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무꾼이 받을 상처와 배신감을 떠올린다. 그만큼 믿었던 이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은 그렇게 소중히 여길 만큼 어렵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 도끼가 분명히 내 발등을 찍을 거야!
어떤 이를 믿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 즉 ‘대인 신뢰(interpersonal trust)’의 과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ISBN-10: 0470129115). 논리적인 과정이라면 ‘중립’ 상태에서 신뢰할만한 단서들(인성, 능력 등)을 오밀조밀수집한 뒤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고 그 다음에 단서를 모은다. 다행히도 대개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단 어떤 이를 믿고 난뒤에, 그 사람을 지켜보면서 정말로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판단한다고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이들을 믿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허술한 과정의 장점은 다양
한 관계를 맺기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중립적인 입장보다는 긍정적으로 살짝 열려있는 마음을 가지는 게 낯선 인간과도 쉽게 친해지는 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외톨이가 되는 것보다, 상처와 손해를 입을지라도 사람들을 믿고 다가가는 게 이득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대인 신뢰 과정이 재미있는 건, ‘일단 믿고 보자’ 후에는 ‘지켜보고 있다’ 는 비판적인 모드로 바뀐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열린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관계가 진행될수록 부정적인 정보들의 힘이 훨씬 커진다. 관계 초기를 지나면 조금만 부정적인 증거가 나와도 상대를 가차 없이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대인신뢰 형성 과정은 일단 믿을 만한 도끼를 잔뜩 고른 뒤에, 도끼의 부정적인 면을 유심히 살피며 발등을 찍을 것 같은 도끼를 하나씩 솎아내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겠다.
믿을 만한 도끼를 잔뜩 고르고 시작하자
처음부터 깐깐하게 사람을 고르는 것은 배신 당할 위험을 줄이는 안정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괜찮은 사람을 내칠 확률이 높으며 관계의 다양성도 떨어진다. 사실 관계 초기에 엄격하려고 해봤자 정보 자체가 제한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고, 관계가 진행되면서 엄격해지는 게 전체적으로 더 낫다. 일단 믿고 나면 정리를 현명하게 하는 게 중요해진다. 부정적인 정보에 집중하면서도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쁜 점 말고 좋은 점들도 상기해보고, 나또한 상대에게 부족함이 많은 상대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는 건 아니다. 개인차가 존재한다. 일례로 불확실성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나 위험에 민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낯선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한다(J Pers SocPsychol. 2014 Oct;107(4):719-35.).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낯선 인간이라는 어마어마한 불확실성이 반가울 리가 없을 것이다.
관계에 소극적인 성향은 소득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10년 후 소득이 떨어진다는 연구가 있다(J Pers SocPsychol. 2016 Jan;110(1):116-32). 관계를 맺고 유지하
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회사일 등에서 중요한 협력을 어려워하는 것이 소득저하의 원인으로 꼽혔다. 또 행복에 관한 연구를 보면 결국 행복은 좋은 관계에서 온다. 때문에 사람에 대해 너그럽고 열린 마음을 갖는게 장기적으로는 더 좋지 않을까 싶다.
필자도 지나치게 신중했거나 높은 기준을 들이밀며 ‘네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나의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보렴’ 모드였을 때는(내 친구라면 이 정도는 돼야! OO하지 않은 걸 보니 나쁜 사람인 게 분명
해! 등) 좋은 사람들도 다 내치고 뒤늦게 후회를 했다.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