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Interview] “ 젊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1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학살된 ‘킬링필드’ 사건을 겪은 캄보디아는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가 드물다. 특히 수학 분야에는 여성 박사가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최근, 캄보디아 최초의 여성 수학 박사가 서강대에서 학위를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킬링필드 사건 이후, 대부분의 부모들은 여자 아이가 집에서 떨어진 도시에 나가 공부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어요.”

소니 찬(Sony Chan) 씨도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 수도 프놈펜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그는, 수학 박사가 될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땐 집안일을 돕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수학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입학 후 인수분해와 방정식 등을 배우면서 수학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고향에서 대학에 들어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의 미래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반전의 계기는 고등학교 졸업생 중에서 대학 입학시험에 응시 자격을 주는 국가시험이었다. 100명이 넘는 졸업생 중에서 소니 찬 씨를 포함한 여섯 명이 합격했고, 그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대학 진학을 허락했고, 그는 프놈펜에 있는 왕립프놈펜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학부과정 이상의 수학을 공부할 수는 없었다. 당시 캄보디아에는 수학과 대학원 과정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고향에서 교사가 될 것을 권했다. 1년 동안 교사 훈련을 받은 그는 모교 수학 교사가 됐고, 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모교에서 석사과정을 개설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근 10년 만에 다시 손에 잡은 공부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강의를 맡은 교수진은 모두 외국에서 잠시 들어온 교수들이었고, 촉박한 일정 때문에 한 과목을 3주만에 가르치고 떠났다. 제대로 된 과정으로 공부할 필요를 느끼던 차에 서강대에서 장학생을 뽑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수함수를 기억하라

“처음 한국에 왔을 땐 겨울이었어요. ‘이렇게 추운 데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가 한국에 온 지도 벌써 8년이 흘렀다.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7년이 넘게 걸렸다. 비교적 긴 기간이다. 공부를 쉬었던 기간이 길었고, 배우지 못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학부 과정의 수업도 들어야 했다.

매일 연구실과 기숙사를 오가는 생활이 힘들었고, 어린 시절 느꼈던 수학에 대한 즐거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느새 ‘그만 두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만 둘 수가 없었어요. 제가 캄보디아에서는 처음으로 서강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고 왔던 터라 책임감을 느꼈어요. 제가 그만 두는 선례를 만들면 다른 캄보디아 학생이 장학금 과정에 지원했을 때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후배들이 불이익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도교수인 임경수 교수를 포함한 수학과 교수들이 그에게 계속 버틸 수 있는 힘을 줬다. 그는 특히 ‘지수함수 예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지수함수는 큰 변화가 없다가 어떤 시점이 되면 급격하게 증가하잖아요. 그 시점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이 와 닿았어요.”

임 교수는 그를 강하게 훈련시켰다. 박사학위를 위한 연구 주제를 제안하고,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하게 했다. 그의 연구 주제인 ‘푸리에 급수에서 나타나는 깁스 현상의 제거 문제’는 디지털 텔레비전이나 통신기술 등에서 잡음을 제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다. 그는 얼마나 걸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실패와 도전을 반복했고, 결국 임 교수로부터 ‘오케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임 교수는 장학금 지원 기간이 끝나 캄보디아로 돌아간 찬 씨를 지도하기 위해 직접 캄보디아에 방문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렇게 결실을 맺은 연구 결과는 현재 대한수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대한수학회보’에 게재 승인을 받은 상태다. 임 교수는 “소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다”며 “아무리 어려운 숙제를 내 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늘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수학 교과서, 연구팀 만들고 싶어

소니 찬 씨는 9월부터 모교인 왕립프놈펜대 수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돌아가면 교과서부터 만들 계획이다. 지금까지 캄보디아 대학에서는 특별한 수학 교과서 없이 교수가 여러 자료를 모아 번역한 걸 교재로 써 왔다. 그는 “한국에서는 영어 원서를 교과서로 쓰고 강의는 한국어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표현 방식으로 공부하면서 모국어로 이해를 돕는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동료 교수들과 함께 수학과 연구팀도 꾸릴 계획이다. 현재 함께 연구할 석사 및 박사들을 모집중이다. 이미 연구팀 이름도 정했다. ‘최적화 및 시뮬레이션 모델링’ 연구팀이다.

“이제 여유를 갖고 제가 관심 있는 연구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요. 대학원에서는 모든 걸 시간에 맞춰 해야만 했기 때문에 압박이 있었거든요. 여유를 가지고 수학을 대하면, 다시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 사진

    윤신영 기자

🎓️ 진로 추천

  • 수학
  • 교육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