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칼텍) 행성과학지질학과 콘스탄틴 배티진 교수와 마이클 브라운 교수는 태양계에 9번째 행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천문학 저널’에 발표했다(doi:10.3847/0004-6256/151/2/22). 이들은 카이퍼 벨트에 있는 소천체 6개의 궤도를 보고 행성의 존재를 확신했다고 밝혔다. 태양계 9번째 행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10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는 성공한걸까. 연구진이 행성탐사에 사용한 방법은 과거에 사용했던 세 가지 방법과 다르다. 여기서부터 출발해보자.
태양계 행성 찾는 세 가지 방법
밤하늘은 함께 움직인다. 매일 밤 별들은 북극성을 중심에 놓고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며칠, 몇 달 밤을 관찰하면 별이 매일 다른 위치에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구의 공전 때문에 별들은 천구라는 벽에 붙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한 방향으로 함께 움직인다. 그런데 여기서 ‘튀는’ 천체가 있다. 무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철새처럼 혼자 다른 방향으로 가는 천체들. 눈썰미 좋은 조상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름을 붙여줬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라고.
인류가 태양계 행성을 찾았던 첫 번째 방법은 ‘맨눈으로 밤하늘 관찰하기’였다. 여타반짝이는 불빛들과 달리 움직이는 다섯 행성을 이미 그리스 시대 이전에 찾았다. 일곱 번째 행성인 천왕성부터는 너무 어두워 맨눈으로 찾을 수 없었다. 망원경이 개발된 이후에나 발견할 수 있었다. 1781년 독일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쌍성을 관찰하다 우연히 천왕성을 찾았다. 행성을 찾은 두 번째 방법은 ‘망원경으로 관찰하다 우연히 발견하기’였다.
세 번째 방법은 조금 복잡해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천왕성을 발견했을 당시는 ‘섭동 이론’이 정립되던 시기다. 이전까지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행성과 위성의 궤도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화성의 궤도를 구할 땐 태양의 중력만 고려했다. 지구나 목성 등 주변 행성과 주고받는 중력은 무시했다. 오직 ‘두 물체’ 사이의 중력만 계산한 것이다. 달의 궤도를 구할 땐 태양을 무시하고 지구의 중력만 생각했다. 그렇게 계산해도 얼추 맞았다.
하지만 좀 더 계산을 정교하게 할 필요가 생겼다. 1700~1800년대는 유럽인들이 대양으로 뻗어나가던 시기였다. 망망대해에서 항해사들은 달을 보고 위치를 계산했는데, 오차가 있었다. 실제 달의 궤도엔 태양의 중력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줄타기를 하는 재주꾼이 좌우로 휘청거리듯,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며 태양의 영향을 받아 궤도가 조금씩 변한다. 이를 섭동이라고 한다. 이제 지구·달·태양, 세 개 이상의 물체가 주고받는 힘을 계산해야 했다. 수학적으로는 3체 문제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당대 유럽의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총출동했다. 레온하르트 오일러,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시메옹 드니 푸아송,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등이 3체 문제를 풀기 위해 애를 썼다. 일반적인 해법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지만, 특수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쓸 수 있는 섭동의 미분방정식이 등장했다. 천왕성이 발견되던 바로 그 시대에 말이다. 실제 천왕성은 태양의 중력 외에도 다른 행성의 영향을 받아 궤도가 미세하게 변했다.
그런데 천왕성의 섭동을 관측한 결과는 수학자들의 이론값과 달랐다. 계산이 틀렸든, 관측하지 못한 무언가가 섭동에 영향을 미쳤든 둘 중 하나였다. 1846년 프랑스 수학자 위르뱅 르베리에는 천왕성의 섭동 관측값을 만족시킬 새로운 행성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 위치까지 구체적으로 예측했다. 르베리에의 발표를 듣고 독일의 요한 갈레는 관측에 나섰다. 그리고 예측한 위치 바로 그 곳에서 해왕성을 발견했다. 행성을 찾은 세 번째 방법은 ‘기존 행성의 궤도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기’였다.
미지의 행성 X
앉은 자리에서 계산을 통해 해왕성을 예측한 수학자들은 기가 살았다. 이런 식으로 찾으면 새로운 행성을 또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해왕성의 궤도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즐겁게도(?) 섭동 관측값이 이론과 일치하지 않았다. 미국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퍼시벌 로웰은 르베리에의 방법을 본 따 “해왕성 너머에 또 다른 행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1906년 이 미지의 아홉 번째 행성에 ‘행성 X’라는 이름도 붙였다. 자신의 이름을 딴 로웰천문대에서 행성 X가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다. 로웰이 방대한 기록을 남기고 1916년 사망한 뒤에도 행성 X 탐사 프로젝트는 이어졌다. 14년 뒤 24세의 클라이드 톰보가 로웰의 자료를 바탕으로 명왕성을 발견했다.
