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대는 거대한 공룡의 시대지만, 하늘을 나는 익룡중에서도 공룡만 한 덩치를 자랑하는 종이 있었다. 바로 케찰코아틀루스다. 날개 너비는 약 10m, 키는 거의 5m나 되는 하늘의 거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파충류가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미국 텍사스 주에는 7000만 년 전에서 6650만 년 전 사이에 형성된, 후기 백악기 지층인 자벨리나층(Javelina Formation)이 있다. 1971년 미국 텍사스대지질학과의 대학원생이었던 더글러스로슨은 이 지층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감귤만 한 크기의 뼈 화석 하나가 사암층언덕에 박혀 있었다. 거대한 동물의 손목뼈였다. 로슨은 이 뼈가 당연히 공룡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발굴해보니, 놀랍게도 날개를 이루는 긴 손가락뼈가 붙어 있었다. 뼈의 주인은 익룡이었다. 로슨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과학계에 알려진 익룡의 손목뼈는 건포도나 호두만 한 크기였다. 그가 발견한 것은 초대형 익룡이었다!
그 후 로슨은 자벨리나층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이 거대한 익룡의 뼈화석들을 추가로 발굴했다. 그리고는 4년 동안 이 익룡을 연구하고 복원했다. 로슨이 복원한 익룡은 날개 너비가 무려 F-16 전투기만 했다. 목도 길고 가늘었는데, 얼마나 길었는지 날다 땅 위에 내려앉으면 기린(물론 당시엔 기린이 살지 않았지만)과 똑바로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였다. 로슨은 이 날짐승에게 날개 달린 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즈텍의 신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의 이름을 따서 ‘케찰코아틀루스’라는 학명을 붙여줬다. 케찰코아틀루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거대한 익룡이자,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날짐승이었다.
목이 길어 기쁜 익룡이여
케찰코아틀루스의 기나긴 목은 다른 익룡에게서 볼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다. 익룡은 대체로 머리가 큰데, 큰 머리를 지탱하기 위해 대부분 목도 짧다. 하지만 케찰코아틀루스는 큰 머리와 어울리지 않게 길고 가는 목을 가졌다. 이렇게 가냘픈 목으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녔을까.
비밀은 목뼈에 있다. 케찰코아틀루스의 목은 다른 익룡에 비해 확실히 길지만, 목뼈의 개수는 다른 익룡과 같다(익룡의 목뼈는 총 9개). 대신 각각의 목뼈가 길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목은 생각보다 유연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마치 낚시꾼이 뻣뻣한 낚싯대를 이용해 월척을 낚아 올리는 듯 케찰코아틀루스도 뻣뻣하기 그지없는 목을 이용해 거대한 머리를 지탱 할 수 있었다.
케찰코아틀루스는 왜 이렇게 긴 목을 가지게 됐을까. 로슨은 죽은 공룡의 몸뚱이를 뜯어먹는 데 적응한 결과라고 추정했다. 거대한 공룡의 사체 속에 주둥이를 깊숙이 넣어 고기를 뜯어먹으려면 긴 목이 유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케찰코아틀루스의 머리 위에는 뼈로 된볏이 있기 때문에 사체 속에 머리를 파묻어가며 살점을 뜯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또 동물의 사체를 즐겨 먹었다면, 오늘날 대머리독수리처럼 긴 날개를 이용해 먼거리를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케찰코아틀루스는 몸에 비해 날개가 상대적으로 짧으므로, 먼 거리를 날아다니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81년 미국 텍사스대의 완 랭스턴 주니어 교수는 케찰코아틀루스가 긴 목과 뾰족한 주둥이로 진흙 펄을 파헤쳐서 그 속에 사는 작은 무척추동물을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198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의 레프 네소프 박사는 케찰코아틀루스가 바다나 호수 위를 날아다니며 긴 목을 이용해 고개를 깊숙이 숙여서 물고기를 낚아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냥방법은 긴 목이 유연해야 가능한데, 케찰코아틀루스의 목은 유연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근의 과학자들은 케찰코아틀루스가 오늘날의 학처럼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땅 위에서 작은 동물을 찾아 잡아먹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케찰코아틀루스는 날짐승임에도 긴 다리를 가졌는데, 이런 긴 다리는 땅 위를 빠른 속도로 걸어 다니는 데 유용했다. 덩달아 키도 커졌기 때문에, 땅 위를 돌아다니는 먹이를 집어먹기 위해 목이 길어져야 했다.

