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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양자역학으로 무한의 호텔을 지을 수 있을까



무한을 담는 무한의 공간이 가능할까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는 1924년 힐베르트 호텔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합니다. 일종의 가상의 호텔인데요. 무한 개의 방이 있고 여기에 투숙하는 손님도 무한 명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방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묻는 거죠. 최근에는 이 호텔을 직접 지으려는 과학자까지 등장했습니다.

여기, 무한 개의 방이
있는 호텔이 있어요. 오는 손님을 마다하지 않는 이 호텔은 언제나 끝도 없이 밀려오는 손님으로 붐빕니다. 호텔의 이름은 힐베르트 호텔. 그런데 무한 개의 방이 어느 날 가득 차버렸습니다(아무리 무한 개의 방이 있더라도, 무한 명의 손님이 있다면 이럴 수 밖에 없겠죠). 야속한 손님들은 그
것도 모르고 계속 로비에 도착하는데…, 한 번도 손님을 거부한 적이 없는 100년 전통의 호텔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 힐베르트 호텔에는 똑똑한 벨보이가 있었습니다. 얼굴이 흙빛으로 질린 지배인에게 이 벨보이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투숙하고 있는 손님들이 호실 숫자를 두 배 해서 옮기면 되지 않을까요?”

벨보이의 제안은 이렇습니다. n호실에 머물고 있는 손님을 2n 호실로 옮기자는 것이죠. 1호실에 묵고 있는 손님은 2호실로, 2호실의 손님은 4호실로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면 지금 투숙하고 있는 모든 손님이 짝수 호실로 이동합니다. 힐베르트 호텔의 객실은 무한하기 때문에 손님이 짝수로 옮기면 무한한 홀수 호실이 비고, 새로 찾아온 무한 명의 손님을 홀수 호실로 안내하면 됩니다. 그제야 지배인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핍니다. 기지로 호텔을 구한 벨보이의 이름은 칸토어입니다.

힐베르트 호텔은 독일의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가 처음 제안한 사고실험입니다.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수학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모든 호실에 손님이 묵고 있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운 손님이 투숙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현실의 호텔에서는요. 하지만 방 숫자가 무한히 커지면, 힐베르트 호텔에서 본 것처럼 또 새로운 손님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힐베르트가 지적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인데요. 무한에서는 ‘방이 남지 않는다’와 ‘새로운 방이 없다(손님이 묵을 수 없다)’는 것이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자연수는 투숙 가능, 실수는 투숙 불가

이것은 또 다른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그 칸토어(그 벨보이에요!)가 무한의 크기를 비교할 때 사용했던 개념입니다. 칸토어는 집합을 이용해 무한의 크기를 연구한 수학자입니다. 칸토어는 어떤 두 집합이 일대일로 완전히 대응되면 크기가 같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손가락 다섯 개와 발가락 다섯 개는 어느 것 하나 남지 않고 쌍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집합의 크기가 같다는 거죠.


 


다른 방으로 옮겨 새로운 빈 방을 만드세요. 그 방법을 활용하면 아무리 많은 유리수가 호텔을 찾아도 모두 투숙할 수 있답니다. 완전한 일대일 대응이죠. 때문에 자연수와 유리수 집합의 크기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힐베르트 호텔의 크기는 정말로 무한인걸까요? 유리수보다 범위가 큰 실수가 호텔에 투숙한다고 가정해보죠. 모든 실수는 범위가 너무 크니, 범위를 좁혀 0과 1사이의 실수를 자연수와 비교해보죠. 역시 자연수를 차례대로 적고 반대편에는 임의의 무한한 실수를 다 적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얼핏 자연수와 실수도 완벽히 짝지어 진 것 같은데요. 칸토어는 여기에 하나의 반례를 제시합니다. 힐베르트 호텔의 객실 n호에 투숙하고 있는 실수 An의 n번째 숫자를 차례대로 적으면, 대각선을 따라 0.67895… 가 됩니다. 이제 소수점 아래 n번째 자리의 숫자를 기존의 An의 n번째 숫자가 아닌 다른 숫자로 바꿔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첫째 자리의 6을 3으로(6이 아닌 어떤 숫자든 가능), 둘째 자리의 7을 8로 바꾸는 식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임의의 새로운 숫자, 예컨데 0.38584…는 기존에 객실에 머물고 있는 An과 절대 겹치지 않습니다. 실수 An과 소수점 아래 n번째 자리가 반드시 다르니까요.

