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공학의 발달과 함께 성장호르몬, 인슐린등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이 실용화되고 있다. 분자생물학의 관점에서 본 인공호르몬제의 원리와 향후 발전전망.
생화학은 호르몬과 효소의 연구를 통해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2년 스타링(Starling)은 췌장의 분비촉진물질을 발견하고 이를 시크레틴(secretin)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체기능을 조절하는 화학물질들을 호르몬(hormon)이라 불렀다.
1920년대에 이르러 밴팅(Banting)과 베스트(Best)는 췌장 분비물에서 인슐린(insulin)이라는 혈당조절인자를 발견하고 이를 당뇨병 환자의 혈장조절제로 처음 사용케 했다. 이 업적으로 이들은 노벨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인슐린 발견은 생체기능에서 호르몬의 중요성을 인식시켰으며 더 나아가 산업적인 유용성을 처음으로 간파하게 했다. 이러한 연구 분위기는 성장호르몬 등 많은 호르몬들을 연이어 발견케 했다. 결국 호르몬 연구는 생명과학발전에 기폭제 역할을 했고, 인류보건향상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동물 생체는 수조개의 세포가 기능에 따라 각 기관으로 구분되어 있고, 이 기관들 사이에는 유기적인 상호연락체계가 구축돼 있다. 생체내 연락체계는 몇가지 신호전달체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일반적인 신호전달사항은 신경계통을 통해 전기화학적인 신호로 신속히 전달한다.
다음으로 특정정보에 대한 선택적 신호전달은 호르몬과 같은 전령을 만들러 선별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마치 우편배달과 같은 형식의 신호 전달체계다.
생체에서는 이 호르몬들을 제조하고 적절히 분비함으로써 생체기능의 균형을 유지하고 조절한다. 가령 사람의 췌장은 인슐린과 글루카곤(glucagon)이라는 호르몬들을 제조하여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에 따라 혈관에 분비해 준다.
인공호르몬 제조
모든 생물들은 자체제어계획에 따라 호르몬들을 제조하고 분비하여 완벽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간혹 유전적이거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이러한 호르몬들을 생체내에서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때는 외부에서 이 호르몬을 투여함으로써 정상적 생체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이 호르몬들은 손쉽게 구할 수 없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호르몬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화학 합성방법을 개발했으나 제조과정의 복잡성과 높은 생산가 때문에 실용적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한편 동물의 장기에서 인슐린과 성장호르몬과 같은 동물호르몬들을 추출하여 인체에 투여하는 방법이 최근까지도 사용돼 왔다. 그러나 동물장기의 수요와 공급이 불규칙하여 호르몬 생산에 차질을 빚어왔고, 또한 인체의 호르몬과 동물호르몬이 화학구조상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부작용을 유발하는 폐단이 있었다.
1980년대 들어 유전공학기술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펩타이드성 인체 호르몬들을 미생물을 통하여 대량 제조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한것. 이로써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인체호르몬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1985년에는 유전공학 기술에 의해 처음으로 인체 인슐린과 동일한 인슐린을 대장균에서 제조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인체호르몬을 만들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제까지 과학기술은 분자량이 수천 정도의 생체분자를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유전공학의 등장으로 수만의 분자량을 갖는 정교한 생체단백질을 손쉽게 제조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인류가 인공적으로 생체분자의 합성능력을 넓혔다는 점에서, 생명과학 분야를 넘어 인류과학기술의 커다란 개가라 할 수 있다.
생체내에서는 어떻게 단백질이 생합성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세포 내에는 수천에서 수만가지의 호르몬과 효소, 그리고 다양한 생체단백질들이 일사불란하게 생합성되고 있다.
현미경에도 잘 보이지 않는 그 작은 공간에서 거대한 생체분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제조되기 위해서는 합성과정이 체계적이고 합성기구는 단순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수천수만의 생체단백질 합성공장을 따로따로 만들지 않고, 하나의 합성공장만 설치해 놓고 필요한 생체단백질의 합성주문서를 이 합성공장에 보내 그에 해당하는 생체분자를 생산케하는 것이다.
유전공학의 태동
이는 매우 효율적이고 생산량과 생산시기를 원활하게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인류의 과학기술은 이러한 체계를 가진 합성공장을 인공적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생체의 세포에서는 이러한 완벽한 단백질 합성공장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여기서 생체분자의 합성에 사용되는 합성주문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합성주문서가 어떤 문자로 구성왜 있고, 합성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살펴보자.
생체내 단백질의 합성정보와 그 전달을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19세기 중엽부터 있어왔다. 당시 미셔(F.Miesher)는 유전현상을 전달하는 화학매개체를 찾고 있었다. 미셔는 생선의 알과 고름에서 유전정보의 수용체인 핵질(nuclein)을 찾음으로써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화학매개체의 존재를 규명한 최초의 과학자다.
