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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우리 집 실험실 만들기 Lab Me Home


인테리어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베란다에 낚시터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쥐꼬리만 한 공간을 멋지게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과학을 좋아하는 이를 위해 우리 집에 실험실을 만들어주지는 않을까. 호기롭게 기자가 일해본 적 있는 생명과학 실험실을 만들려 무작정 덤벼들었는데…. 그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한숨 #삐질삐질 #뉴욕 #우리_집_실험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비용이었다. 기자도 실험을 해 봤지만 그때는 생각 없이 써대는 연구원 입장이었기 때문에, 장비와 시약의 정확한 가격은 몰랐다. 가격과 예산에 민감한 연구책임자급 과학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패 #좌절 #망했어요

흔히 보던 실험실, 싼 줄 알았지?
“어떤 실험을 할 것인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A 교수는 우선 목적을 물었다. 그때만 해도 기자는 꿈이 컸다. 속마음은 실험용 마우스까지 준비해서 유명 저널에 논문을 쓸 기세였지만, 눈치는 있어서 ‘소박하게’ 인간 세포로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인간 세포요? (헛웃음) 인간 세포 배양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이야기해보죠. 먼저 온도를 30℃로 유지시켜 줄 인큐베이터가 필요합니다. 이것만 해도 가격과 부피가 만만치 않죠. 정말 양보해서 따뜻한 구들장에 놓고 키운다고 해보죠. 플레이트 위에서 자라는 세포는 부산물로 요소를 내놓는데, 사람이라면 신장에서 요소를 제거하겠지만 단일 세포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고농도 CO2를 공급해 요소를 중화시켜야 합니다. 집에서라면 방 한구석에 커다란 CO2 탱크를 놓아야겠죠. 무엇보다도 별도의 독립된 공간이 없으면 세균의 감염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제야 예전에 일하던 세포 배양실이 떠올랐다. 감염을 막기 위해 수시로 소독용 에탄올을 뿌리고, 손만 간신히 넣을 수 있는 벤치에서 작업을 했다. 웬만한 가정 집 안방에 놓기 힘들 만큼 덩치도 컸다.

아무래도 인간 세포는 어려울 것 같아 그나마 오염에 강한 박테리아와 효모로 방향을 돌려 다시 전화를 돌렸다.

“안전 문제는 해결한다고 가정하는 거죠? 그렇다면 무조건 작게 만드세요. 일을 크게 벌이면 어려울 겁니다.”

안전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B 교수에 따르면 최근에 우리나라도 생물안전 등급을 깐깐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유전자 조작 실험을 할 경우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효모나 박테리아 역시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역시 비용이 문제였다. 굵직굵직한 장비들은 물론 비쌌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잘한 소모품과 유지비가 꽤 컸다. 수억 원 대의 스포츠카가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져도, 어마무시한 보험료와 기름값이 없어서 주차장에 세워 둬야 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혼자서 끙끙 머리를 굴려봤지만 우리 집에 보통의 생명과학 실험실을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논문 출판의 꿈은 멀리 날아가고,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두 사람의 조언을 참고해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최소한의 장비로 최대한 간단한 실험실’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눈을 낮추니 참고할 사례가 보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 중인 ‘DIY BIO 운동’은 1990년대 후반에 처음 등장했다. 사용자가 직접 조립한다는 뜻의 DIY(Do It Yourself)와 BIO의 합성어인 DIY BIO는 일반인들이 직접 생명과학 실험을 해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마추어를 위한 실험실이라니, 뭔가 싸고 간단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진스페이스(genspace)’는 미국 뉴욕에 실험실을 운영 중이다. 이들에게 홈메이드 실험실 만들기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뉴욕을 찾았다.


