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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0년

테마에세이/환경과 인간⑩

정부관료들은 2천년까지 수천억원을 들여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을지 모르나, 그러한 투자는 단지 1백년짜리 정기예금의 첫 불입액 정도에 불과하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수수께끼 같은 시편(詩篇)들을 샅샅이 해부해 예언의 힘을 불어 넣은 사람들은 지극히 겁많은 운명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점쟁이를 찾아가서 불안한 자신의 운명을 엿보듯 미래의 세상을 훔쳐보고 싶어했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4백여년 전의 한 예언자에게 매달려 그들이 캐낸 인류의 미래에는 머지 않은 곳에 종말이 놓여 있었다. 1999년 인류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는 자신들의 해몽을 그들은 굳게 믿었다.

베드로전서 3장7절에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졌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구절이 있지만, 종말에 대한 경고는 죄많은 인간들에게 언제나 가장 효과적인 각성제 노릇을 해 왔다. 요사이도 애매모호한 종말론을 믿고 일찌감치 인생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종말론이 판을 치는 시대일수록 불행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종말론 역시 화해할 수 없는 지상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환경과 인간
 

기술이 해결해 주리라는 것은 환상

몇 개월 혹은 몇년 후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은 터무니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서 눈부시게 번창하고 있는 이 지구의 문명이 언젠가 종말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아주 지워 버릴 수 는 없다. 많은 과학자들은 핵전쟁이나 기후변화 등의 그럴 듯한 가설을 세우고 여러가지 지구 멸망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근원적인 불안이 반드시 그런 멸망 시나리오의 탓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대로 가다가 꼭 파국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의 근원에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가 저지른 무분별한 지구파괴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잠재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이 인간으로서 더 이상 이 지구상에서 살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때의 모습은 인간 대 환경의 극한적인 대치상황일 것이다. 공룡이나 맘모스의 지능으로서는 그러한 대치상황을 극복할 수 없었겠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집트를 비롯한 역사상 여러 문명들의 부침이 기후와 같은 환경요인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듯이 그러한 기술 낙관론이 우리의 불안감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더구나 기술 낙관론은 환경문제의 해결방법을 왜곡시킬 우려도 있다. 기술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이 파괴한 자연과 환경을 첨단기술이 모두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파괴된 생태계도 기술이 복원시켜주고 맹독성의 폐기물도 기술이 깨끗이 없애 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러나 환경기술이 환경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하다. 물론 첨단기술이 환경문제의 산적한 골치거리를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거나 새로운 탈출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국민이 환경기술을 믿고 언제쯤이면 공해 걱정이 없는 세상이 올까 하고 기다린다면 결코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관료들은 2천년까지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투자는 단지 1백년짜리 정기예금의 첫 불입액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지구의 날이 처음 생겼던 미국의 70년대 초와 아주 비슷하다. 너나 할 것 없이 환경문제에 눈을 뜨고 언론은 국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 목청을 높인가. 삶의 질이 삶의 양보다 중요해지고, 개발이라는 '만능의 수레' 한 모퉁이에 '보전'이라는 껄끄러운 짐꾸러미가 얹히게 된다. 환경이라는 단어가 궁핍한 과학자들에게는 연구비를 따내는 데 제일 좋은 구실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환경보호모임을 갖자

우리의 20년 후의 모습이 반드시 미국의 오늘날 상황과 같으리라는 예측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고통의 체험을 거치지 않은 깨달음이 없듯이 그들의 경험과 깨달음은 우리에게 귀중한 거울로서 가치가 있다. 미국은 환경문제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기 시작했던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들의 자체 평가는 점수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유해폐기물, 실내공기 오염, 산성비,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등 그동안 수많은 새로운 환경문제가 발생했지만 그동안 이에 대처하는 많은 법이 마련됐고 엄청난 기술적인 진보가 있었기에 실패는 아니었다는 것이 그들의 평가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음 20년 동안에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근본적인 방법론을 완전히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나 농업, 도시 개발 문제를 환경개선과 관련해 종합적으로 재고함은 물론, 다음 20년 동안에 오염을 줄이는 데 일반 국민과 기업의 능동적인 참여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시장적 측면에서의 자극요인들을 개발하고 기업의 긍정적인 참여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이 환경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전 국민이 짐을 나누어 지고 모두가 행동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야 한다는 '풀뿌리 작전'이 그들의 전략이다. 환경 윤리를 정립하기 위한 책임의식의 전파가 바로 다음 20년의 목표인 것이다.

20년 뒤졌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 20년 뒤를 쫓아갈 이유는 없다. 앞으로 20년동안 그 격차는 줄어들 수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 여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대부분 관심이 있어도 누군가가 직접 요구하거나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행동을 취하는 데 망설이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은 이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행동은 그에 따르지 못한다. 쓰레기는 분리수거해야지 하면서도 그냥 쓰레기를 섞어 버리고, 일회용 제품은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편리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좋은 방법이 있다. 오늘이라도 당장 친구들이나 가까운 이웃과 함께 환경을 지키는 조그마한 모임을 만들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풀뿌리 작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작은 풀뿌리들이 모여 푸르게 엉기며 뻗어나갈 때 우리의 운명은 다음 20년동안에 새롭게 창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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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성현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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