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눈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귀에는 무관심한 편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대화가 불가능한 청력을 가진 난청환자가 많습니다. 미국만 해도 인구의 1%이상이 심한 난청을 앓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환자수는 50만~1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지요."
난청 특히 중이(中耳)와 내이(內耳)의 생화학적 연구로 한국인으로서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의학자 전성균(全聖均·55·미국미네소타대 교수)박사. 그는 한국 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가 지난 7월7일부터 10일까지 인하대에서 개최한 제10회 종합학술대회의 의약분과에 재미과학자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전박사로부터 난청의 최신 치료기법과 기초의학의 세계적 연구추세에 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 발표하신 논문은 어떤 것이었읍니까?
"제목은 '중추신경계통에서의 류코트리엔(leukotriene)의 대사'였는데 기초의학에 속하는 연구지요. 류코트리엔은 주로 뇌에서 발견되는 물질로서 뇌일혈이나 뇌출혈이 생겼을 때 그 농도가 높아져 여러가지 증상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류코트리엔이 뇌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동물실험으로 확인했지요. 이런 기초연구는 난청의 치료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논문은 노벨상을 수상한 '사뮤엘슨' 교수 밑에서 지난 82년 연구한 결과를 간추린 것이지요."
-앞서 지적하신대로 난청환자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다는 느낌입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읍니까?
"중이염을 통해 청력을 잃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3세이하의 아동중 70%가 이 병에 걸린다는 통계가 나와 있읍니다. 감기 다음으로 빈번하게 걸리는 병인 셈이지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중이염 환자가 많다는 이야길 들었읍니다. 전세계적으로는 환자수가 5백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지요.
중이염은 항생제를 투입하면 90%의 경우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나머지는 낫지 않습니다. 아직 치료방법이 확립돼있지 않다는 거지요. 뒤집어 말하면 치료약에는 아직 개발의 여지가 있어 앞으로 시장개척의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읍니다."
전박사는 현재 이 분야에선 세계에서 가장 앞선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그룹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실제로 전박사의 연구팀은 중이염과 관련된 동물실험을 가장 많이 하는 그룹이라고 한다. 전박사는 중이염을 채취하는 도구를 몸소 고안해 미국에서 특허를 얻기도 했고 이번에 이를 주사기식으로 개량한 중이액 채취기를 국내 업계에 의뢰해 제작할 방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의약계를 둘러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KAIST 구미공단 여러 대학들을 두루 방문했읍니다. 그때 느낀 것은 의약분야의 연구활동은 대학에 일임하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지요. 요컨대 과학기술만이 우리의 살 길일진대 의약분야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세계적 연구소인 '바이즈만 연구소'는 좋은 예이지요.
잘 알다시피 신약의 개발은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고 장래성도 있읍니다. 이번에 같이 귀국하신 주중광(朱重光·46·조지아대 교수) 박사가 에이즈(AIDS)치료제를 개발해 미국특허를 얻어 임상전 실험을 앞두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요. 이런 성과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도 것은 당장과 쓰임새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기초연구라고 봅니다"
-국내에서 의학분야의 기초연구를 진작시키기 위한 좋은 복안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특별히 뾰족한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우를 들어 보지요. 제가 4년간 연구자금 심사위원으로 일했던 미국국립의학연구소에는 암연구소 난청연구소 등 10개의 산하 연구소가 있어 기초의학연구를 활발히 벌이고 있읍니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런 성격의 국립연구소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난청연구소도 없는 형편이지요. 암분야에서는 그럭저럭 연구여건이 마련돼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귀국할 때마다 대학에 부속 난청연구소를 설립토록 역설하고 있읍니다. 지난해에는 계명대에 난청연구소가 세워져 보람을 느꼈읍니다. 결국 우리나라에도 '국립의학연구소'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기초의학연구가 활발해져야만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고 또 해외의 두뇌도 유치할 수 있을 겁니다."
