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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땅에 적응한 하늘의 파충류, 익룡

원시 익룡 디모르포돈의 전신골격. 짧고 둥근 머리와 길고 뻣뻣한 꼬리는 원시익룡의 특징이다. 아마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고 살았을 것이다.

먼저 기본적인 내용을 하나 짚고 가자. 익룡은 ‘공룡’이 아니다. 둘 다 괴상하게 생긴 외모를 가졌고 오래 전에 살았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공룡은 골반과 허벅지 뼈가 만나는 부위에 구멍이 있고, 익룡은 이 구멍이 없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둘을 서로 다른 동물로 분류한다.

익룡 화석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최초로 익룡 화석이 발견된 것은 18세기 중반, 독일에서다. 독일 남부의 졸른호펜 지방에는 석회암층이 넓게 분포해 있다. 이곳의 석회암은 우리나라의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까맣고 단단한 석회암과는 다르다. 푸르스름한 회색을 띠는데, 공기와 접촉하면 암석 내 황화철(FeS)이 산화되면서 노란색으로 변하고 층층이 얇게 뜯어진다. 마치 옆으로 쓰러진 거대한 책을 연상시키는 이 지역의 석회암은 기원전부터 건축 재료로 사용됐다. 바로 이곳에서 익룡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괴물 같은 동물 화석이 나왔다!

익룡 화석이 졸른호펜에서 처음 발견된 때는 정확하지 않다. 1767년에서 1784년 사이로 추정될 뿐이다. 이 화석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박물학자 코시모 콜리니다. 그는 얕고 따뜻한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석회암에서 화석이 발견됐다는 점에 착안해 익룡이 물과 뭍을 오가며 살았던 양서동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길게 발달한 익룡의 날개를 거대한 지느러미로 해석해 버렸다.

익룡이 하늘을 나는 파충류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은 1801년이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박물학자 조지 퀴비에는 익룡의 지느러미가 사실은 네 번째 손가락이 길어져 만들어진 날개였음을 알아냈다. 또한 익룡의 긴 네 번째 손가락과 몸통 사이에 얇은 피부막이 존재했음을 처음 확인했다. 익룡은 땅속에서 나온 지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었다.

콜리니와 퀴비에가 연구한 익룡은 까마귀만한 덩치의 프테로닥틸루스다. 프테로닥틸루스는 박쥐와 비슷한 날개와 짧은 꼬리, 새를 연상시키는 길쭉한 주둥이, 그리고 물고기와 비슷한 뾰족한 이빨을 가졌다. 마치 전설이나 신화에나 나올 법한 외모였다.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 중 이렇게 생긴 동물은 없다. 이들과 함께 발견되는 공룡과 해양파충류, 그리고 여러 화석생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프테로닥틸루스를 포함한 다양한 화석생물들을 처음 접한 17세기 말~18세기 초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생각을 할수 있게 됐다.

화석생물들이 자세히 연구되기 시작한 17세기 말 이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생물 종(種)이 영원불멸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의 유해가 발견됐다. 이는 오래 전에 살던 생물이 지구역사 중 어느 시기에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과학자들은 프테로닥틸루스를 포함한 화석생물을 통해 생물 종이 지구에서 멸종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과거에 여러 번의 멸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익룡의 발견은,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데 기여를 한 셈이다.
 
작은 파충류를 쫓는 디모르포돈의 상상도. 잘 발달된 발톱을 이용해 나무를 오르내리며 살았을 것이다.
 

고생물학 공주와 해변의 악마

영국의 남서부에 위치한 도싯 주에는 하얗거나 검은 두꺼운 퇴적암층들이 해안선을 따라 약 150km 뻗어 있다.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는 이곳의 암석은 얕고 따뜻한 바다에서 형성된 백악(白堊)과, 물살이 약한 지역에서 형성되는 이암이 대부분이다. 이 암석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양생물 또는 해안가 근처에 살았던 다양한 동물의 화석이 발견되는데, 대부분은 쥐라기 시대에 해당하는 1억9000만 년에서 1억4000만 년 전 사이의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이 해안가를 ‘쥐라기 해안(Jurassic coast)’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학술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는데, 이 해안가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초 이곳에서 화석을 찾던 한 여인의 공이 크다.

메리 애닝은 19세기 초 이 해안가를 돌며 화석을 발굴한 화석수집가임과 동시에 최초의 여성 고생물학자였다. 애닝은 쥐라기 해안에서 최초로 온전한 어룡 골격 화석과 수장룡 화석을 발견하는 등 다양한 화석을 발견하며 ‘고생물학 공주’라고 불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애닝은 남성 과학자들의 무시를 받았고 심지어는 지질학회의 회원도 될 수 없었다.

1828년 12월, 애닝은 쥐라기 해안에서 작은 익룡의 골격화석을 발견했다. 머리뼈와 척추가 거의 보존되지 않은 매우 불완전한 화석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과학계는 떠들썩했다. 애닝의 발견 이전에는 익룡 화석이 독일에서만 발견됐기 때문이다. 독일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익룡이 발견된다는 것을 애닝이 처음으로 보여줬다.

