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두 종의 침팬지가 살고 있다. 일반 침팬지와 보노보침팬지다. 유전자가 거의 비슷한 친척이지만, 행동은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땅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 그 중 최근 제인 구달이 미국 대통령 후보를 빗대 화제가 된 수컷 폭력의 대명사, 침팬지의 기이한 사회를 알아보자.
침팬지와 보노보침팬지(이하 보노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의 대형유인원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와 보노보의 DNA서열은 99.6% 유사하다. 당연히 외모가 무척 닮아서, 얼핏 봐선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두 종 모두 성체 수컷의 키는 82~91cm, 몸무게는 30~61kg 정도이며, 암컷은 수컷에 비해 키가 4% 작고 몸무게는 35% 정도 가볍다. 유인원이기 때문에 두 종 모두 꼬리가 없다.
유전자 비슷하고 잡종도 가능한 친척
이들은 기본적인 사회시스템도 비슷하다. 예컨대, 짝짓기 시스템이 ‘난혼(亂婚)’이다. 즉, 여러 암컷과 여러 수컷이 서로 교미해 번식한다. 인간은 일부일처제, 고릴라는 일부다처제인 반면 침팬지와 보노보 사회는 다부다처제다. 또, 수컷은 성체가 돼도 태어난 무리에 계속 남는 반면 암컷은 임신이 가능해지면 다른 무리로 시집을 간다. 마치 인간의 씨족 집단처럼, 두 종 모두 태어난 무리를 지키는 수컷들과 시집온 이방인인 암컷들로 이뤄진 무리를 형성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 침팬지의 공통 조상 집단은 200만 년 전쯤 헤어져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침팬지는 아프리카의 서부와 중부, 동부까지 광활하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 살고 있지만, 보노보는 콩고강 남쪽 일부 지역에서만 산다. 둘의 유전자가 워낙 비슷해 잡종이 생겼을 법도 한데, 보노보의 서식지가 워낙 고립돼 있다 보니 야생상태에서 잡종은 아직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혹시 잡종 가능성이 있을까. 이를 밝히기 위해 영장류학자들이 콩고 강 일대를 샅샅이 훑기도 했는데,
궁금증은 어이없게도 어떤 과학자의 실수로 해결됐다. 프랑스의 한 과학자가 1979년 침팬지 수컷 한 마리를 구입해 지속적으로 암컷 침팬지 두 마리와 교배를 시켜 7마리의 새끼를 출산시켰는데, 이 수컷 침팬지가 사실은 보노보였다. 이 과학자는 무려 7마리의 건강한 잡종 개체를 번식시켰던 것이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언제든 하나가 될 수 있는 형제 같은 존재인 셈이다.
폭력의 대명사? 종족을 지키려는 고단한 아빠?
외모나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비슷하지만 침팬지와 보노보의 행동양식은 상당히 다르다. 다르다는 표현으론 부족하고, 마치 서로 반대로 행동하기로 약속한 것처럼 판이하다. 비전문가도 1~2시간만 관찰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침팬지 사회부터 살펴보자. 침팬지 사회는 대장 수컷 중심의 서열 사회다. 의사결정을 하는 데 수컷 사이의 서열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그런데 서열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서열이 높은 개체는 서열을 지키려고, 서열이 낮은 개체는 서열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노력한다. 수컷 침팬지들은 늘 긴장 상황에 놓여 있다.
