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날씨에 자주 발생하는 정전기는 불쾌감 뿐만 아니라 피부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정전기가 발생하는 이유와 함께 간단히 응용할 수 있는 예방책을 살펴보자.
자동차 문을 열거나 옷을 벗으려할 때 '빠지직' 소리를 내며 몸에 전달되는 불쾌감, 혹은 스타킹과 스커트가 달라붙을 때의 당황스러움. 누구나 한번씩 겪었음직한 이런 현상의 주범은 습도가 낮아지는 겨울철에 특히 자주 발생하는 정전기다.
정전기(靜電氣)는 말 그대로 '시간적 변화가 없는 전하에 따른, 정지된 상태의 전기'를 말한다. 책받침을 옷에 문지르고 머리카락이나 종이에 대면 잘 달라붙는 현상에서도 알 수 있듯 체적에 비해 표면적이 큰 물체가 띠는 일종의 마찰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의 전기 현상은 자극에 의한 자기현상과 비슷해서 어떤 물체에 무엇을 문지르냐에 따라 다른 극성이 나타난다.
모피-유리-운모-비단-면-목재-플라스틱-금속-황-에보나이트의 대전배열(帶電配列)에서 열의 앞에 있는 물질과 뒤에 있는 물질을 마찰시키면 앞의 것은 플러스, 뒤의 것은 마이너스의 대전을 보인다. 물건이 접촉하면 전하가 이동해 전기를 띠는데, 이 전기가 흘러서 소멸되지 않으면 정전기가 축적된다. 번개와 천둥도 구름속에 축적된 정전기가 순간적으로 흐를 때 생기는 섬광과 소리로 설명할 수 있다.
정전기의 발생은 습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사람이 카펫 위를 걸을 때 실내 습도가 10-20%일 경우 발생하는 정전기는 3만5천V, 65-90%일 경우 1천5백V의 정전기가 발생한다. 평균 습도가 45% 이하로 낮아지면 인체나 물체에 생긴 정전기가 자연스럽게 방출되지 못하고 머물다 일시에 방전되는 것이다. 정전기로 발생되는 전기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보통 1백10이나 2백20임을 생각하면 가히 '벼락'이라 부를 만 하다. 하지만 1백10V 전구를 갈아 끼다가 감전사 당하는 일은 있어도 정전기에 감전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왜냐하면 정전기는 전압(V)만 있고 전류(A)가 흐르지 않아 일반적으로 말하는 전기(W)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정전기 쇼크를 느끼는 감도에는 개인차와 함께 남녀차가 있다. 남자는 약 4천V 이상이 돼야 느낄수 있지만 여자는 약 2천5백V만 돼도 정전기 방전을 느낄수 있어 여자가 더 민감하다. 이 차이는 단지 정전기에 한정된 것이 아닌, 모든 전기 현상에 해당한다.
정전기는 단순히 불쾌감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질병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전기와 피부조직의 관계를 연구한 명기범 교수(이화여대 피부과)는 한꺼번에 1만V 용량의 정전기를 토끼 피부에 접촉시켰을 때 염증이 발생함을 발견했다고 밝히고 "아직 정확한 연구가 진행된 바는 없지만 정전기 스파크가 아토피성피부염 환자들의 가려움증을 악화시킬 수 있는 개연성은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정전기는 일상생활에서는 불쾌감을 줄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산업에서는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복잡한 면이나 넓은 면적에 고루 도료를 칠하는 정전도장(塗裝)이 바로 그것. 전기나 가스기구, 기계부품 완구 등을 도장하기 위해서 담장 모양의 격자 내에 10만V 정도의 마이너스 직류전압을 걸고 대지와 같은 전위로 피도장품을 매달아 이것에 도료를 내뿜으면 분무된 도료가 정전기적으로 흡착되도록 한다.
그러나 반도체가 들어간 기계를 가동하는 공장에서 정전기는 역시 '애물단지'일 뿐이다.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공장의 오작동(誤作動)이나 자기기억장치의 데이터 소실 등은 상당부분 정전기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들 공장에서 입는 방진복(防塵服)은 먼지와 함께 정전기 방지처리가 돼 있기 마련이다.
비단 산업체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정전기를 막기 위한 방법도 적지 않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품목은 이른바 '섬유린스'류. 요즘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대개 화학섬유로 만든 것이어서 마찰에 의한 정전기 발생이 심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세탁물을 섬유린스로 헹구거나 스프레이 형태의 것을 뿌려주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섬유린스의 작용은 음이온을 띠고 있는 섬유에 섬유유연제의 주원료인 양이온 계면활성제를 흡착시켜 전기적으로 중화시키는 원리다.
구두에 정전기 방지장치를 단 것도 있다. 구두 중창에 부직포와 전도성 스펀지, 전동성 우레탄고무 등이 혼합된 선더롱(thunderon)이란 신소재를 대고 전도성 실로 꿰맨 이 정전기 방지 구두는 3천-1만V 가량의 정전기를 신발을 통해 내보낸다. 선더롱의 역할은 코로나방전(기체 속에서의 방전형태중 하나. 2개의 전극 사이에 높은 전압을 가하면 전기장의 강한 부분만이 전도성을 갖는 현상)을 유도해 체내정전기를 중화, 제거하는 것. 전기 저항을 105-108Ω으로 규정해 강전이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것을 방지했다.
자동차에 쓰이는 전기는 차체를 통해 방전되지만 연결부위에 사용된 플라스틱 등에 의해 접지능력이 약해져 인체와 닿을 때 정전기 발생이 잦다. 이 현상을 줄이기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배기통에 금속줄을 달아 땅으로 내려뜨려 미리 방전시키는 것. 최근에는 기계적으로 방전시키는 자동차 정전기 방지기들이 나와 있으나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장치들 외에도 실내 습도가 낮아지지 않도록 조절하고 손과 스타킹에 로션을 바르거나 차문을 열 때 열쇠 끝으로 차체를 살살 두드려주는 등의 간단한 방법들도 정전기 방지에 효과적이다. 또 옷을 입을 때 화섬을 겹쳐 입지 말고 면과 같은 자연섬유와 혼합해 입는 것도 좋은 예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