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다산과학기지가 있는 니알슨 계곡 빙하.
바다와 맞닿아 있던 거대한 해안빙하들이 씨가 말랐다.
바다와 맞닿아 있던 거대한 해안빙하들이 씨가 말랐다.
섬을 뒤덮은 만년설과 피오르드에 반짝이는 빙하….
필자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노르웨이 북쪽 ‘스피츠베르겐’ 섬의 모습이다. 그러나 14년 만에 경비행기를 타고 내려 본 섬은 과거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만년설은 흔적만 남았고 빙하도 대부분 사라졌다. 희뿌연 퇴적물 입자가 흘러나오는 모습이 기후변화로 흘리는 섬의 눈물처럼 보였다.
2016년 7월, 필자는 노르웨이 트롬소대의 탐사선인 헬머 한센 호를 타고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군도의 피오르드를 탐사했다. 1993년 북극탐사에 참가한 이후 열세 번째 북극 탐사였다(그중 여섯 번은 2009년 11월 건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 호를 타고 탐사했다). 1993년 필자는 얼음 위에서 북극곰을 처음으로 마주쳤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유빙 위에서 겨우 몸을 가누고 있거나, 헤엄을 치면서 생사의 기로에 있는 모습만 보게 된다. 과거 북극탐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폭풍우도 늘었다. 2012년 8월 북극해 탐사에서 두 번이나 폭풍을 만나 고립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후 조절 ‘심장’, 북극해의 이상 징후
이런 변화는 북극해를 차갑게 지키는 해빙이 기후변화로 녹아 사라지면서부터 생겼다. 북극해는 전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심장이다. 5대양 중 가장 작고, 담긴 바닷물도 전세계 해수의 1%에 불과하지만, 이곳이 전지구적으로 연결돼 있는 해류 순환을 조절한다. 북극해가 차갑게 유지돼야만 기후를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북극에서 전 지구 평균보다 두세 배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일년생 해빙은 물론 수 년간 단단하게 다져진 다년빙도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1979년 위성 관측 결과와 비교하면 현재는 여름철 해빙 면적이 약 50% 감소했다. 2012년에는 해빙 면적이 역대 최소인 343만km2를 기록했고, 작년에도 역대 두 번째로 작은 414만km2로 감소했다. 그 어떤 기후 모델이 예측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다.
아라온 호 쪽으로 다가오는 북극곰.
얼음이 녹아버린 북극해에서 힘겹게 헤엄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특히 피오르드 지형에서 잘 나타난다. 필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작년 7월 18~23일 헬머 한센 호를 빌려 스발바르 군도의 피오르드를 탐사했다. 기후변화에 의해 조수빙하(빙하의 끝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해안빙하)가 어떻게 변하고, 이것이 피오르드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이스피오르드, 딕슨피오르드, 반미엔피오르드 그리고 호른준드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피오르드의 빙하는 빠르게 후퇴하고 있었다. 2002년 U자형 계곡을 따라 마을 입구까지 내려와 있던 거대한 빙하들은 씨가 마른 것처럼 보였다(왼쪽 사진). 2016년 해저지형탐사 결과에서도 1900~1983년 사이 호른준드의 조수빙하가 빠르게 후퇴했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1920~2013년 다산기지 주변의 중앙로벤 빙하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수십 년간 북대서양의 지류인 따뜻한 서스피츠베르겐 해류가 피오르드로 유입되는 양이 증가하면서 상류에 위치한 조수빙하까지도 빠르게 녹아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영국 스완지대 연구팀은 조수빙하가 떠 있는 표층수 아래에 수온이 따뜻한 북대서양 수괴가 조수빙하를 녹이고 후퇴시킨다는 연구결과를 2015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다산북극과학기지가 있는 니알슨의 남동쪽 콩스피오르드의 조수빙하가 부서져 나와 녹으면서 연간 350m씩 후퇴했다.
#남승일
극지연구소 극지고환경연구부 책임연구원.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해양연구소(AWI)에서 북극해 고기후·고해양 복원 연구를 하고 브레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AWI 쇄빙연구선 ‘폴라스턴’에 승선해 북극해를 탐사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13번 북극을 탐사했다. 2015년 7월부터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으로 북극 스발바르 피오르드 지형변화 연구를 이끌고 있다. sinam@kopri.re.kr
극지연구소 극지고환경연구부 책임연구원.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해양연구소(AWI)에서 북극해 고기후·고해양 복원 연구를 하고 브레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AWI 쇄빙연구선 ‘폴라스턴’에 승선해 북극해를 탐사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13번 북극을 탐사했다. 2015년 7월부터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으로 북극 스발바르 피오르드 지형변화 연구를 이끌고 있다. sinam@kopri.re.kr
2012년 9월(1) vs 2016년 8월(2)
셰텔리그피예렛 산의 모습. 산을 덮고 있던 눈이 녹으면서 토양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셰텔리그피예렛 산의 모습. 산을 덮고 있던 눈이 녹으면서 토양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북대서양 수괴●가 조수빙하를 녹이고 후퇴시킨다는 연구결과를 2015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다산북극과학기지가 있는 니알슨의 남동쪽 콩스피오르드의 조수빙하가 부서져 나와 녹으면서 연간 350m씩 후퇴했다.