초대형 익룡들의 활기찬 비상
초대형 익룡 중에 케찰코아틀루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루마니아의 하체고프테릭스와 요르단의 아람보우르기아니아도 케찰코아틀루스와 몸집이 비슷했다. 이 거대한 익룡들은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우선 뼈가 비행에 적합했다. 케찰코아틀루스를 포함한 모든 익룡은 뼛속이 비어 있다. 익룡이 살아 있을 때는 뼛속이 공기 주머니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공기 주머니는 몸무게를 최대한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산소가 희박한 높은 하늘로 날아오를 때 효과적으로 숨쉬기 위해 이 공기 주머니에 들어 있는 산소를 이용했다. 마치 오늘날 새의 기낭처럼 말이다.
하지만 공기 주머니로 채워진 뼈만으로는 거대한 몸을 하늘로 들어올리기 힘들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케찰코아틀루스와 같은 대형 익룡들의 몸무게를 추산했는데, 최소 200kg에서 최대 500kg의 값이 나왔다. 기린의 평균 몸무게 약 1200kg보다는 가볍지만, 날갯짓을 하거나 뒷다리로 뛰어서 날아오르기에는 무거운 수치다. 그래서 한동안 많은 과학자들은 이들이 절벽과 같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활공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2008년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생체역학자 마이클 하비브 박사는 익룡의 윗팔뼈가 다른 뼈 부위에 비해 내부 공간이 넓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뼛속의 비어 있는 공간이 넓을수록 뼈는 굵어지는데, 뼈가 굵어질수록 강한 힘에도 휘어지지 않고 끄떡없다. 이를 바탕으로 하비브는 익룡이 강한 윗팔뼈와 여기에 붙어 있는 강력한 근육을 이용해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음을 알아냈다. 하비브의 계산에 따르면 케찰코아틀루스가 이륙하는 시간은 0.59초로 1초가 채 안 걸렸으며, 이륙 속도는 초속 약 15m였다. 기린만 한 몸집으로 이렇게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동물은 오늘날 지구상 그 어디에도 없다.
작은 새 나라의 걸리버, 익룡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날아다니는 새는 왜 케찰코아틀루스처럼 커다랗게 진화하지 못할까. 오늘날 날아다니는 새 중 몸집이 가장 큰 것은 날개 너비가 약 3m인 유라시안검은독수리로, 덩치가 케찰코아틀루스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하비브는 이륙하는 방법 때문이라고 본다. 오늘날 새는 익룡과 달리 한 쌍의 뒷다리로만 걸어 다니며, 이륙을 할 때도 뒷다리 근육만을 이용해 땅을 박찬다. 하지만 몸집이 커질수록 땅을 박차는 데 필요한 근육도 많아져야 하고, 몸무게는 무거워진다. 무거워졌으니, 날기 위해서는 다시 더 크고 무거운 날개가 필요해진다.
하지만 익룡은 강한 앞다리 근육을 이용해 땅 위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이륙할 때나 하늘에서 날갯짓을 할 때도 앞다리 근육을 쓴다. 덕분에 익룡은 몸집이 커지더라도 근육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적게 늘어나고, 이륙이 어렵지 않다.

익룡과 새의 극단적인 몸집 차이는 이 두 생물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했다. 초대형 익룡이 등장한 백악기의 새들은 모두 몸집이 작았다. 이들은 물가에서 잠수를 하거나 나무 위에서 살며 열매나 씨앗을 먹었다. 반면 대형 익룡들은 해변이나 내륙을 어슬렁거리며 작은 동물을 잡아먹었다. 몸집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달랐기 때문에 이 둘은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백악기 때 새와 대형 익룡이 공존했다는 증거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우리나라 남해안에서도 거대한 익룡과 조그마한 새가 함께 호숫가 주변을 돌아다녔음을 보여주는 발자국 화석들이 발견됐다.
안타깝게도 이 날짐승들의 공존은 지금으로부터 약 6600만 년 전, 백악기 대멸종 사건으로 끝나버렸다. 익룡은 멸종해버렸고, 오늘날에는 새들이 그 뒤를 이어 하늘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익룡처럼 아주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진화했다. 하지만 새가 아무리 화려한 모습으로 진화해도 과거 익룡이 보여준 장엄함을 재현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날짐승들의 공존은 지금으로부터 약 6600만 년 전, 백악기 대멸종 사건으로 끝나버렸다. 익룡은 멸종해버렸고, 오늘날에는 새들이 그 뒤를 이어 하늘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익룡처럼 아주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진화했다. 하지만 새가 아무리 화려한 모습으로 진화해도 과거 익룡이 보여준 장엄함을 재현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