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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은둔의 물리학자가 발견한 비밀 입자, 마요라나 페르미온


1938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한 행사에서 자신의 제자인 에토레 마요라나를 이렇게 평했다. “과학자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이류, 삼류 과학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지만 높은 수준에 도달하진 못하죠. 일류 과학자들은 중요한 발견을 해내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일류 과학자라도 갈릴레이나 뉴턴 같은 ‘천재’들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에토레 마요라나는 그런 천재 중의 한 명입니다.” 페르미의 말은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행사가 있기 얼마 전 마요라나가 행방불명 됐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자와 함께 사라진 소극적인 천재
1906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난 마요라나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지만, 대학에서는 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물리학자 에밀리오 세그레(195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권유로 1928년 물리학으로 전향했다.

정식으로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논문을 내기 시작한 마요라나는 4년째 되는 해(1932년)에는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졸리오퀴리의 실험 결과를 해석해 제임스 채드윅보다 먼저 중성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페르미가 그 아이디어를 논문으로 출판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기록에 따르면, 마요라나는 지나칠 정도로 겸손하고 기회를 잡는 데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문제를 풀고도 거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길 원하지 않았고, 페르미의 권유로 논문을 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물리학도라면 누구나 선망할,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는 페르미의 강권에 못이겨 마지못해 독일로 떠났다. 그마저도 병이 나서 1년 만에 돌아왔다.

독일행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심각한 위염과 신경쇠약을 안고 돌아온 그는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하고 두문불출했다. 장장 4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그는 1937년 이탈리아 나폴리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학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제안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물론 페르미가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했을 논문이다. 스승인 페르미가 마치 대학원생처럼 마요라나의 아이디어로 직접 논문을 쓴 뒤 자신과 마요라나의 이름을 저자로 써 넣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1938년 3월 25일, 팔레르모에서 나폴리로 향하는 배편을 탄 그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자취를 감춘 날 나폴리물리연구소 소장인 안토니오 카렐리에게 보낸 편지가 그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친애하는 카렐리 씨께. 저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떤 이기심도 없는 결정입니다만, 제 결정이 당신과 학생들에게 실망을 안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당신께 용서를 구합니다. 특별히 지난몇 달 동안 당신이 제게 보여준 진실한 우정과 깊은 이해, 신뢰를 저버린 것에 대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연구소에서 제가 배웠던 모든 분들께 저를 기억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적어도 오늘 밤 11시까지는, 가능하다면 그후로도 여러분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할 겁니다. 에토레 마요라나로부터.”


80년째 탐색 중인 마요라나의 유산
페르미는 아내에게 “마요라나 같은 천재가 사라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요라나를 찾기 위해 독재자 무솔리니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행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물리학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그의 유산인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힉스 보존도 48년 만에 발견됐지만, 마요라나 페르미온은 80년째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상황이다.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아직까지 많은 물리학자들이 마요라나가 던져 준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물질을 구성하고 힘을 전달하는 입자를 페르미온과 보존 두 가지로 구분한다. 페르미온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로 쿼크와 렙톤으로 나뉘며, 보존은 중력과 전자기력, 핵력 등의 힘을 작용하게 해주는 입자로, 광자와 W, Z, 글루온, 힉스 등이다.

마요라나는 디랙 방정식을 연구하다가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제안했다. 디랙 방정식은 물리학자 폴 디랙이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1928년에 만든 방정식으로, 쉽게 말하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정식이다. 양자역학의 핵심인 슈뢰딩거 방정식은 원자 내에 속박된, 상대적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전자들의 운동을 설명할 뿐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자유로운 전자들은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디랙 방정식은 전자와 모든 성질이 같으면서 전기적인 부호만 반대인 양전자의 존재를 예측해 입자와 반입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슈뢰딩거 방정식이 전자의 운동과 스핀을 서로 무관하게 기술한 데 반해 디랙은 상대론에 의해 운동 방향과 스핀을 서로 관련지어 설명했다. 스핀이 움직이는 방향의 성분과 반대 방향의 성분으로 나눈 함수, 즉 ‘스피너(spinor)’로 전자의 파동함수를 표시하고 이 두 성분이 전자의 질량에 의해 섞여 있음을 ‘디랙 행렬’로 나타냈다. 특히 그 당시 질량이 없다고 여겼던 중성미자의 경우 이 두 성분이 서로 분리된다. 마요라나는 이 방정식의 근본적인 의미를 연구하던 중, 디랙 행렬과 스피너가 모두 실수인 표현을 찾아냈다. 그리고 페르미에게 그 표현의 의미를 ‘입자와 반입자가 동일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입자이면서 동시에 반입자인 페르미온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요라나 페르미온이다.