●수괴: 물리, 화학적 성분이 비슷한 해수의 모임
북극해나 주변 피오르드의 해빙이 빠르게 감소하는 것은 2차 피해를 낳는다. 파도와 파랑, 조석의 힘을 상쇄시키던 얼음이 사라지면서 해안선 침식이 빠르게 일어난다. 연안 침식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이슈다. 파도와 파랑의 에너지가 전반적으로 강해지면서 극지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온대지역도 연안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이는 갯벌의 지형과 생태계 시스템이 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
빙하의 흔적에서 기후변화 역사 읽다
필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번 조사에서 해저 지형과 지층을 탐사하면서 빙하가 후퇴하면서 남긴 흔적을 추적했다. 약 2만1000년 전 마지막 최대 빙하기 이후 스발바르 피오르드에서 1000m 이상 두껍게 덮여 있던 빙하가 어떻게 소멸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다. 또 홀로세(약 1만1500년 전 이후) 동안 빙하가 후퇴하면서 피오르드 기후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정밀하게 복원하기 위해 피오르드 해저에서 퇴적물을 시추했다.
해저 퇴적물에는 과거 빙하의 역사와, 당시 일어났던 기후 환경 변화가 잘 기록돼 있다. 2015년 아라온 호를 타고 북극해에서 시추한 코어에서는 빙하기였던 약 5만~7만 년 전 동시베리아 대륙붕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진 거대빙하가 녹으면서 2~3m 정도로 두껍게 쌓인 퇴적물들의 흔적이 드러났다. 2012년에는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해양연구소(AWI) 연구팀과 함께 아라온 호를 타고 동시베리아 대륙붕 해역에서 후기 제4기 빙하기 때 존재한 거대한 빙하의 흔적을 최초로 발견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동시베리아 대륙붕에는 빙하기 때 빙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정설처럼 믿어왔다. 그런데 해저 퇴적물을 통해서 통념을 뒤집은 것이다. 동시베리아 대륙붕에서 거대한 빙하가 어떻게 생성됐으며 북극해와 북극권 주변의 기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현재 AWI와 미국 오하이오대 버드극지·기후연구센터와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퇴적물에서 분석한 과거의 기록들은 현재 진행 중이고 앞으로 진행될 기후변화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지구의 온도가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 높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퇴적물을 통해, 현재보다 더 따뜻해질 미래의 바다나 육지에서의 기후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오르드 탐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진행된다.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헬머 한센 호를 타고 북극다산과학기지가 있는 스발바르 군도의 북부 피오르드를 정밀하게 탐사할 계획이다.
2014년 여름, 필자는 동료와 함께 북극 다산과학기지 북서쪽 셰텔리그피예렛 산을 탐사하기 위해 빙하를 거슬러 올라가던 중 큰 돌덩어리를 발견했다. 암석을 자세히 보니 무려 3억 년 전 만들어진 석회암이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다산기지 주변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완족동물 화석이 포함돼 있었다. 이 화석은 3억 년 전 온난했던 스발바르 군도가 갑자기 한랭한 기후로 바뀌는 시점을 알려주는 화석이었다. 필자는 여기서 주먹만 한 시료를 채취했다.
석회암은 스발바르 군도의 환경이 변화한 시점에 대한 힌트를 담고 있었다. 이 지역의 석회암은 주로 모래알만 한 입자로 만들어져 있는데, 사실은 소라, 조개 같은 생물의 작은 석회질 골격 조각이 오랜 지질시대를 거쳐 단단하게 고화된 것이다. 이런 관찰을 통해 당시 살던 생태계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암석의 화학 성분이나 동위원소 비를 종합하면 과거 환경을 재구성할 수 있다. 암석에는 해수의 온도, 염도, 산소 농도, 육상으로부터 유입되는 물질의 양, 유기물의 매몰 정도 등 여러 가지 환경요소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북극 다산기지 주변 석회암을 이루고 있는 생물군집은 따뜻한 환경을 지시하는 녹조류, 산호 등에서 점차 태형동물, 해면동물 쪽으로 변화했다. 이것은 약 3억 년 전, 스발바르 군도에 따뜻한 적도지방 바닷물을 공급해주던 해협이 닫히면서 한랭한 기후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다산기지 주변 지질시대를 정확하게 정립할 수 있는 층서 논문을 해외 저널에 투고할 예정이다.