#구사일생 #하늘이_무너져도_솟아날_구멍

뉴욕에서 얻은 힌트 : DNA 분석 정도라면 혹시?
맨해튼 남쪽과 브루클린을 잇는 브루클린 다리는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다리 아래 지역은 ‘덤보(dumbo)’라고 불리며 젊은 예술가들과 세계적인 갤러리, 맛집이 즐비한 뉴욕의 ‘핫 플레이스’다. 뉴요커들에 끼어 커피 한 잔을 쥐고 잔디밭에 앉고 싶었지만 기자는 반대편의 낡은 건물로 향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나 보던, 직접 문을 열고 닫는 엘리베이터가 입구에서 기자를 반겼다. 2차 대전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분명했다. 이 건물의 꼭대기 층에 진스페이스의 ‘시민 실험실(citizen lab)’이 있다.

진스페이스는 2010년 모금을 바탕으로 시민 실험실을 열었다. 그 후 이곳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매주 생명과학 실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오늘 수업을 진행하는 줄리 울프 박사는 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미국미생물학회와 진스페이스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수업은 ‘바이오해킹 완전 정복하기’라는 이름으로, 울프 박사가 10여 명의 수강생을 교육할 예정이다.

시민 실험실은 30평 남짓한 크기였고, 여기에 간단한 파티를 열 수 있는 부엌과 이론수업 공간이 있었다. 순수한 실험실은 방 하나 정도 크기다. 실험실 양쪽으로 튼튼한 철제 책상이 있었고, 중앙 통로는 사람 두세 명이 일렬로 설수 있는 너비였다. 좁은 공간이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기본적인 시약과 기기는 물론 박테리아를 배양한 흔적도 보였다.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닌 곳에서 이런 장비를 본 것은 기자도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장비는 진스페이스가 직접 구입한 것이다. 줄리 박사는 “돈이 부족해 대부분 중고”라며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것은 실험실 임대료”라고 덧붙였다. 뉴욕의 살인적인 집값은 과학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학생들이 속속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카렌은 웹디자이너로 인근의 코네티컷 주에서 두 시간을 운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녀는 과학이 너무 좋은 ‘과학 덕후’였으며, 수업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바이오 해킹 소설을 쓰는 소설가 파티마, 우리나라 광주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던 탐, 머리가 하얗게 센 인상 좋은 할머니 아라비아등이 도착했다. 이날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펫을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는 생 초짜였다. 줄리 박사는 서두르지 않고 간단한 이론부터 교육했다. 모두들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이들은 앞으로 삼 주 동안 자신의 DNA를 채취해 유전적 뿌리를 알아보는 실험을 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첫 수업으로, 입속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채취해 중합효소연쇄반응(PCR)으로 DNA를 증폭했다. 그 뒤 외부의 서열분석 업체에 의뢰해 DNA 서열을 읽는다. 그동안 학생들은 DNA 서열을 분석하는 생물정보학 프로그램을 배워 스스로 자신의 DNA를 분석한다. 바이오해킹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부족하지만 입문용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과정이었다. 이 정도를 하는 실험실이라면 한국에서 만들어볼 만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_바이오해커 #PCR #우리_집_실험실

우리 집에 실험실 만들기, 가격 공개!
뉴욕과 한국의 과학자들로부터 얻은 노하우를 토대로 다시 실험실 설계에 돌입했다. 세포나 마우스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PCR을 기반으로 DNA를 분석하기로 했다. 진스페이스에서처럼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가계도를 그려볼 수도 있다(한국에선 아직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비슷한 방법으로 맥주 발효에 사용된 미생물의 종류를 확인할 수도 있다. 우리가 먹는 식품의 유전자조작 여부도 외부 유전자의 흔적을 PCR로 증폭해 알아낼 수 있다.

실험에 필요한 장비를 노트에 차례대로 적어보니 10개 정도였다. 여기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각종 노하우를 동원했다.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PCR 기기는 바닥 면적만 A4용지 두세 장을 합쳐놓은 것 이상이고 가격도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성인 남성이 들었을 때 ‘억’ 소리가 날 만큼 무겁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 개발된 미니 PCR 기기들은 크기도 작고 가격도 싸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인 아두이노 보드를 활용하면 10만 원으로 PCR 기기를 만들 수도 있고, 완제품도 50만 원 선에서 구입할 수 있다.

