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늘로 알려진 탄소 나노튜브. 몸통은 원기둥 형태이고 양 끝이 둥그스름한데, 1개의 탄소원자가 3개의 다른 탄소원자와 연속적으로 결합해 겉의 무늬가 마치 벌집처럼 보인다. 가운데 비어있는 구멍의 지름은 1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정도에 불과하다. 평평한 종이 위에 벌집 무늬를 그린 후 종이를 둥글게 말면 나노튜브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탄소 나노튜브는 크기가 극히 작아서 흥미를 끌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노튜브 한개가 반도체의 성질을 가진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만일 나노튜브들을 연결해 적절 한 회로를 구성할 수 있다면 현재의 반도체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반도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나노미터 정도 크기의 기억소자나 회로를 만든다면 현재 최첨단의 집적회로에 비해 1만배 정도의 작은 규모 안에 동일한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또 탄소 나노튜브는 속이 비어 있어서 가벼울뿐더러 탄소원자 사이의 결합력이 실리콘에 비해 강하다.
'탄소 나노튜브 회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나노튜브를 어떻게 연결하느냐, 즉 나노튜브들 사이에 전기를 어떻게 통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나노튜브의 둥근 끝끼리 연결시킬 전도체를 찾는다면 원하는 회로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바로 KAIST 화학과의 무기화학실험실을 이끌고 있는 박준택 교수가 몰두하고 있는 분야다.
박교수의 실험 재료는 나노튜브 대신 이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풀러렌 분자(${C}_{60}$)다. 1985년 세 명의 과학자가 풀러렌을 처음 발견한 이후 1996년 이들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겨준 물질이다. 풀러렌은 축구공을 1억분의 1 정도로 축소시킨 모양을 가진다.
나노튜브의 둥근 끝부분은 풀러렌을 절반으로 나누었을 때의 형태와 비슷하다. 물리적·화학적 성질도 유사하다. 따라서 풀러렌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나노튜브의 끝부분끼리 연결하는 전도체를 찾는데 큰 도움을 준다. 풀러렌 분자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1g에 5만원) 용매에 잘 녹기 때문에 실험재료로는 적격이다.
최근 박교수 연구팀은 풀러렌 분자 하나에 카르보닐기(C = O)가 달린 금속뭉치를 결합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금속뭉치와 탄소 원자 사이에서 전자가 이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만일 이 금속뭉치에 또다른 풀러렌 분자를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나노튜브 간의 연결 역시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사실 풀러렌 분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이유는 여기에 알칼리 금속을 적절히 결합시키면 초전도체가 된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초전도체를 실현하는 일에도 응용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지금까지 금속 원자 1개를 풀러렌 분자와 결합시키는데 성공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박교수팀이 개발한 것은 금속 원자 3개가 각각 풀러렌 분자의 탄소 원자 2개와 연결된 화합물이었다. 단단하게 결합된 탓에 화학반응을 일으켜도 좀처럼 깨지지 않는 안정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박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조만간 국제적인 화학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박교수는 앞으로 나노튜브가 실용화되는 기간을 10년으로 전망했다. 그때쯤이면 현재 사용하는 전자제품의 크기는 얼마나 줄어들까다. 반도체칩의 크기는 1만배 정도 줄어들지만, 케이스를 비롯한 기타 부속품의 크기가 작아지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박교수는 "3분의 1 정도로 작아지지 않을까요…"라며 조심스럽게 미래를 예측한다.
현재 실험실에는 박사과정 6명, 석사과정 6명, 그리고 박사후 과정 1명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풀러렌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반도체 기판을 덮는 고효율의 박막을 제조하는 한편, 화학반응을 보다 효과적으로 촉진시키는 새로운 촉매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21세기 새로운 과학기술의 혁신을 주도할 '꿈의 신소재'를 개발하는데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