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의 고향을 제목으로 내세운 미국드라마 ‘고담’은 온갖 범죄가 난무하는 도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축은 고담의 검은 세력에 맞서는 형사, 제임스 고든입니다. 풍선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고담의 시민들은 모두 풍선맨을 지지하고 응원하기까지 합니다. 제임스 고든은 홀로 풍선맨을 찾기 위한 수사를 벌입니다.
사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범인은 여기저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고, 자신의 죄도 쉽게 인정했기 때문이죠. 짚어보고 싶은 건 살인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쓰인 ‘풍선’입니다. 풍선을 파는 상인으로 둔갑한 풍선맨은 살인대상의 손이나 발에 수갑과 같은 도구를 채웁니다. 여기에 연결돼 있는 풍선에 의해 살인대상은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가 버리죠. 아무리 크기가 큰 풍선이라도 건장한 체격의 남성을 하늘로 띄울 수 있을까요.
라디오존데용 풍선이라면?
사람이 탈 수 있는 풍선이 있기는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열기구입니다. 열기구는 풍선 안의 공기에 의한 부력과 그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중력이 평형을 이루면서, 기구가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도록 합니다. 수직으로 이동시키려면 열기구 안의 버너를 이용해 공기를 뜨겁게 만들면 됩니다. 뜨거워진 공기 입자들은 움직임이 활발해져 부력이 중력보다 세지고, 위로 올라갑니다. 반대로 공기의 온도를 낮추면 아래로 내릴 수도 있고요. 수평 방향 움직임은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이용합니다. 아무나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우리나라에서는 열기구를 운행하기 위해선 조종자 자격증을 따야 합니다. 만약 풍선맨이 피해자를 열기구에 실어 보냈다고 가정한다면, 계속해서 열을 주지 않는 이상 금방 하강해버리고 맙니다. 공기가 식어 부력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살인대상은 열기구에 실려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오겠죠.
목적이 조금 다른 대형풍선도 있습니다. 바로 라디오존데용 풍선입니다. 라디오존데는 지상에서 고도 30km까지 고도별 기압과 기온, 습도, 풍향, 풍속 등을 관측하는데 쓰는 작은 기구입니다. 이런 풍선은 보통 비중이 작은 헬륨(He)기체를 이용합니다. 공기의 비중을 1이라고 했을 때, 헬륨은 0.138이니까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죠. 드라마에서 나온 헬륨 풍선은 지름이 사람의 키만한 풍선이었습니다. 1.8m 정도라고 해두죠. 헬륨 풍선 역시 부력에 의해 위로 올라갑니다. 부력을 구하는 공식은 ‘밀도의 차이(Δρ)x부피x중력가속도(g)’입니다. 헬륨 풍선에 적용해 볼까요.
사람 띄울 수 있다. ‘이것’만 있다면…
성인 남성의 무게를 70kg이라 가정하면 ‘70x중력가속도 = (공기의 밀도-헬륨의 밀도)x필요한 부피x중력가속도’ 라는 식으로 풍선의 부피를 구할 수 있습니다. 공기의 밀도(1.2kg/m3)에 비해 헬륨의 밀도는 0.1786kg/m3로 무시할 만큼 작은 값이기때문에 Δρ에는 공기의 밀도를 대입합니다. 이를 대입해 계산해 보면 필요한 부피는 약 58.3m3가 됩니다. 풍선은 구형이니 부피는 3/4πr3이 되고, 이 값이 58.3이 되는 반지름r은 약 2.4m입니다. 지름은 4.8m 정도가 되겠네요.
드라마에 나온 풍선보다 지름이 2.6배, 부피가 20배 이상 크지만 여기까지는 그래도 가능하다고 봅시다. 가장 비현실적인 건 가격입니다. 최근 5년간 헬륨 부족 현상으로 전세계가 헬륨난에 시달렸습니다(헬륨은 자기공명영상(MRI)이나 반도체 공정에도 사용됩니다). 2007년 1L에 3달러 정도였던 헬륨은 2010년 1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1달러를 1000원으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58.3m3의 부피를 감당하려면 억대의 자본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드라마에선 네명의 악당을 죽이기 위해 네 개의 헬륨 풍선을 준비했죠. 아무리 정의의 사도라 해도 수억의 돈을 써가며 악당을 죽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그 돈이면 훨씬 더 쉽게…, 아닙니다. 오늘의 추리파일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