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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8일부터 장기기증과 장기이식을 소재로 한 웹드라마 ‘뜻밖의 히어로즈’가 방영됐습니다. 심장, 각막, 인대를 이식 받은 뒤 초능력이 생긴 고등학생 3명이 주인공인데요. 인대를 기증받은 민수호(최종훈 분)는 이식 후 괴력이 생겼고, 심장을 이식 받은 배준영(이민혁 분)은 소심한 모태솔로였지만 수술 뒤 모든 여자의 마음을 읽게 됐습니다. 각막을 이식 받은 이윤지(김소혜 분)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지게 됐죠. 이들은 자신들이 얻게 된 능력으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 나갑니다.

 

 

심장 이식의 진실
과연 이 드라마의 설정처럼 장기이식을 받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라는 심리학 가설이 있습니다. 세포에도 기억 능력이 있어 주인의 습관이나 행동 등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심장과 같은 장기이식을 한 경우, 수여자가 기증자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죠.

 

게리 슈워츠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는 이런 사례를 모아 1999년 의학저널인 ‘통합의학’에 발표했습니다. 그 중 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평소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열 여덟 살 소년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같은 나이의 여학생에게 심장을 기증했습니다. 그 소년은 ‘대니, 나의 심장은 너의 것이야’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이 노래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녀가 심장을 이식 받은 뒤, 이 노래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해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나는 이전에는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못했지만, 이식 이후 음악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죠. 논문에는 이런 신기한 사례 10가지가 소개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례에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습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우연의 일치이거나, 기증자에 대해 들었던 정보들이 종합돼 마치 알던 사람처럼 느끼는 감정일 뿐이라고 설명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룰러 메모리 가설은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됐습니다. 2015년 JTBC 드라마 ‘순정에 반하다’, 2016년 SBS 드라마 ‘사랑은 방울방울’ 등은 모두 심장 이식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기증자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수여자에게 전달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죠. 아무래도 심장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인가 봅니다.

 

 

면역반응 토대로 한 성장물
만약 과학기자인 제가 장기이식을 주제로 드라마를 쓴다면, 좀 색다른 성장물(이지만 마지막은 감동으로 끝나는 작품)을 기획할 것 같습니다. 심장을 이식 받아 어두워진 남학생 ‘김과동’과 각막을 이식 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여학생 ‘최기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이런 캐릭터를 설정한 데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심장, 신장, 간 등 장기이식을 받게 되면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합니다. 우리 몸에는 외부 물질이 들어오면 이를 막기 위한 면역세포가 있는데요. T세포와 B세포가 대표적입니다. 그 중 T세포는 심장 근처에 있는 흉선에서 성숙 과정을 거칩니다. 성숙한 T세포만이 면역세포로 일할 수 있죠.

 

사람도 성숙해지려면 힘든 경험이 필요하듯, T세포가 성숙해지는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우리 몸의 체세포를 인식할 수 있느냐’ 입니다. 체세포는 ‘MHC Ⅰ’이라는 작은 표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 표지는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이상 다 다르게 생겼습니다.

 

T세포는 이 표지를 인식해 우리 몸의 체세포인지, 외부 물질인지 판단합니다. 이 관문을 통과한 T세포는 두 번째 관문인 ‘자신의 체세포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가’ 테스트에 들어갑니다. 만약 자기 세포를 적으로 인식해 공격한다면 큰 문제가 생길테니까요. 이 단계에서 자기세포를 적으로 인식하는 T세포가 많아지면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장기 기증자의 심장은 수 여자와 다른 체세포로 이뤄져 있습니다. MHCⅠ 분자 역시 다르겠죠. 즉, 수여자의 혈액 속에 있는 면역세포들은 기증자의 심장을 외부 물질로 인식합니다. 가만히 두면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되겠죠. 그래서 수여자는 자신의 면역세포의 능력을 조금 떨어뜨리는 면역억제제를 먹습니다.

 

문제는 이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입니다. 우선 외모부터 변화가 생깁니다. 피부에 검은 반점이 생기거나, 여드름이 나기도 하고, 얼굴과 몸이 심하게 붓기도 합니다. 이명선 서울대 간호대 교수가 2017년 2월 발표한 ‘심장이식 환자의 체험: 현상학적 연구’ 논문에서는 심장이식을 받은 이들이 ‘외모의 심각한 변화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져 전반적인 사회 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면역억제제의 또 다른 부작용은 감정 조절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다 보면 쉽게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며 화를 낸다거나 우울해지는 등의 감정 변화가 심해지기도 합니다. 또 면역을 억제시키다 보니 자연스레 면역력이 약해져 감염 위험성이 있는 곳은 되도록 가지 않아야 하며,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꽤나 많습니다.

 

 

심장을 이식 받은 김과동은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합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됐지만, 참고 이겨내야 할 것들도 많아진 겁니다. 아직 고등학생인 과동이가 견디기엔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그럼 각막을 이식 받은 최기자는 어떨까요. 기자는 최소한의 면역억제제만 복용하면 됩니다. 공격적인 면역세포는 대부분 혈액에 존재하는데요. 각막에는 혈관이 분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다른 장기 이식과 달리 수술 전에 기증자와의 조직 적합성 검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술 뒤 면역억제제를 먹지 않아도 되는거죠. 그래서 면역억제제로 인한 부작용이 없는 겁니다.

 

과동이가 갑자기 넘어지고, 기자에게 가슴이 뛰는 스토리에도 다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심장 이식을 했다고 기증자의 기억이 수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수여자가 이질감을 느끼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심장이식 수술을 할 때 신경을 연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의학기술로도 신경을 연결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이유로 계단을 오르거나 뛰어갈 때, 심장의 반응이 늦어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을 느끼곤 하죠.

 

심장이 의지와 상관없이 두근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자에게 설레어서 쿵쾅댈 수도 있지만, 나의 생각이나 의지가 아니라 단지 심장의 단독행동이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김과동, 최기자가 등장할 이 드라마는 한국인이 선호하는 감동 코드로 끝을 낼 겁니다. 뻔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실제로 장기이식이라는 큰 수술을 마친 뒤에도 많은 수여자들이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힘을 주고 싶습니다.

 

이명선 교수의 논문에서 한 참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료하는 의사조차 ‘살았는데 그 정도도 안 아프겠냐’며 핀잔을 줍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니까 건강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사후 수여자들의 부작용에 대한 이해도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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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 사진

    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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