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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을 환기시키세요

양창순의 심리학 테라피

“선생님, 제 병의 치료법은 뭔가요?”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은 꼭 필자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말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을 것. 머릿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감정, 기억, 경험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운다. 둘째, 속마음을 털어 놓으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을 것. 필자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혹 상담을 받는 사람들 중에 필자의 대답을 듣고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상담에서 뭔가 마술적인 효과를 기대한 듯하다.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의사는 한 마디로 “당신의 문제는 과거의 이러저러한 경험이 원인입니다”라고 정의내리고, 자신은 단번에 ‘아하’하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변화하리라 기대라도 한 걸까. 하지만 현실은 물론이고 상담에서 마술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치료자는 마술적인 치료를 기대하는 상담자를 경계한다. 인간관계에서 마술을 기대하는 사람은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필자도 정신과수련의 과정을 시작할 때는 말이 과연 치료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상담을 하면 할수록 그 효과를 실감한다. 누군가에게 내 안의 감정을 말로 꺼내 놓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털어놓기의 힘



‘화병’도 나의 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해 생기는 병이라 할 수 있다. 화병은 세계정신의학회에 ‘우리나라 고유문화관련증후군’으로 등재돼 있다. 서양정신의학에서는 화병을 우울증, 신체화 장애, 불안증 등이 섞여 있는 증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런데 화병에는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과 연관된 증상을 호소한다. ‘가슴에 불덩어리가 들어앉은 것 같다’라든지, ‘온몸에 불덩어리가 돌아다닌다’, ‘열이 나서 못 살겠다’, ‘무언가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같은 말을 한다. 덥고 어지러워 가만히 있을 수 없다거나 한 겨울에도 문을 열어젖혀야 시원하단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그렇게 된 연유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나의 힘든 상황을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병이 생기는 과정은 마치 농부가 거름을 만들 때와 비슷하다. 농부는 거름을 만들 때 짚, 잡초, 낙엽 등을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그러면 공기가 순환하지 못해 퇴비가 썩어 들어가다가 열이 발생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좌절과 슬픔, 원망과 분노 같은 감정의 찌꺼기도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하면 문제가 생긴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두엄 더미에서 열이 나듯 환기가 되지 못한 마음에는 열이 쌓이면서 화병이 인다. 흔히 사람들이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현상 때문이다.



어느 젊은이가 직장에서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다. 괴로운 상황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기도했는데,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런 아들을 보고 억장이 무너진 어머니는 아들이 다니던 회사를 상대로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회사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어머니는 누군가가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했다. 비가 오나 137눈이 오나 매일같이 검찰청 앞에 서서 일인 시위를 했다. 경비가 끌어내도 그때뿐, 어머니의 시위는 계속됐다. 하지만 아무도 어머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던 한 젊은 검사가 그 어머니를 보고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이야기나 들어보자”며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 검사는 몇 시간이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법률적인 설명도 해줬다. 이야기를 다 들은 검사는 “어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드님 사건은 법적으로 한계가 있으니 시위는 그만 접고 아들 간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가 진심을 담아 어머니를 위로하자 어머니는 참았던 서러움을 쏟아내며 목 놓아 울었다. “고마워요.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은 당신이 유일했어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쏟아 놓으면 마음을 정리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이 바로 털어놓기의 힘이다.]
 


마음의 병 일으키는 과거의 기억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긴 감정을 남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행동을 주저한다. 만약 감정적으로 위로받지 못한다면 화병 같은 심신의 병이 생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가감 없이 충분히, 많이 쏟아낼수록 마음을 정리하기가 쉽다. 방이 꽉 차 있으면 새로운 물건을 넣을 수 없듯이, 과거의 아픈 기억과 감정을 빼내야 긍정적인 감정과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노이로제’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와 싸우느라 자기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쓰는 상태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자기 발전을 위해 에너지를 쓴다. 말이나 글로 내 마음을 비우는 행동이 이에 속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했다. 마음에 맞는 상대와 대화를 나눈다거나 일기를 쓰며 마음속 감정의 노폐물을 정리하며 한 해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마음의 환기’를 꾸준히 실천한다면 건강한 마음으로 내 안의 잠재력을 활짝 펼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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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원장│이미지출처 istockphoto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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