극지의 기후, 환경을 연구하는 것은 지구 전체의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북극 빙하의 변화가 해수면 변동을 일으켜 결국 중위도 지역의 인류와 생태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의해 스발바르를 수십만 년 동안 덮고 있던 빙하가 녹으면서, 조사할 수 있는 노출된 땅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앞서 완족동물 화석이 발견된 석회암도 1980년대에는 빙하와 눈에 덮여 조사할 수 없던 곳이다. 우리와 같은 지질학자에게는 잘 된 일이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쩌저적’ ‘쩌저적’ 빙벽에서 얼음이 갈라지며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2016년 7월 찾아간 스발바르 군도의 콩스피오르드의 안쪽은 빙벽이 녹아서 떨어져 나온 유빙들로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어쩌면 십 수 년 뒤에는 저 빙벽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필자는 이곳에서 기후변화에 의한 미생물 생태 환경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0년부터 총 다섯 차례 아라온 호에 승선해 북극해 현장에서 시료를 확보하고 분석했다.
극지의 기후변화는 미생물의 생태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필자는 미생물의 생태를 연구하면 반대로 과거의 기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의 기후 조건에서 북극해 해빙이 녹을 때 미생물의 생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표층해수와 심해수 사이의 수괴 변화에 따라 미생물 군집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대륙붕에서 심해저로 이어지는 표층퇴적물이 이동하는 현상이 미생물 생태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연구 중이다.
미생물을 이용해 고기후를 복원한다는 개념은 과학자들에게도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법들이 기존의 미해결 난제들을 해결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에 모험심을 갖고 도전하고 있다. 그 동안 북극해를 연구하면서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은 추위와 거친 파도가 아니라, 가보지 않아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가장 큰 보람 역시 직접 현장에 가서 보았기에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북극 스피츠베르겐 섬 니알슨에 있는 북극다산과학기지로부터 1시간 거리에 있는 중앙로벤 빙하는 1920년 이후 매년 12m씩 꾸준히 후퇴하고 있다. 빙하로 덮여있는 토양은 대부분 생물학적 활동이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아주 미미하다. 그러나 빙하가 녹으며 새롭게 드러나는 토양은 주변에서 이입되는 모든 생물들이 새롭게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필자는 이런 빙하 후퇴지역에서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빙하가 후퇴한 지역은 빙하가 녹아 사라진 지 아주 오래된 지역부터 가장 최근에 노출된 토양이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시간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를 연구하기에 아주 적합한 조건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이곳의 식생과 토양의 유기물 발달, 그에 따른 미생물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현장 조사는 아주 정직하게 이뤄진다. 측정 장비를 짊어 메고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걸어 다니며 20~30kg 되는 토양을 채집한다. 가끔 개천이 나오면 0°C의 얼음장 같은 물을 맨발로 건넌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 가져온 토양이 건조된 무게로 1t에 육박한다. 이것으로 여러 가지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뤄진 연구를 종합하면, 빙하 후퇴지역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에 따라 생태계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오래된 토양에서 식물이 더 다양하게 분포하고, 토양이 더 발달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기후, 생물, 지형 등 다양한 환경 인자가 관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토양이 발달한 지역이라도, 빙하나 눈이 녹은 물이 한 번이라도 씻어 내려가면 유기물 함량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천이 초기와 유사하게 양이 매우 적었다. 또 빙하가 후퇴한 지역은 식물 분포가 높은 곳에 토양 표층의 유기물 함량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유기물을 공급하는 주된 원천이 식물이 생장하면서 내보내는 삼출물, 낙엽 등이라는 뜻이다.
빙하나 눈이 녹은 물은 토양과 함께 흐르면서 피오르드 퇴적층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가 심할수록 더 많은 토양이 침식돼 피오르드로 운반된다. 실제로 다산기지 주변 개천에는 붉은 빛을 띠는 흙탕물이 피오르드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런 흙탕물은 표층에 유입되는 빛을 차단하고, 영양염 공급에 변화를 주면서 피오르드의 생물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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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떠내려가는 회의론 기후변화는 왜 사실인가
Part 1.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회의론 8
Part 2. 강화된 온실효과가 기후변화의 주범
Part 3, 기후변화 최대 피해지, 북극 스발바르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