보드. 리프인카운터호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구석구석을 데려다 주는 이동수단이자 호텔 겸 식당이었다. 배의 난간에 서서 크게 한걸음 내딛으면 광활한 바다 숲으로 단숨에 이동한다.

 

글쎄요. 전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전에 방문했을 때에 비해 감흥이 적은데요.

 

첫 다이빙을 마치고 배에 올라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흔들어보였다. ‘멋지다’는 의미의 스쿠버다이빙 수신호다. 영국에서 방송기자로 일한다는 엠마 로슬리 씨(41세·여) 는 기자와 달리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17년 전 신혼여행으로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찾았던 로슬리 씨 부부는 자녀와 함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다시 이곳에 찾았다. 하지만 산호초가 예전 같지 않다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로슬리 씨의 말을 들은 후 자세히 산호를 관찰하니 왠지 삭막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구 기온 상승 시기에 대규모 백화 현상


숨소리만 들리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밤바다 속. 손전등을 끄고 손을 휘휘 저으면 바다에는 ‘은하수’가 떠오른다. 플랑크톤이 압력을 받거나 파도의 움직임에 휩쓸리며 반딧불이처럼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이다. 이런 플랑크톤이 바로 산호의 먹이다. 산호는 플랑크톤을 잡아 삼킨 뒤, 몸 속 플랑크톤이 광합성으로 만든 에너지를 양분 삼아 살아간다. 산호의 색 역시 플랑크톤이 결정한다.

 

 

녹색, 노란색, 붉은색 등 다양한 형태의 산호가 모여 이뤄진 산호초는 ‘바다의 보물’ 로 불린다. 해면동물이나 조개, 해마 등 바다 생물의 쉼터이자, 작은 물고기들이 포식자를 피해 숨는 은신처가 된다. 전 세계 바다에서 산호초가 차지하는 면적은 0.1%가 채 되지 않지만, 해양생물의 4분의 1이 산호초와 어우러져 살아간다.

지난 40여 년간 산호초의 화려함은 점차 바래왔다. 형형색색 빛나던 바다 숲이 색을 잃었다. 산호에 에너지를 제공하던 플랑크톤이 수온 변화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산호의 골격이 드러나는 백화(白化)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플랑크톤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지목된다. 18개국의 해양생물학자가 ‘미국기상학회보(BAMS)’ 1월 13일자에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는 “인간이 야기한 기후변화 외에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발생한 대규모 백화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3차례의 대규모 백화 현상을 겪었다. 세계 최대 산호초 연구기관인 호주연구협의회(ARC) 산호초연구센터(Coral CoE) 연구진은 지난해 3월 “엘니뇨 등 수온 변화로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산호 중 90% 이상이 색을 잃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지난 20년간 이 지역 산호초의 변화를 항공 및 수중 이미지, 해수면 온도 변화 등 데이터를 통해 분석했다. 그 결과 1998년, 2002년, 2016년의 세 차례에 걸쳐 유독 백화 현상이 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시기는 지구의 온도가 극심하게 상승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1998년에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해안가 지역에서만 백화가 발생했다. 하지만 2002년에는 발생 지역이 더 넓어졌고, 2016년에는 단 8.9%의 산호만이 백화의 타격을 피했다. 남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산호가 본연의 색을 잃었다. 박흥식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생태기반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처음에는 육지에서 가까운 바다에 백화 현상이 발생하다가 점차 대양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백화 현상 빈도, 40년 전보다 5배 높아


고통을 호소하는 건 그레이트배리어리프만이 아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호주 제임스쿡대 등 공동연구진은 전 세계 65개국에 분포한 100개 암초(reef) 지대의 산호초 변화를 40년간 추적했다.

 

그 결과 1980년대에는 25~30년마다 발생하던 대규모 백화현상이 2010년 이후에는 평균 5.9년마다 발생하고 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월 16일자에 발표했다. 40년 전에 비해 5배나 잦아진 것이다.

 

또 연구진은 과거의 백화현상은 반경 10km 이내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넓은 지역에 걸쳐 발생한다는 분석 결과도 공개했다. 2015~2016년 발생한 백화 현상은 수십~수백km에 이르는 지대의 산호에 나타났다. 이때 전 지구 산호의 75%가 색이 바랬다. 100개의 산호초 지대 중 단 6개 만이 1980년 이후 벌어진 백화 현상을 피했다.

 

테리 휴즈 제임스쿡대 교수는 “백화 현상은 엘니뇨처럼 자연적 변동에 의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주로 발생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자연적 변동과 무관하게 백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수온이 떨어지는 라니냐가 발생해도 40년 전 엘니뇨 발생 기간보다 수온이 높다”고 말했다.

 

수온이 높게 유지되는 만큼 온도가 약간만 상승해도 산호가 더 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의미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해 초 세계 산호초의 대부분이 2043년부터는 매년 백화 현상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백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산호가 자연적으로 회복할 겨를도 없이 또 타격을 입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호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이 지나야 본연의 색을 되찾는다. 또 해양생물의 4분의 1이 산호를 통해 먹이와 서식지를 공급받는 만큼 산호 생태계의 붕괴는 해양 생태계의 붕괴로 직결된다.

 

건강한 산호 이식하고, 정자 채취해 보관


과학자들은 산호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을 곳곳에서 펼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산호의 생존을 위한 최적 환경 조건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물고기가 오줌으로 내보내는 인(P)과 아가미로 내보내는 질소(N)가 산호의 생장에 핵심 영양소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미세먼지가 심하면 태양의 복사에너지 유입량이 줄어 산호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백화 발생 전(2016년 2월 26일₩위)과 발생 후(2016년 4월 19일₩아래)에 촬영한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지역 산호초의 모습. 흰색 산호초가 백화로 인해 색을 잃고 황폐해졌다.

 

산호초를 직접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미국 마이애미대 연구진은 건강한 산호를 양식하는 종묘장을 구축했다. 산호초 생태계는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겪는데, 건강한 산호가 많을수록 건강한 생태계가 구축된다. 건강한 산호의 생식력이 그렇지 않은 산호에 비해 4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키운 건강한 아기산호를 퇴화된 암초에 이식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카리브해 지역에서 90% 가량 멸종한 ‘석산호(staghorn coral)’를 배양한 뒤 바다에 이식했다. 이식된 산호는 야생 산호와 비슷한 생존력을 보였다.

 

건강한 산호의 정자를 채취해 장기 보존하는 ‘정자 은행’도 생겼다. 호주 타롱가보호협회는 31개 산호초 지대에서 1710억 개의 산호 정자를 확보해 냉동했다. 앞으로는 급속 냉동에 취약한 산호의 난자나, 수정란과 어린 개체를 냉동 보관하는 기술도 개발할 계획이다.

 

제르겔리 토르다 제임스쿡대 교수는 “기후변화를 되돌릴 수 없다면 산호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며 “산호의 생존력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해양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만큼 해양 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케언즈=권예슬 기자

🎓️ 진로 추천

  • 해양학
  • 환경학·환경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