마요라나 페르미온은 중성미자일까
마요라나는 자신이 제안한 페르미온이 전혀 새로운 입자가 아니라, 볼프강 파울리가 1931년에 예측한 중성미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중성미자는 17가지 기본입자 중의 하나로, 페르미온이면서 전기적으로는 중성이다. 전기적인 성격이 없어 입자와 반입자가 같다는 성질을 만족할 수 있고, 당시에는 질량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마요라나 입자와 일치한다. 하지만 1956년 중성미자가 발견된 뒤, 후속 연구 결과 중성미자도 작지만 질량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201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이다).

그렇다고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페르미온일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수봉 교수는 “질량이 있어도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일 수 있다”며 “표준모형으로는 중성미자의 질량을 설명할 수 없지만 마요라나 입자라면 ‘시소 메커니즘’을 도입해 중성미자의 질량이 매우 작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소 메커니즘은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페르미온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특정한 과정을 거쳐서 무거운 중성미자와 가벼운 중성미자가 짝을 이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모든 기본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으로는 중성미자가 왜 그토록 작은 질량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성미자가 시소 메커니즘을 거쳐 질량을 얻는 것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해결된다. 김 교수는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판단하기에는 아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새로운 실험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마요라나가 남긴 숙제를 풀기 위해 최근 학자들은 ‘중성미자가 나오지 않는 이중베타붕괴’ 현상을 찾고 있다. 베타붕괴는 방사성원소의 원자핵 속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하면서 전자와 반중성미자를 방출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베타붕괴가 동시에 두 번 일어나면 두개의 반중성미자가 방출된다.

만약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페르미온이라면, 입자와 반입자가 같기 때문에 두 개의 반중성미자는 서로 만나 소멸하게 되고, 베타붕괴는 일어났지만 그 결과로 나와야 할 반중성미자는 관측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팀이 중성미자가 없는 이중베타붕괴를 찾고자 했지만 모두 관측하지 못했다. 앞으로 더 큰 규모로 탐색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인공’ 마요라나 페르미온 만든다
입자물리학자들이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찾는 방법을 요약하면, 입자가 나타날 조건을 만들어 놓고 나오는 순간 보이는 흔적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힉스나 쿼크 등 우주의 힘과 물질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기본입자는 이런 방식으로 발견했다.

반면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인공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학자들도 있다. 고체와 액정, 반도체 내부의 전자와 정공 등 응집된 물질에서 일어나는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응집물질물리학자들이다. 이들은 전자를 이용해서 마요라나 페르미온이 가져야 하는 성질을 만족하는 새로운 입자를 찾고 있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에 따르면, 응집물질물리학자들은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만들 방법으로 초전도체에 주목한다. 초전도체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을 이용하면 전자를 이용해서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초전도체에서는 전자 두 개가 짝을 이루면서 ‘쿠퍼쌍’이라는 상태를 만드는데, 전자는 원래 페르미온이지만 쿠퍼쌍을 이루면 보존의 특성을 띤다. 즉, 페르미온 입자가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더이상 따르지 않는다. 페르미온은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따라 다른 입자가 차지한 에너지 상태에는 자리 잡지 않는다. 반면 보존은 다른 입자의 존재와 관계없이 한 에너지 상태에 여러 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 그 결과 입자들이 마치 아무런 저항이 없이 흐르는 물, 다시 말해 ‘초유체’라고 불리는 응축상태를 이루게 된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초전도체에서도 쿠퍼쌍들이 자유롭게 흐르는 무저항 상태, 즉 전도도가 무한대인 상태가 발생한다.

박 교수는 “이 쿠퍼쌍을 깨서 인공적인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극저온에서 만들어지는 초전도체에서 온도를 약간 올리거나 자기장을 가하면 쿠퍼쌍 일부가 다시 분리되는 현상이 생긴다. 이는 마치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냇물 중간에 소용돌이가 생긴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위상학적 결함이라고도 부른다(2016년 11월호 노벨 물리학상 해설기사 참고).

