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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에 바이러스를 기억시켜라

Chapter 06. 백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는 교훈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도 통한다. 백신이 우리 몸을 감염병으로부터 지키는 원리가 바로 그러하다. 백신에 의해 미리 알게 된 바이러스의 정보로, 우리 몸은 감염병과 싸울 면역력을 얻는다. 


백신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체 면역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인체의 면역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질병의 종류와 관계없이 어떤 질병에든 반응하는 선천(innate) 면역반응과, 한 번 노출된 질병을 기억해 해당 질병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후천(adaptive) 면역반응이 있다. 백신은 그 중 후천 면역을 이용한다.


후천 면역반응은 외부에서 들어온 항원에 의해 활성화된다. 병원체가 인체에 침입하면 면역세포 중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항원 제시 세포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등은 이를 소화하거나 쪼개 병원체가 가진 항원의 일부를 세포 표면에 위치시킨다. 림프구인 T세포는 세포 표면에서 항원을 인식한 뒤 스스로 바이러스를 공격할 수 있도록 분화하고, B세포는 바이러스를 중화할 수 있는 항체를 생성한다. 


그중 일부는 기억세포로 분화하며 추후 동일한 항원에 대해 면역반응을 빠르고 강력하게 일으킬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항원에 처음 노출됐을 때 일어나는 반응을 1차 면역반응, 동일한 항원에 다시 노출됐을 때 일어나는 반응을 2차 면역반응이라고 부른다. 


백신은 우리 몸이 후천 면역반응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항원을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약품이다. 백신에는 항원을 비롯해 안정화제, 항생제 등 많은 물질이 포함돼 있는데, 그중 핵심 성분은 항원이다. 
항원의 상태에 따라 백신의 효능과 부작용 등 성격은 크게 달라진다. 백신 개발자들은 항원을 가진 바이러스 자체를 접종하는 백신을 만들기도 하고, 항원 부위만 분리하거나 독성이 약해지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바이러스로 백신을 만들기도 한다. 


이중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식은 바이러스 자체를 접종하는 백신이다. 최초의 현대적인 백신인 우두법도 이 원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결과였다.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1798년 증상이 천연두에 비해 비교적 약한 우두에 한 번이라도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점을 이용해 우두바이러스를 직접 접종하는 우두법을 개발했다. 우두바이러스에 노출된 인체가 후천 면역을 획득하게 한 것이다.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두법은 인체의 면역체계를 교묘하게 속인 결과였다. 이후 연구된 내용에 따르면 우두를 일으키는 우두바이러스는 천연두바이러스와 전혀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두 종은 교차 면역성을 가지고 있어 우두바이러스를 접종하더라도 천연두바이러스에 대한 후천 면역이 생성될 수 있었다. 교차 면역성은 서로 다른 항원을 인체가 동일한 종류로 인식해 면역을 획득하는 성질을 말한다.


일부 백신으로 얻는 후천 면역은 평생 유지된다. 어렸을 때 한 차례 접종한 백신이 평생토록 예방 효과를 내는 셈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 백신 등은 매년 새로운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매우 활발하게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항원 부위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매년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그나마 항원 부위의 변화가 조금씩 천천히 일어난 결과다. 이를 항원소변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는 돼지에 감염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항원대변이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능력을 얻은 경우다. 


항원대변이는 서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융합하며 새로운 항원을 갖게 된 것을 말한다. 따라서 기존에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했더라도, 항원대변이가 일어나면 여기에 맞는 새로운 백신을 다시 개발해 접종해야 후천 면역을 획득할 수 있다. 


후천 면역은 항원의 종류뿐만 아니라 접종받는 사람의 나이, 질병에 노출되는 횟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백신에 포함된 항원만으로 충분한 수준의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때, 백신의 면역반응을 높이기 위해 항원보강제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항원보강제가 포함된 백신을 접종하면 항원에 의한 면역반응뿐만 아니라 항원보강제에 의한 선천 면역반응이 추가로 생긴다. 


면역반응을 과도하게 활성화하는 것은 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열이나 구토 등 부작용을 겪는다. 


이 때문에 일부 백신은 두 차례 이상 나눠 접종해 면역반응을 높인다. 소아마비 백신, B형 간염 백신 등이 대표적이다.

202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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