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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재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과학동아가 선정하는 이달의 책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 날 점심에 어디서 무얼 먹었는지. 국가적 재난은 모든 국민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재난이 발생한 뒤 진상규명이나 수습과정이 미온할 때 더욱 그렇다. 최근 몇 년 사이 큰 재난 여럿을 겪은 대한민국 사회가, 재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점검해 봐야 하는 이유다.

먼저 진실을 밝히는 과정.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이 침몰했다. 군 장병 46명이 희생됐다. 다국적 민군합동조사단이 꾸려졌다. 결과가 발표됐지만 때 아닌 열역학 논쟁이 벌어졌다.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1번’이라는 글자가 쓰인 어뢰추진체 때문이다.

5년 이상 이 사건을 추적한 한겨레신문사 기자인 저자는 재난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를 말한다.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는 저자가 쓴 서울대 과학사및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학위 논문을 대중서로 다듬은 것이다.

저자는 네 개 장에 걸쳐 선체의 파손 형상, 프로펠러 시뮬레이션, 어뢰추진체, 가리비, 흡착물질, 공중음파 등 다양한 증거를 둘러싼 논쟁의 전개 과정과 성격, 구조를 세밀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과학적 사실의 ‘객관성’은 과학 실행의 결과물에서 곧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공개적이며 투명하고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인 조사활동을 거쳐 나”오는데(514쪽),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조사활동에 사용된 전문적인 과학적 방법론과 과학 실행은 조사기구 바깥에 있는 전문가집단의 동의와 설득을 얻어가는 과정을 통해 누적되며 단단해질 수 있다. (따라서) 지루할 수도 해할 수도 있는 과학 실행의 과정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관심도 높아져야 한다.”

둘째는 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국가적 혼란을 지켜본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일이다. 후성유전학뿐만 아니라, 정신의학, 신경과학, 세포생물학, 발달심리학 등 최신 과학은 트라우마가 세대에서 대로, 몸에서 몸으로 대물림된다는 증거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는 이 같은 최신 연구 결과를 망라한 책이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확장해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고한 생명 수백을 그렇게 허망하게 잃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재앙이다.


사고실험만으로 이뤄진 위대한 탐구

시간여행의 ‘모친 살해 역설’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기 전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나는 것과 내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현시대 가장 유명한 이론물리학자인 킵 손 교수가 대학원생 모리스, 유르트시버와 함께 발표한 ‘웜홀, 타임머신, 약한 에너지 조건’이라는 논문으로 촉발된 논쟁이다(690쪽). 그는 당시 논문 제목에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전도유망한 제자들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고 회고했다.

아주 명망 있는 과학자의 책을 읽는 것은 역시 이렇게 짜릿한 구석이 있다. 그 과학자가 50여 년 동안 몰두한 단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너무 유명해서 한번쯤 들어본 과학적 상식을, 저자만의 생생한 경험으로 재구성해서 마치 영화를 보여주듯 펼쳐내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 자문을 맡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킵 손 교수가 ‘블랙홀과 시간여행’이란 책을 냈다. 800쪽이 넘는다. 블랙홀에 몰두한 모든 과학자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랙홀 과학사를 관통하면서도 중요한 개념과 논쟁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쉽지 않지만, 분명 사랑스러운 책이다. 저자의 블랙홀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겼다. 1962년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블랙홀이란 용어를 만들어 낸 저명한 물리학자 존 휠러와 대화한 지 1시간 만에 블랙홀을 연구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블랙홀 연구의 황금시대가 열리기 2년 전이었다. 킵 손 교수는 “이처럼 위대한 과학적 탐구가 인간 사고에만 기초해 성공적으로 이뤄진 다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복잡한 우주를 궁극적으로 간결하고 우아한 법칙으로 해석하는 인간 정신의 놀라운 능력을 실컷 향유해보자.

201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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