이렇게 분리된 쿠퍼쌍에서 나온 전자들은 짝을 이루기 전의 전자와는 다른 상태인데, 전자와 양전자가 선형 중첩된 상태를 띠고 있다. 선형중첩 상태란 입자와 반입자 혹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모두 가능한 상태로, 관측이라는 행위를 했을 때 비로소 특정한 상태로 결정된다. 쿠퍼쌍에서 깨어져 나온 전자들은 입자와 반입자가 모두 될 수 있는 선형중첩 상태로, 마요라나 페르미온과 유사한 특징을 갖게 된다. 이를 예측한 러시아의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 니콜라이 보골리보브의 이름을 따서 보골리보브 준입자라고 부른다. 박 교수는 “초전도체를 특정한 상태로 만들면 전자(입자)일 확률과 양전자(반입자)일 확률이 정확히 각각 절반씩 존재하는 보골리보브 준입자를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공적인 마요라나 페르미온”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터 해법 될까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UC산타바바라에 거액을 투자해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구현하는 연구소를 세우고 20년 동안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응집물질물리학자들이 이토록간절히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만들려는 이유는 이 입자가 가진 특별한 가능성 때문이다.

학자들은 인공적인 마요라나 페르미온으로 위상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물질의 양자적인 특성을 이용해서 한 번에 다양한 계산을 동시에 하는 시스템으로,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성능을 얻을 수 있다. 위상 양자컴퓨터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다양한 시도 중 하나로, 정보를 처리하는 매체로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쓴다. 마요라나 페르미온 네 개를 만들고 위치를 바꾸는 방법으로 상태를 바꿔 연산을 한다. 위상 양자컴퓨터는 빛의 편광이나 전자의 스핀 등을 이용하는 다른 방법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전도체에서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담는 그릇인 위상 소용돌이는 굉장히 안정적이어서 전자의 스핀처럼 주변환경의 작은 변화에 따라 상태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현재 다른 방식으로 양자컴퓨터를 만들려는 시도가 앞서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불안정성 때문에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만들수만 있다면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훨씬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베네수엘라의 한 자동차 정비사가 자신이 에토레 마요라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1955년 자신의 정비소에 방문한 손님과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속인물이 마요라나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경찰은 그 사진을 젊은 시절 마요라나의 사진 및 아버지 등 가족의 사진과 비교 분석한 결과, 마요라나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50년 전의 일로, 마요라나의 행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미 나이가 들어 사망하고도 남았을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마요라나가 남긴 물리학적 유산은 여러 측면에서 그의 행보와 유사하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과연 에토레 마요라나의 분신인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의 손에 입자물리학의 난제와 양자컴퓨터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 마요라나 페르미온에 도전하는 사람들
2012년 4월 13일자 ‘사이언스’에는 인공적인 마요라나 입자를 만들었다는 네덜란드 연구팀의 논문이 발표됐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칼비나노과학연구소 레오 쿠벤호벤 교수팀(오른쪽 사진)은 나노미터 수준으로 얇은 금속선을 만든 뒤 그걸 금과 초전도체 전극에 접촉시키는 방식으로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론적인 계산에 따르면나노선의 양쪽 끝에 두 개의 마요라나 페르미온이 나타나는데 그걸 실제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마요라나 페르미온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입자와 반입자의 상태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조건은 만족시켰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요라나 페르미온이라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두 쌍의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만들고 각 쌍에 있는 페르미온의 위치를 다른 쌍에 있는 페르미온과 맞바꿨을 때, 각 쌍이 나타내던 상태가 서로 바뀌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페르미온 네 개로 마치 0과1처럼 두 상태를 만든 뒤 입자 교환을 통해서 각 상태가 변하는 것을 확인하면 수학적으로 제시된 마요라나 페르미온만의 독특한 성질을 만족한다. 박 교수는 “현재까지의 연구들은 초전도체에서 소용돌이를 만들고 거기에 보골리보브 준입자가 있는지 확인한 정도로, 인공적으로 마요라나 페르미온을 만들었다고 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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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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