당시 과학자들은 애닝의 익룡이 독일에서 발견된 프테로닥틸루스와 같은 종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858년에 머리뼈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종류임이 밝혀졌다. 이 익룡은 프테로닥틸루스에 비해 주둥이가 짧았고 콧등이 동그랬다. 송곳니와 같은 길고 뾰족한 앞니와 작은 크기의 어금니를 가지고 있어서 ‘두 가지 모양의 이빨’이란 뜻의 디모르포돈이란 학명이 붙었다.

디모르포돈은 주둥이 모양만 프테로닥틸루스와 달랐던 것은 아니다. 짧은 꼬리를 가진 프테로닥틸루스와 달리 디모르포돈은 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꼬리는 30개의 척추 뼈로 이뤄졌지만 뼈가 서로 포개져 있어서 매우 뻣뻣했다. 디모르포돈은 아마도 이 뻣뻣한 꼬리를 배의 방향타처럼 사용해 하늘을 날면서 몸의 방향을 바꿨을 것이다. 공중에서 몸의 방향을 바꿀 줄 알아야 나뭇가지와 같은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고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

디모르포돈의 꼬리 끝에는 지느러미와 같은 얇은 피부장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석을 통해 확인된 것이 아니지만, 디모르포돈과 비슷한 익룡의 꼬리에서 비슷한 구조가 확인됐다. 괴상한 꼬리와 큰 머리를 달고 날아다니는 디모르포돈의 모습은 마치 작은 꼬마 악마 같았을 것이다.
졸른호펜 채석장에서발견된 진화한 익룡, 프테로닥틸루스는 머리가 몸통보다 크다.

놀라운 적응력 보여준 익룡

프테로닥틸루스와 디모르포돈은 둘 다 익룡이지만 꼬리 길이가 다르다. 프테로닥틸루스의 꼬리는 매우 짧고 디모르포돈은 길다(왼쪽 그림). 긴 꼬리는 비행을 할 때 몸의 방향을 돌리는 데 사용된다. 비행에 유용한데 왜 프테로닥틸루스의 꼬리는 짧을까?

디모르포돈은 프테로닥틸루스보다 4000만 년 먼저 산 원시 익룡이다. 디모르포돈과 같은 원시 익룡은 조상 파충류로부터 물려받은 긴 꼬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원시 익룡은 물려받은 긴 꼬리를 비행에 적합한 용도로 바꿨다. 하지만 이 길고 뻣뻣한 꼬리에는 문제가 있었다. 땅 위를 걸어 다닐 때 장애물이 됐다. 게다가 이들은 꼬리 밑과 뒷다리를 잇는 피부막이 존재했기 때문에 걸어 다니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일부 고생물학자들은 디모르포돈과 같은 원시 익룡들이 벼랑 끝이나 나무기둥 같이 수직인 곳에 발톱으로 매달려서 생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시 익룡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다.

반면 프테로닥틸루스는 꼬리가 짧아서 땅에 끌리지 않는다. 꼬리와 뒷다리를 잇는 피부막도 없고 다리가 길어서 땅 위를 잘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이들은 날개를 이루는 네 번째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세 손가락과 평평한 뒷발을 이용해 네 발로 걸었다. 1952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는 선명한 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돼 이를 증명했다. 또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익룡의 발자국이 많이 발견됐다. 요약하면, 익룡은 효과적으로 땅 위를 걷기 위해 꼬리를 포기했다.

혹시 꼬리가 긴 원시 익룡과 꼬리가 짧은 진화한 익룡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단계의 익룡은 없었을까. 2010년, 중국 랴오닝성에서 원시 익룡의 몸통과 진화한 익룡의 머리를 가진 새로운 익룡이 발견됐다. 고생물학자들은 이 익룡에 다윈의 이름을 딴 다위놉테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익룡은 쥐라기 시대에 살았는데, 디모르포돈처럼 꼬리가 길었고 뒷다리 사이에 피부막을 가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프테로닥틸루스처럼 주둥이가 길쭉했다. 두 종 사이의 특징을 지닌 것이다. 그런데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더 진화했다는 점이 미스터리였다. 원시 익룡이 땅으로 내려와 걷기 위해 꼬리가 짧아져서 진화한 익룡이 됐다면, 우선 몸통부터 프테로닥틸루스를 닮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먹이였다. 원시 익룡은 어느 날 벼랑 끝이나 나무기둥에서 내려와 땅 위에 있는 먹잇감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땅 위에 있는 먹이를 정확하게 쪼아먹을 수 있게끔 머리가 먼저 프테로닥틸루스처럼 족집게 모양으로 변했다. 다위놉테루스와 같은 중간 익룡들은 먹이를 먹기 위해 땅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것이고, 몸이 그에 맞춰 육상생활에 적합하게 진화했다.

어떻게 보면 익룡은 새로운 식사 메뉴를 시도하기 위해 머리를 바꿨고, 결국은 몸의 디자인까지 과감히 바꿨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익룡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의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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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대중을 위한 고생물학 자문단’ 독립연구원
  • 일러스트

    정재환, 동아사이언스
  • 에디터

    윤신영 기자
  • 자료출처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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