위 사례를 보면 객실이 무한히 많아도 어떤 경우에는 방이 반드시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칸토어는 이 방법으로 실수의 집합이 자연수의 집합보다 더 크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했습니다. 칸토어는 자연수 같이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무한한 집합을 가산 집합이라고 정의했고, 반대로 실수처럼 크기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집합을 불가산 집합이라고 불렀습니다.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는 개념은 당시 굉장히 파격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무한은 신의 전능을 나타내는 상징이었고, 여기에 한계(예를 들어 크기)가 있다는 주장은 신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칸토어를 공격했습니다.

푸앵카레의 추측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칸토어가 사용한 집합론의 허점을 공격했는데요. 당시는 집합론이 막 정립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군데군데 허점이 많았습니다. 허술한 공리 때문에 다양한 역설이 제기됐죠. 이런 논란은 후대의 수학자들이 집합론의 공리를 정교하게 정의하면서 대부분 해결됐습니다. 칸토어는 오늘날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집합론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빛으로 힐베르트 호텔을 짓다

최근 과학자들은 수학자들이 머릿속에서만 상상해본 힐베르트 호텔을 직접 실험으로 확인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국, 미국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최근 ‘양자 힐베르트 호텔’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DOI:10.1103/PhysRevLett.115.160505). 그들이 힐베르트 호텔을 만든 곳은 소용돌이 빛(optical vortex)
속입니다.

광자가 마치 꽈배기 모양으로 돌며 진행하는 빛을 소용돌이 빛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빛을 나선 형태로 꼬는 것은 아닙니다.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 파동인 빛의 위상을 조절해 정면에서 보면 마치 꼬이며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때 광자도 마치 진행 방향 축을 중심으로 도는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각 운동량도 가집니다. 실제 회전하는 물체와 다른 점은 광자의 각운동량이 띄엄띄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값의 정수배만큼의 운동량을 가집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양자화됐다고 부릅니다. 운동량이 가장 낮은 상태부터 차례로 숫자를 붙여 구분하는데, 이 숫자를 양자수라고 합니다.

양자화는 힐베르트 호텔과 구조가 비슷합니다. 호텔에 자연수로 이름이 붙은 객실이 있는 것처럼, 양자역학에는 정수로 된 양자수가 있습니다. 손님이 그 방에서 묵는 것처럼, 광자도 양자수 하나를 차지합니다. 양자화는 무한한 방의 개념도 만족합니다.

이론적으로 각운동량의 양자수는 무한대로 커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난관이 등장합니다. 힐베르트 호텔을 그대로 구현하려면 방이 무한히 많을 뿐만 아니라 방안에도 무한히 많은 손님이 묵고 있어야 합니다. 양자화된 각운동량이 이 조건을 만족하려면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광자로 양자수를
무한대로 채워야겠죠. 무한대의 에너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연구팀은 1~3 까지의 양자수로 실험했습니다.

양자수가 줄어도 아직 난관이 남아있습니다. 호텔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면, 친절한 벨보이가 n번째 객실에 묵고 있는 손님을 2n번째 객실로 옮겨줘야 하는데요. 이때 ‘무사히’ 이동시키는 게 양자역학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각운동량을 늘려 광자가 차지하는 양자수를 바꿔주면 해결될 것 같지만 광자의 각운동량은 중첩돼 있기 때문에(관측하기 전까지는 각운동량이 확률로존재함) 이를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며 “만약 이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방을 옮길 때 손님의 짐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방 옮기기’ 성공했지만, 진정한 힐베르트 호텔은 아냐

이번에 논문을 발표한 국제공동연구팀은 각운동량의 양자수를 늘리고도 중첩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제시했고, 실제로 소용돌이 빛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팀이 소용돌이 빛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사용한 것도 소용돌이 빛의 각운동량이 다른 양자화된 상태, 예컨데 전자의 준위에 비해 양자수를 조절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실험이 진정 힐베르트 호텔을 구현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힐베르트가 힐베르트 호텔을 생각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무한의 역설을 소개하기 위함이지, 호텔방의 손님을 이동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번 연구는 둘 중 후자에 방점이 찍힌 연구예요.

방정호 한양대 연구조교수는 “무한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려고 한 도전정신은 높이 평가한다”며 “다만 아직까지는 기술이 다른 곳에 응용될 여지는 낮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김이 새지만 어쩌겠어요. 무한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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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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