그 후 1백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정보 매개체의 화학구조와 작용방식을 이해하려고 집요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 결과 1950년 이후에는 노벨상의 행진이 이 유전현상연구에서 계속되었다.
토드(L. Todd)는 그 유전정보의 매개체인 DNA와 RNA의 일차구조를 결정했으며 이어 왓슨과 크릭은 DNA의 입체구조를 결정하고 유전정보의 전달방법과 DNA와 RNA의 생체복제원리와 생체단백질의 합성메커니즘을 제시했다.
또한 코라나(H.G.Khorana)와 니렌버그(M.Nirenberg)는 인공적으로 합성된 DNA를 이용하여 DNA에 담겨있는 유전정보의 문자와 정보단위(단어)가 어떻게 단백질합성에서 아미노산을 지정하는지 규명했다. 이는 생명의 암호를 해독한 것이다. 그 결과 생체단백질의 합성경로가 유전정보에서 유래한다는 사실과 그 유전정보의 전달경로를 실험적으로 규명했다.
이는 유전현상의 기본원리와 그 유전정보의 기능을 규명한 것으로 생명현상을 분자수준에서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로써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가 열렸다. 또 유전정보의 분자서열을 결정하는 방법이 맥삼(A.M.Maxam)과 길버트(W.Gilbert), 그리고 생거(F.Sanger)에 의해 각각 확립됨으로써 인체는 물론, 많은 생물의 유전정보를 하나씩 밝혀나갈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 인슐린과 같은 호르몬은 인간의 질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그 유전자 문자해독을 하는데 있어 일차적인 연구대상이 됐다. 그 결과 인슐린은 아미노산 서열과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일찍 규명되었고 초기 유전공학연구자들은 인슐린과 성장호르몬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할 수가 있었다.
1960년대 이후 분자생물학자들은 많은 유전정보를 손에 넣게 되었고 이들 유전정보의 활용가능성을 타진했다. 우선 연구초점은 유전자의 재조합기술 확보였다. 이어 이를 이용한 생물간의 유전정보 교환 및 인공적 생체단백질 제조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으로도 잘 안보이는 DNA를 자유롭게 재조합하고 다른 생체에 DNA를 도입한다는 것은 당시 실험기술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도 생화학자들은 미생물 등에서 다양한 DNA 재조합효소들을 발견함으로써 유전자재조합 실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스미스(H.Smith)는 특정부위의 DNA를 선택적으로 절단할 수 있는 제한효소를 발견했고, 콘버그(A.Konberg)는 DNA를 복제해주는 DNA중합효소를 찾아냈다. 발티모어(Baltimore)는 RNA에서 DNA로 복제해주는 역전사효소를 찾아냄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DNA 재조합효소들이 등장하게 됐다.
이들은 DNA 재조합실험의 결정적인 기술수단을 제공했다. 이러한 숨가쁜 일련의 발견들은 모두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DNA라는 유전정보의 화학매개체를 손쉽게 재조합할 수 있는 생화학적 원리와 실험적인 방안이 마련된 셈이다.
생물간 유전정보의 교환가능성이 공상이 아닌 현실로 등장했다. 그 결과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지고 1980년대에는 이 유전공학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인슐린의 유전공학적 생산
펩타이드성 호르몬들은 유전공학을 통해 유사한 방법으로 생산된다. 여기서 가령 당뇨병환자에게 투여하여 혈액의 포도당 양을 조절해주는 인슐린의 유전공학적 생산방법을 살펴보자.
인슐린은 펩타이드성 호르몬으로 그 아미노산 서열이 생거(Sanger)에 의해 펩타이드 계열에서 처음으로 결정됐다. 그 업적으로 생거는 DNA 염기서열 결정방법과 함께 두번의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인슐린 유전자의 염기서열 정보는 유전공학의 구체적인 실험전략과 필요한 합성유전자의 설계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때 유전자 설계에는 숙주세포의 요구조건과 유전자재조합 실험상의 용이성 등을 충분히 고려한다. 이어 화학합성을 통해 인슐린 유전자의 작은 절편을 합성하고 유전자연결효소(DNA ligase)에 의해 유전자절편을 조립함으로써 인슐린 유전자가 얻어진다.
다른 방법으로 인체에서 인슐린의 합성주문서에 해당되는 mRNA를 분리하여 인슐린유전자를 확보하는 벙법이 있다. 그러나 인슐린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알려져 있고 그 펩타이드의 길이가 짧으므로 일반적으로 화학합성방법이 채택됐다.
이렇게 얻어진 인슐린 유전자를 대장균 내에 안전하게 도입하여 인슐린의 합성명령을 대장균이 읽게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생체세포는 외부유전자를 침입자로 간주하고 분해해 버린다.
