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카리브해에서 발생한 초강력 허리케인 ‘어마(Irma)’는 최대풍속 시속 185마일(시속 297km)을 기록하며 최소 61명의 사망자와 550억 달러(약 62조2545억 원)의 피해를 낳았다.
올해 우리나라는 태풍이 잠잠해 아직까지는 한시름 놓고 있다. 평소보다 빨리 북쪽에서 내려온 찬공기가 태풍의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9월 9일 괌 북서쪽에서 발생한 18호 태풍 ‘탈림(Talim)’도 일본으로 방향을 틀면서 제주도와 남해안에만 간접 영향을 미쳤다.
적도에서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우리나라(서울 기준 위도 37도)는 지금까지 비교적 태풍을 잘 피해왔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태풍의 규모가 커지고 발생 빈도도 증가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슈퍼 태풍’이 한반도를 덮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허리케인
열대성저기압은 발생하는 장소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부른다.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하면 ‘태풍(Typhoon)’, 카리브해, 북대서양, 북태평양 동부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 인도양, 아라비아해에서 발생하면 ‘사이클론’이라고 부른다.
태풍의 힘 좌우하는 해수 온도
태풍은 적도 근처의 열대 해상에서 생기는 소용돌이 바람으로, 열대성저기압에 의해 발생한다. 지구 곳곳에서 연간 80개 정도가 만들어진다.
태풍의 발생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해수 온도다.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면 근처의 덥고 습한 공기가 위로 상승하고, 단열팽창으로 온도가 낮아지면 수증기가 응결 하면서 열을 방출한다.
방출된 열은 다시 주변 공기를 가열해 더운 공기는 점점 더 위로 올라가고, 결국 덥고 습한 공기 기둥이 만들어진다. 기둥이 만들어지는 아래쪽, 즉 수면 근처는 기압이 낮아지고 지구의 자전에 의해 회전하면서 열대성저기압으로 발전한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해수 온도가 점차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올해 8월 발표한 ‘전세계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8월 전세계 해양의 평균 온도는 섭씨 16.81도로, 20세기 평균 온도(섭씨 16.1도)보다 0.71도 증가했다.
유엔(UN·국제연합) 산하의 정부간 협의체인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2007년 4차보고서를 통해 “2100년까지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 평균기온이 최대 섭씨 4도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열대성저기압의 강도와 지속기간은 해수면 온도 상승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태풍의 힘은 더 세진다. 케리 이 매뉴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상학과 교수는 태풍의 힘을 나타내는 ‘태풍잠재위험지수(PDI)’와 해수면 온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매우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혔다(doi:10.1038/nature03906).
한반도 해역 온도 43년간 1.29도 상승
한반도 주변 해수 온도도 심상치 않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43년간(1968~2010년) 섭씨 1.29도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세계 표층수온이 섭씨 0.4도 상승한 것에 비하면 3배가 넘는 수치다.
반기성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은 “태풍이 우리나라에 가까워질 때쯤에는 수온이 낮은 바다를 지나면서 대부분 세력이 약해져 피해가 크지 않았다”며 “최근에는 한반도 해역의 수온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어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팀과 부산대, 한국해양대, 극지연구소,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홍콩시립대 공동연구팀은 “2100년경에는 한 해에 한반도와 일본을 향하는 열대성저기압, 즉 태풍의 숫자가 지금보다 4개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고 2016년 한국기상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밝혔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대부분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다. 연구팀은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태풍이 늘고 한반도를 향할 가능성이 높아, 해수 온도의 상승 속도가 지금과 같이 유지된다면 한반도를 강타하는 태풍의 수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태풍의 최초 발생 지역도 적도에서 점점 더 북상하고 있다. 제임스 코신 NOAA 기후데이터센터 연구원은 30년간(1982~2012년) 열대성저기압이 가장 큰 에너지를 갖는 위도를 분석한 결과 점점 북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01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doi:10.1038/nature13278)
이 논문에 따르면 10년간 적도에서 북반구 쪽으로는 평균 53km, 남반구 쪽으로는 평균 62km 이동했다. 즉, 30년간 적도로부터 약 160km 북상한 셈이다. 코신 연구원은 “일본과 한국이 태풍의 위험지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수 등 2차 피해 대비 해야”
우리나라에 ‘슈퍼 태풍’이 닥치면 어떤 조치부터 취해야 할까. 반 소장은 “상황을 신속하게 알려주는 예보 시스템을 구축해 인명 피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2차 피해인 홍수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00mm다. 그런데 이중 70~80% 가량이 태풍의 집중 영향기간에 내린다. 그만큼 태풍으로 인한 홍수 피해가 빈번하다는 의미다.
더구나 국내 해안 지역의 방파제 및 연안 시설물 등 안전 시설은 홍수 피해에 취약하다. 세계개발센터(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환경과에너지팀은 2009년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 84개국의 해안 지역이 해일에 얼마나 취약한지 조사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해안 중 61%가 해일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쿠웨이트에 이어 2위였다.
반 소장은 “2002년 태풍 ‘루사’가 발생했을 당시 태풍으로 인한 피해뿐만 아니라 홍수로 인한 2차 피해도 컸다”며 “슈퍼 태풍에 대한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2차 피해에 대한 대비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