전박사는 58년 경북의대를 졸업, 서울의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이탈리아와 서독에서 연구를 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 정착해 20년째 교수생활을 해오고 있다. 지난 84년에는 노벨의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객원교수로 연구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동안 외국에서 연구생활을 계속하면서 느끼신 보람이라면 어떤 것이 있읍니까?
"처음엔 1년동안만 있다가 귀국하려 했지만 1년이 3년이 되고, 또 연구소를 만들어 주는 등 연구여건이 마련되니까 그 기간이 다시 10년 20년이 돼버리더군요. 돌이켜 보면 그 동안 한국에 있었던들 하지 못했던 연구를 해온 게 가장 큰 보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서울대의 정태근 교수를 비롯해 5~6명의 국내 학자들이 제가 있는 곳에 와 연구를 하고 갔읍니다. 현지에서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보람중의 하나라고 하겠지요."
전박사는 그 동안 중이염에 관해 60-70편, 그리고 난청과 평형기구 이상에 관한 논문을 50여편 발표하는 등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여왔다. 중이염의 발생기전에 관한 생화학적 연구와 내이(內耳)액의 평형유지에 관한 연구는 전박사가 개척한 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한 저서로는 미국과학아카데미에서 펴낸 '내이 생화학'을 꼽을 수 있으며 '중이의 생화학'이란 저서도 준비중에 있다.
-현재 수행중인 연구를 소개해 주시죠.
"뇌에는 모든 피가 뇌로 들어가는 걸 막는 '뇌혈격막'(Blood Brain Barrier)이 있는데, 이것 대문에 뇌속의 병을 치료하는 약물이 뇌로 잘 들어가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요. 에이즈나 뇌막염 그리고 허피즈 등의 병도 이런 문제 때문에 투약효과가 줄어들게 됩니다.
제가 착안한 것은 이런 약을 맞아들이는 운반자(carrier)가 있다는 사실과 귀도 뇌처럼 같은 원리로 보호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귀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블러드 래비린스 베리어'(Blood Labyrinth Barrier)란 용어를 제안했는데, 이 단어를 세계 최초로 창안한 셈이지요.
한편 최근에는 '미어니스'병(Meniere's Disease)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요. 이 병에 걸리면 귀가 안들리고(난청) 어지러우며 귀가 울리는(이명) 증상이 나타나는데 아직 아무도 그 원인을 모르고 있읍니다. 내년 6월에는 이 병에 관한 두번째 국제 심포지움이 열릴 예정인데 여기에 프로그램위원회의 위원으로 조직에 참여하고 있지요."
이번에 개최된 종합학술대회는 단지 선진외국의 최신과학기술이론에 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미국에만도 5천5백94명의 등록된 회원을 가지고 있는 해외거주 과학두뇌의 유치가 보다 큰 목적인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해외두뇌의 국내유치자는 모두 1천2백14명(영구유치 7백5명)으로 그중 절반이상이 80년이후에 유치된 경우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7백여명의 해외거주 과학자중 상당수가 귀국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듣고 있읍니다만, 의학분야에서의 두뇌유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국에서 활약하는 세계적 한국의 의학자로 임종재교수(오하이오대) 주재광교수(조지아대) 김재호교수(코넬대) 송창률교수(미네소타대) 등 상당수를 들 수 있읍니다. 문제는 이들이 귀국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인데 국립의학 연구소설립 등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 연구소가 생긴다면 귀국하겠냐는 질문에 전박사는 웃음으로 답한다.
"큰아들이 낸녀에 하바드의대를 졸업하는데 아직 국내에서 일할 자리는 많지 않은 것같아요. 오히려 현지에서 활약하도록 하고 그들은 잘 활용하는 편이 좋을듯합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전박사는 유전공학등 다른 분야에 비해 의학분야의 기초연구는 방치된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밀화학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기 위해서도 기초의학연구가 절실함을 재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