유전공학에서는 외부유전자를 연결하여 세포내에 운반해주는 목적으로 플라스미드(plasmid)가 이용된다. 이것은 미생물 세포내에서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작은 유전자집단이다. 이 플라스미드DNA에 인슐린 유전자 등을 연결하여 대장균 혹은 효모의 세포내에서 주어진 인슐린 펩타이드 합성명령을 수행하게 한다.
그러나 플라스미드에 연결된 인슐린 유전자를 미생물에 도입했다해서 반드시 생체단백질이 세포내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유전자가 세포에 들어가서 단백질의 합성주문서에 해당하는 mRNA를 만드는 전사과정(transcription)이 있고 리보좀이라는 단백질 합성공장에서는 이 mRNA를 접수하여 그 안에 담겨있는 합성명령에 따라 아미노산을 순차적으로 결합해주는 번역과정(translation)이 있다.
각 생물의 세포마다 이 전사과정과 번역과정에서 mRNA나 단백질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추가적 명령이 그 구조유전자 앞에 담겨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한 외부 유전자를 다른 생물의 세포에 도입하여 그 담겨진 유전정보를 발현(expression)하기 위해서는 구조유전자 외에도 추가적으로 숙주세포가 선호하는 전사와 번역을 관장하는 유전정보가 삽입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분자생물학자들은 유전자의 기능을 다각도로 연구한 결과 어떠한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각 생물의 세포에서 적절한지 등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결국 인체 인슐린을 한 미생물에서 다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 발현조건을 미생물의 세포에 따라 최적화해주는 작업이 뒤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미생물에서 인체 인슐린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인체 인슐린의 유전공학적 생산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췌장 내 베타세포에서 인슐린 펩타이드가 일차로 리보좀에서 합성되면 바로 이어서 그 다음 구조조정 과정이 따른다. 그 구조조정 과정이란 펩타이드 화학구조의 조정이나 고유한 입체구조의 조립을 일컫는데, 이 과정을 통해 드디어 기능을 가진 인슐린과 같은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저등생물인 미생물과 고등생물인 인체의 세포는 각기 다른 구조조정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대장균에서 만들어진 인슐린은 구조적으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미생물에서 얻어진 인슐린을 기능성 호르몬으로 만들기 위해 일차로 입체구조를 조립하고 이어 일부 펩타이드(c-peptide)를 절단해 준다. 인체 인슐린과 동일한 기능적 생체분자구조의 호르몬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렇게 제조된 인슐린은 인류에게 주는 유전공학 최초의 선물이 되었다.
분자생물학과 호르몬
호르몬은 생체 기능을 조절해주는 반면 이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제조가 안되거나 구조상의 결함이 있으면 심대한 질환을 유발시킨다.
많은 경우 가족 중에 당뇨병 환자가 있으면 그 식구들은 당뇨병의 발생확률이 높다. 다시 말해 당뇨병은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대부분 유전적 요인에 의한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에 대한 유전적 조사는 당뇨병 환자의 발병가능성을 타진해주는 것은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당뇨병의 원천적인 원인을 알게 해준다.
유전자재조합기술의 발달은 유전정보의 총집합체인 염색체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고 인슐린 유전자는 염색체 11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한편 인슐린 유전자는 췌장의 베타세포에서만 그 유전정보가 발현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정상인과 당뇨병 환자에서의 인슐린과 인슐린 수용체 등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조사함으로써 당뇨병의 분자수준의 원인과 또 유전정보와 당뇨병과의 상관관계를 정립하게 되었다.
결국 당뇨병은 많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슐린유전자 뿐 아니라 인슐린 수용체 유전자나 포도당 대사 효소 유전자, 포도당 대사 경로상의 어느 한부위만이라도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으면 당뇨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포도당 대사 관련 유전자를 종합적으로 조사해야 그 병의 원인은 물론 그 치료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접근은 분자생물학과 의학을 연결해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나아가 고도의 유전자재조합 기술은 결국 유전자치료와 같은 방안이 등장케 하였다.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정상적인 유전자로 교체하거나 보강함으로써 유전성 질병을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요법이다. 결국 유전공학은 호르몬의 생체조절기능과 유전정보의 세포내 전달과정을 이해하는데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접근방안을 제시한 셈이다.
호르몬은 생체기능의 신호전달물질로서 생명현상 이해를 향한 새로운 가교를 만들어준 생체분자일 뿐 아니라 생명공학적 측면에서도 단연 선두적인 연구대상으로 그 자리를 굳건히 유지해왔다. 앞으로도 호르몬 연구는 생명현상 이해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생체조절물질의 발견과 함께 생명공학산업을 선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