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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좌완투수의 시대 왼손의 힘

 

 

얼마 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었던 야구선수 손아섭이 롯데자이언츠와 4년 총액 98억 원에 계약을 체결하면서 역대 FA 중 연봉 3위를 기록했다. 왼손 타자로 유명한 손아섭 선수는 그간 롯데에 소속돼 있으면서 8년 연속 3할 이상의 타율을 보이며 팀의 중심 타선을 맡아왔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수여하는 2017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기아타이거스의 양현종 선수 역시 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투수이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LA다저스의 왼손 투수인 클레이턴 커쇼가 수년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왼손잡이 강속구 투수라면 지옥에서라도 데려오라’는 말이 회자된다. 그만큼 좌완투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환영받는 존재다. 여기에는 나름의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야구의 비대칭성
우선 야구가 가지는 독특한 비대칭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야구는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을 가진 구장에서 경기를 치른다. 축구, 농구 등 여타 스포츠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이다. 특히 메이저리그의 경우 야구장은 각양각색이다. 가령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는 ‘그린 몬스터(Green Monster)’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높은 좌측 담장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비대칭성이 두드러진다(86쪽 사진).

 

그래도 내야는 모두 똑같은 규격의 네모 반듯한 다이아몬드 형태에서 치러지지않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일한 규격이라고 할지라도 왼손 타자에게 유리한 중요한 비대칭성이 있다. 바로 타자가 반시계 방향으로 베이스를 돈다는 점이다. 1루쪽 타석에 들어서는 왼손 타자는 오른손 타자에 비해 1루까지의 거리가 두 세 걸음 더 가깝다. 특히 스윙 후 몸이 쏠리는 방향까지 고려한다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찰나의 순간에 세이프와 아웃이 갈리기도 하는 야구에서는 두 세 걸음이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실제 이런 이유로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선수 최초로 3000안타 고지에 오르며 ‘안타 제조기’로 불리는 일본출신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원래 오른손잡이인데도 불구하고 왼쪽 타석에 들어선다고 한다.

 

 

왼손 타자엔 왼손 투수가
왼손 타자를 상대하는 데에는 왼손 투수가 유리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루기(Loogy·Lefty One-Out Guy)’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상대팀의 왼손 강타자를 전담 마크하기 위한 좌완 스페셜리스트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경기 중후반 중요한 상황에서 짧게 등장해 주로 왼손 타자들을 상대하고 내려간다.

 

 

단 한 명만을 상대하는 경우도 흔하다. 국내 LG 트윈스의 진해수 선수나 NC 다이노스의 임정호 선수가 대표적이다. 타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쪽 손을 쓰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경우 팔이 나오는 각도를 파악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마치 공이 자신의 등 뒤에서 날아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왼손잡이가 상대적으로 적어 공의 궤적이 더 낯설기 때문이다. 이런 희소성은 왼손 투수에게 강력한 무기가 된다.

 

왼손잡이가 유리한 만큼 야구선수 중 왼손잡이의 비율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전체 인구에서 왼손잡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10% 정도인데 비해 야구선수의 경우 25% 정도가 왼손잡이다.

 

 

야구에서 상위 30%가 왼손잡이
왼손잡이 선수가 유리한 재미있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2017년 11월 과학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4페이지 분량의 짧은 연구 결과가 실렸다. 독일 올덴버그대에서 스포츠과학을 연구하는 플로리안 로핑 교수의 연구다.doi: 10.1098/rsbl.2017.0446

 

로핑 교수는 선수들끼리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한 운동인 권투, 야구 등에는 왼손잡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그렇지 않은 당구, 다트 던지기 등에서는 이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로핑 교수는 두 선수 사이의 거리가 가깝고, 빨리 반응해야 하며, 익숙하지 않은 상대의 동작에 재빨리 적응해야 하는 종목의 경우 왼손잡이의 비율이 더 높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는 야구, 크리켓,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스쿼시를 연구대상으로 정했다. 매번 비슷한 동작을 취하는 운동인 동시에 선수들 간에 공을 주고 받는 시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야구와 크리켓은 던지는 사람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의 평균을, 다른 라켓 운동의 경우 라켓에 공이 맞는 순간부터 상대 선수의 라켓에 공이 맞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의 평균을 이용했다. 그리고 2009~2014년 이들 종목별로 상위 100위에 드는 선수들 중 왼손잡이의 비율을 조사한 뒤, 공과 라켓의 반응 시간과 왼손잡이 비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평균 0.4초 안에 스윙을 해야 하는 야구에서는 좌완투수가 무려 30%나 존재하는 데 비해, 1.4초 정도 걸리는 스쿼시에서는 9% 내외였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승부가 결정되는 종목(야구, 크리켓, 탁구)의 왼손잡이 비율은 이보다 시간이 긴 종목(배드민턴, 테니스, 스쿼시)에 비해 2.6배 높았다.

 

두 선수 간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이라도 반응 시간에 따라 왼손잡이 비율이 다르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배드민턴, 테니스, 스쿼시를 비교했을 때 왼손잡이 비율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일정 기준 이상의 평균 반응 속도를 요구하는 운동에서만 왼손잡이 비율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왼손투수의 귀환
한국 야구에서도 이런 경향성이 드러날까. 2017년에는 위에서 언급한 양현종 선수를 비롯해 두산 베어스의 장원준 선수, LG 트윈스의 차우찬 선수가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선발뿐 아니라 불펜인 함덕주 선수, 정우람 선수 역시 좋은 활약상을 보였다.

 

 

필자는 로핑 교수의 연구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한국야구위원회(KBO) 상위권 투수진에도 왼손 투수의 비율이 높은지 조사했다. 30개 구단으로 운영되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는 점을 고려해 스탯티즈(KBO 리그의 각종 야구기록에 세이버메트릭스를 전문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통계사이트)를 참고해서 상위 30명을 선정했다.

 

KBO가 처음 시작된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6년간 단 한번이라도 30위 안에 이름을 올린 투수 371명 중 왼손 투수는 102명으로 약 27%로 나타났다. 일반인의 왼손잡이 비율인 10%보다 2.7배 가량 높은 수치다.

 

 

2017년에는 특히 왼손투수가 무려 12명이나 이름을 올리며 40%를 차지했다. 최근 두산 베어스의 김재환 선수, KIA 타이거즈의 최형우 선수, NC 다이노스의 나성범 선수, 롯데 자이언츠의 손아섭 선수 등 왼손을 쓰는 강타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이런 경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야구의 이런 비대칭성은 야구를 한결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다. 앞으로는 야구를 볼 때 왼손잡이, 특히 좌완투수를 눈여겨 보는 것은 어떨까. 게다가 2018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류현진 선수가, KBO리그에서는 김광현 선수가 부상을 이겨내고 돌아온다. 좌완투수를 관찰하는 재미가 한결 풍성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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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홍기훈 미국 트랙맨 베이스볼 애널리스트
  • 에디터

    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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