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
열손가락, 개성 넘치는 이유?
컴퓨터 자판을 칠 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을 보면 문득 신기해집니다. 어쩜 다섯 손가락 모두 길이도 다르고 두께도 다르고 위치도 다를까요? 똑같은 손가락 세포를 검지부터 약지까지 개성 있게 바꾸는 발달 인자는 무엇일까요?
배아 세포가 특정한 기능과 모양을 가진 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기작이 관여합니다. 한 예로 세포의 분화 방향이 주변 세포에 의해 결정되는 유도기작이 있죠(2017년 8월호 ‘세포, 친구따라 강남 간다?’ 참조). 그런데 유도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형태형성물질’입니다. 이 하나의 인자가 세포 여러 개의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형태형성물질은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배아의 특정 위치에서만 나옵니다. 두 번째는 분출된 이후에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널리 퍼집니다. 영화가 끝난 직후 상영관에서 관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겠네요. 마지막 특징은 형태형성물질이 농도에 따라 세포에 서로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위 그래프 참고).
형태형성물질이 손가락 결정
형태형성물질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구조가 손가락입니다. 수정된 후 약 한 달 정도 지난 배아의 몸통을 보면 팔과 다리가 생길 부분에 뭉뚝하게 ‘팔다리 싹(limb buds)’이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팔다리 싹의 가장 아랫부분, 즉 훗날 새끼손가락이 나올 부분에서 형태형성물질 중 하나인 ‘Shh(Sonic hedgehog)’ 단백질이 분출됩니다.
결과적으로 팔다리 싹 아래쪽에 있는 세포일수록 높은 농도의 Shh에 노출되고, 위쪽에 있는 세포들은 점점 낮은 농도의 Shh를 받게 됩니다. 이런 차이로 새끼손가락, 약지, 중지, 검지가 각각 다르게 만들어집니다. 흥미롭게도 Shh는 엄지 형성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팔다리 싹의 위쪽에 Shh를 투여하면 손의 모양이 어떻게 바뀔까요? 닭의 배아를 이용해 실험한 사례가 있습니다. 닭 날개는 순차적으로 3개의 손가락 뼈가 있는 구조입니다. 존 손더 미국 마케트대 생명과학과 연구원팀은 닭의 배아에서 Shh를 만들어내는 세포를 떼어 내 이것을 다른 배아의 팔다리 싹 위쪽 부분에 이식했습니다.
이렇게 태 어난 병 아리의 날 개 뼈는 독 특했습니다. 팔다리 싹의 아랫 부분과 윗부분이 모두 고농도의 Shh에 노출되다보니 2,3,4번째 손가락이 양쪽으로 발달한 겁니다(doi:10.1136/jmg.2008.057646, 위 그림).
이번 연구는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Shh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손가락이 6개 이상 생기는 다지증이 나타나거든요. 지금 당장 손바닥을 펴 손가락을 한번 바라보세요.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룬 각각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질문
배아세포의 능력에도 등급이 있다?
배아세포는 서로 다른 종류의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발달 잠재력(developmental potential)’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정란과 피부세포의 발달 잠재력은 하늘과 땅 차이죠. 이런 잠재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등급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발달 잠재력이 가장 높은 등급은 전능성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 수정란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텐데요. 발달에 꼭 필요하지만 태아 밖에 있는 조직, 예를 들어 태아와 모체를 이어주는 태반과 양수가 들어갈 양막 등도 역시 수정란이 만듭니다. 이렇게 태아의 조직뿐만 아니라 태아 밖의 조직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발달 잠재력을 전능성이라고 합니다. 수정란을 비롯해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통해 만들어 내는 2세포기, 4세포기, 8세포기 배아세포들이 전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전능성보다는 등급이 한 단계 아래이지만 여전히 높은 등급의 발달 잠재력을 만능성 또는 전분화성이라고 부릅니다. 만능성(전분화성)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몸의 모든 세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입니다. 8세포기를 지나 전능성을 잃은 배아세포는 태반을 만들 세포들과 태아를 만들 세포들로 나뉘게 되는데요. 후자의 세포들이 만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포들을 배아에서 꺼내 실험실에서 배양한 것이 배아줄기세포입니다.
배아의 분화 실력 ‘절대평가’
그렇다면 배아줄기세포의 만능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하나하나 분화시켜 보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 몸에 있는 세포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 방법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찾은 방법 중 하나가 4배체 보완실험입니다(아래 그림).
원리는 이렇습니다. 2세포기인 어린 배아에 전기충격을 가하면 두 세포가 합쳐져 유전물질이 정상 세포의 2배인 하나의 세포가 됩니다. 융합된 세포는 분열을 이어가는데요. 이것이 태아 밖의 조직으로는 발달할 수 있지만, 정작 태아로는 발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배아줄기세포의 만능성을 시험해보려면 이 융합된 배아 안에 넣어보면 됩니다. 만능성이 있다면 배아줄기세포가 태아를 정상적으로 만들어 낼 테니까요!
배아줄기세포의 만능성 확인 실험
유전물질이 정상 세포(2N)보다 두 배인 세포(4N)는
정상적인 배아 발달을 할 수 없다. 여기에 배아줄기세포를
넣었을 때 태아가 만들어지면 만능성을 입증할 수 있다.
끝으로 배아 발달을 끝낸 성체세포도 극히 일부는 여전히 발달 잠재력이 있습니다. 몸의 모든 세포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같은 계통에 있는 세포들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즉 다능성입니다.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가 대표적인데요. 근육세포나 신경세포는 만들지 못하지만 적혈구, 백혈구 등 다양한 혈액세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발달 잠재력은 발생학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배아세포가 어떻게 특정 세포로 분화하는가’라는 발생학의 큰 질문이, 다르게 말하면 ‘어떻게 점점 발달 잠재력을 잃는가’라는 얘기와 같기때문입니다. 발생학자들은 세포의 다양한 분화 과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