영장류학자들이 침팬지들에게 맛있는 먹이를 던져 갈등 상황을 조장하고 호르몬 변화를 살핀 결과,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남성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적 행동을 늘리고 지위를 높이려는 행동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즉, 침팬지는 갈등 상황에서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해 자신감을 높이고 새로운 승부를 두려워하지 않게 스스로를 무장시킨다. 갈등의 순간 순간이 서열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침팬지 중에서도 권력에 별 흥미가 없고 동료들과의 마찰을 싫어하거나, 암컷에 관심이 없는 소위 ‘초식남’이 있을 수 있다. 설사 그런 성격이라 할지라도 자신보다 낮은 서열의 침팬지가 자신의 먹이나 암컷을 노리거나 권위에 도전했을 때 그냥 간과해선 안 된다. 도전을 용인하는 행동 자체가 자신의 서열을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서열이 계속 낮아지면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필수 경쟁에서 뒤쳐지기 때문이다. 집단 사냥으로 얻은 고기나 주변의 잘 익은 과일을 먼저 먹을 수 없게 되고 발정기를 맞은 암컷과 교미할 확률이 줄어든다. 싸움이 두렵더라도 테스토스테론에 힘입어 최선을 다해 강인함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일까. 침팬지는 동물 중 유일하게 전쟁을 하는 종이다. 침팬지 연구의 대가인 제인 구달 박사는 침팬지들이 수 년에 걸쳐 상대 무리를 모두 죽여 없앨 때까지 전쟁을 계속했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했다. 당시 새끼를 죽이는 행위도 관찰됐는데, 이 때문에 침팬지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남성 폭력을 빗댈 때 언급 되기도 한다(지난 9월 영장류 학자 제인 구달이 미국의 모 대통령 후보를 수컷 침팬지에 비유했다). 인간의 잣대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이는 젖먹이 새끼를 죽여 암컷 개체의 생리주기를 임신 가능한 상태로 바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종족을 보존하려는 적극적인 행동일 가능성이 있으며 사자, 고릴라, 랑구르원숭이 등 다른 다양한 동물 종에서도 발견되는 행위다.
침팬지가 무리 내에서 흔히 보이는 과시행동도 마찬가지다. 갈등상황이 생겼을 때 서열이 높은 침팬지는 나무를 흔들고 무언가를 던지거나 팔을 흔들면서 무리 사이를 뛰어다닌다. 이런 과시 행동이 암컷이나 새끼를 향하면 육체적으로 약한 개체들이 심하게 다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과시행동은 실질적인 폭력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과시행동 덕분에 서열이 낮은 침팬지가 물러나면, 물리적 충돌 없이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가 도출된다. 침팬지의 폭력성은 아프리카의 자연 환경에 적응한 사회적 행동인 것이다. 수컷 침팬지는 어쩌면, 자신과 종족의 생존을 위해 능력을 초과하는 무모한 도전도 감내해야만 하는 아빠일 뿐인지도 모른다.
서열 낮은 침팬지의 사랑의 도피
침팬지들의 서열 중심주의는 짝짓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암컷 침팬지는 발정기에만 교미하는데, 이때 생식기가 부풀고 분홍빛을 띠어 모든 수컷이 알 수 있다. 무리 내의 수컷 대부분과 교미하지만, 서열이 높은 대장 침팬지와 가장 자주 교미한다. 영장류학자들은 침팬지의 이 같은 독특한 난혼 시스템을 ‘정자전쟁’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무리 내 새끼들은 대장 수컷의 새끼일 가능성이 높다(정자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수정 확률을 높이기 위해 침팬지의 고환은 인간보다 2배나 크다).
그런데 독특한 행동 하나가 단순한 확률 싸움에 불과했던 정자전쟁의 규칙을 복잡하게 만든다. 바로 ‘사랑의 도피’다. 보통 수컷 침팬지는 영역을 방어하기 위해 무리 주변의 매우 넓은 영역을 순찰하는 반면 암컷은 영역 중심부에 머문다. 암컷이면서 영역 주변부로 나갈 수 있는 경우는 아직 한 번도 임신하지 않는 청소년 개체뿐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바로 사랑의 도피다. 서열이 낮아 정자전쟁에 거의 참여할 수 없는 수컷이 대장 수컷의 눈을 피해 암컷을 유혹해 영역 주변부로 데리고 나가 교미를 하는 것이다.
모든 세상이 그렇듯, 다수가 나아가는 방식을 따르는 정통파가 있다면 틈새를 공략해 보다 낮은 경쟁률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무리가 있는 법이다. 대부분의 경쟁자가 테스토스테론에 기반한 정통 룰을 따를 때, 이들 침팬지는 암컷을 잘 꼬시는 작업능력을 몰래 키워 조용히 자신의 자손을 무리에 남긴다. 이들은 이런 방법으로 대장 수컷이 독점적으로 누리는 지위를 남몰래 누리고 있다. 이런 독특한 행동은 침팬지 사회에서만 관찰된다. 과연 보노보 사회는 어떨까. 다음 화에서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