고온․고압을 이용해 멸균을 하는 오토클레이브(autoclave)는 압력솥으로 대체했다. A 교수는 “오토클레이브의 원리는 압력솥과 완전히 똑같다”며 “실제로 규모가 작은 실험실에서는 압력솥으로 멸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직접 장비를 사야할 경우에는 최대한 작고 저렴한 제품을 기준으로 견적을 뽑았다. 생명과학자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 ‘브릭’의 중고장터와 경력 10년차 전문업자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산출된 최종 견적은 275만 원이다. 실험 장비만 따지면 225만 원 내외며, 6개월 동안 실험에 필요한 시약에 50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개수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엌의 일부분을 실험실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지난 5월 ‘과학동아’ 특집에 소개됐던 합성생물학 실험실을 꾸릴 수도 있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예술가들이 자그마한 실험실을 만들어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조작해 바이오아트를 하기도 한다. 대신 장비 구입비용은 두 배로 껑충 뛰고, 필요한 공간도 두 배 이상으로 는다. 박테리아를 기를 때 풍기는 X냄새같은 고약한 냄새는 덤이다. 자세한 가격은 다음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집에 들어온 실험실~!

압력솥 가격 : 7만 원

DNA를 다루는 실험은 기본적으로 오염에 강하지만, 그래도 샘플과 닿는 장비는 멸균을 해주는 것이 좋다. 원래라면 고가의 장비를 사용해야 하지만 가정에서는 압력솥을 이용해 고온․고압으로 박테리아를 없앨 수 있다.

미니 냉장고 가격 : 10만 원

실험실에서는 영하 70℃까지 내려가는 특수 냉장고를 반드시 갖춰야 하지만 우리가 하는 실험에서는 자취생들이 많이 쓰는 조그마한 냉장고면 충분하다. 이곳에 열에 약한 효소 등을 보관한다.

원심분리기 가격 : 50만 원

책상 위에 올릴 수 있는 가장 작은 원심분리기로 골랐다. G사의 제품. 모 업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파격 할인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볼텍서(vortexer) 가격 : 20만 원

용액을 잘 섞는 용도로 쓰인다. A 교수는 “이 정도 실험에 굳이 필요 없을 것”이라며 책상에 드르륵 굴리면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자존심이 그것까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정말로 저렴한 제품으로 골랐다.

마이크로 피펫 가격 : 45만 원

0.1~1μL 단위로 정확히 용액을 더는 피펫이다. 독일제 명품(?)은 개당 30만 원 이상이지만, 국산 제품은 15만 원 선에서 구할 수 있다. 단위 별로 세 개가 필요하다.

PCR 기기 가격 : 50만 원

크기와 제조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물을 끓여가며 1시간30분 동안 직접 용액을 옮기면 0원으로도 할 수 있다. 그건 너무 귀찮으니, O사의 미니 PCR을 구입하기로 했다.

50mL & 1mL 튜브 가격 : 3만 원

DNA와 완충 용액 등을 담는 용도다. 깨끗하게 멸균해 사용하며, 보통 1mL과 50mL 두 가지를 가장 많이 쓴다. 개당 가격은 각각 15원과, 250원 정도. 6개월 동안 사용한다고 가정하고 가격을 계산했다.

기타 시약들 가격 : 50만 원

과학자들이 일일이 모든 용액을 만들어 사용할 거란 편견을 깨라. 친절하고 돈에 밝은 업체들이 실험을 위한 용액 일체를 키트 형식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이 키트를 사면 6개월 동안 10만 원 정도면 원없이 PCR을 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를 채취하기 위해 세포를 깨는 데 필요한 시약, DNA를 전기영동할 때 필요한 염색약, 기본적으로 쓰이는 완충용액 2~3종 등이 더 필요하다.

DNA 전기영동기 가격 : 40만 원

전압기와 아크릴판으로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안전을 고려해 중고로 구입하기로 했다. 전기를 이용해 DNA를 크기별로 분리하는 장비다. 평판이 좋은 B 사의 제품을 골랐다.

합계 : 275만 원(1주일에 1회 실험, 6개월 기준)


*이 실험실의 생물 안전 등급은 1레벨로, 실제로 실험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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