얼핏 보기에 명왕성은 해왕성과 같은 방법으로 찾은 듯하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로웰의 계산은 틀렸다. 명왕성은 질량이 너무 작아 해왕성의 궤도에 섭동을 일으키지 못한다. 계산이 틀렸는데도 찾을 수 있었던 건 로웰이 밤하늘을 샅샅이 뒤졌기 때문이다. 천왕성을 발견한 방법(망원경으로 우연히 찾기)과 같다. 명왕성은 나중에 행성의 반열에 끼지 못하고 퇴출당한다.
그럼 진짜 행성 X는 어디 있는 걸까. 여전히 해왕성의 궤도는 이해하기 힘들게 섭동하는데 말이다. 명왕성이 아니더라도 행성 X는 필요했다. 이 의문은 한참 뒤인 1980년대에 풀렸다. 우주탐사선 파이어니어 10,11호, 보이저 1,2호가 천왕성과 해왕성을 지나며 정보를 보내왔는데, 두 행성의 실제 질량이 지구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최대 1% 작았던 것이다. 수정된 질량으로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를 계산하니 모순이 해결됐다. 이로써 미지의 행성 X는 천문학계에서 버린 패가 됐다. 한동안은.
다시 고개 든 행성 X
2003년 해왕성 너머에서 명왕성보다 조금 작은 왜행성 ‘세드나’가 발견됐다. 세드나는 발견 초기부터 천문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궤도가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다. 세드나의 궤도는 근일점(태양과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이 76AU(1AU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장반경(타원에서 긴 축의 절반)이 480AU로 매우 긴 타원형을 그린다. 태양계 초기생성과정에 참여했다면 생성되기 힘든 궤도를 가진 천체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행성과학그룹 책임연구원은 “기존에 해왕성 바깥에서 발견한 천체들은 해왕성의 중력 영향을 받아 궤도가 정해졌는데, 세드나는 예외”라면서 “세드나는 태양계가 형성된 뒤 오르트 구름에서 태양계 내부로 들어와 붙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르트 구름은 태양으로부터 약 1000~10만AU 떨어진 곳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혜성의 구름이다.
이 세드나가 바로 ‘행성 X’ 가능성을 부활시킨 주인공이다. 세드나를 필두로 근일점이 30AU(해왕성 궤도)보다 크고 장반경이 150AU보다 큰 천체가 이후 몇 개 더 발견됐다. 세드나를 발견한 마이클 브라운 교수는 태양계 최외곽을 움직이는 이 기이한 천체들을 ‘세드나류 천체(Sedna-like objects)’로 묶어 부른다.
마이클 브라운 교수팀은 이 천체들의 ‘근일점이각’에 주목했다. 근일점이각은 궤도에서 상승점(천체궤도가 황도면과 만나는 점 중 하나)과 근일점이 이루는 각도를 말한다. 관측 결과 세드나류 천체 6개(세드나, 2004 VN112, 2007 TG422, 2010 GB174, 2012 VP113, 2013 RF98)의 근일점이각이 하나같이 318° 부근에 몰려있었다. 게다가 상승점경도(춘분점에서 상승점까지 이르는 각도)는 113°를 중심으로 몰려있었다. 논문에는 “근일점이각과 상승점경도가 모두 우연히 같기는 힘들다”고 나와 있다. 공 6개를 각각 실에 묶어 돌리는데, 모두 비슷한 각도로 움직이는 셈이다. 연구팀은 칼텍 홈페이지를 통해 “시뮬레이션 결과 궤도가 이렇게 우연히 겹칠 확률은 0.007%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세드나류 천체들은 해왕성 중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모두 한 방향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려면 이들의 궤도에 영향을 주는 다른 중력원이 있어야 한다. 가능성은 여러 가지다. 아직 관측되진 않았지만, 세드나 무리의 궤도 반대편에서 돌고 있는 천체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손을 맞잡고 회전하는 두 사람처럼, 두 천체 무리가 서로 중력을 주고받아 궤도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브라운 교수팀은 세드나 무리의 반대편에서 중력상쇄를 일으키는 천체를 단 하나로 가정했다. 그렇게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니 공전주기 2만 년에 지구의 10배 크기인 ‘아홉 번째 행성’이 나왔다. 이 가정은 말 그대로 가정이다. 최 책임연구원은 “현재로선 세드나 무리 반대편에 있는 천체가 두 개인지 세 개인지도 알 수 없다”며 “그 모든 계산을 다 해보기 전까진 새로운 행성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운 좋게 이 가정이 맞아서 행성 X가 예측한 궤도에 있다고 해도, 관측으로 찾는 과정은 해왕성 때와 비교할 수도 없이 어렵다. 최 책임연구원은 ‘위치’와 ‘궤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해왕성은 르베리에가 천구상의 위치를 비교적 정확히 계산한 덕분에 관측으로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브라운 교수팀은 행성의 위치가 아닌 궤도를 예측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해왕성이나 명왕성보다 몇 배나 큰 궤도를요. 망원경으로 보고 일일이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브라운 교수는 1월 20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아홉 번째 행성을 찾는 일에 착수했다”면서 “늦어도 5년 안에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존과 다른 네 번째 방법, ‘태양계 최외각 천체의 궤도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기’가 성공할 수 있을까. 혹시 모르지 않는가. 명왕성처럼 운 좋게 찾을 수도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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