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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금속 유물에 숨결을 불어넣다

조곤조곤 풀어보는 문화재의 수수께끼 ➐



꼭 별이 흩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물을 조각조각 잘라 놓은 것 같은 섬세한 금속 조각이 단단한 진흙 안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경기도 화성에서 2014년 발굴된, 백제 초기(약 5세기)의 식리(신발)입니다. 금동으로 만든 것인데, 부식이 된 상태죠.” 권혁남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가 말했습니다. “금속이 강한 재료니까 금속 유물도 오래 갈 것 같죠? 절대 안 그래요. 금속도 변합니다.”

연약한 금속 유물, 세심한 보존처리 필요해

출토되는 금속 유물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은, 통념과 달리 금속이 대단히 불안정한 재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철기가 있습니다. 철기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금속 유물입니다. 칼, 갑옷, 신발 등 다양한 유물이 철로 만들어졌습니다. 한반도에서 나오는 금속 유물 중 대략 70~8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합니다.

그런데 출토되는 철기는 대부분 부식이 심합니다. 원래 철은 자연에서 대부분 산화철로 존재합니다. 그걸 인공적인 제련 과정을 통해 산소를 분리시키고, 철만 골라 도구를 만든 게 철기입니다. 무척 강하지만, 오랜 시간을 버티기에는 결코 강하지 않았습니다. 제련된 철이 화학적으로 더 안정된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산화철입니다. 학교 때 배우는 ‘칼(K)카(Ca)나(Na)마(Mg)알(Al)아(Zn)철(Fe)…’을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철은 전자를 내놓으려는 성질인 이온화경향이 꽤 큰 금속이며, 산화가 잘 일어납니다. 부식이 쉽게 되지요. 습기가 많은 땅속 환경은 이런 변화를 부추깁니다. 염분에 포함된 염소 이온은 철기를 팽창시키는 등, 부식을 더욱 가속화하기에 치명적입니다.

철기는 부식 양상이 특이합니다. 권 연구사가 X선으로 찍은 백제시대 칼의 내부를 보여 줬는데, 텅 빈 곳이 보였습니다. 철의 밀도가 낮은 부분입니다. 권 연구사는 “철기는 안에서부터 부식이 진행돼 바깥으로 터져 나온다”며 “바깥에서 부식이 일어나 겉이 가루가 되는 동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내부에서 부식이 일어난 경우, 유물이 부러져 원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철이 특히 취약하긴 하지만, 부식은 대부분의 금속 유물이 갖는 약점입니다. 권 연구사는 “금속 세계에서 부식에 자유로운 것은 귀금속으로 분류되는 금과 은, 일부 청동 정도”라며 “나머지 금속은 모두 안정된 자연 상태(산화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출토된 금속 유물을 보다 잘 보존할 방법은 없을까요. 다행히 부식을 최대한 늦추는 방법이 있습니다. 철의 경우, 부식을 가속화시키는 염소 이온을 제거하는(탈염) 방법을 씁니다. 용존산소가 없는 물에 수산화나트륨 등을 녹인 뒤 유물을 넣고 가열해 염소 이온을 제거합니다. 비교적 안정적인 청동 유물의 경우에도 겉에는 부식이 일어나 유물 표면에 ‘말라카이트’라는 푸른 산화물이 엷게 쌓이기도 합니다. 일명 ‘청동병’이라고 불리는 부식도 일어납니다. 청동병 같은 부식이 계속되면 유물이 겉에서부터 부식돼 가루가 됩니다. 이를 막고자 청동 유물은 벤조트리아졸이라는 약품과 에탄올을 섞어 담급니다. 유물 표면에 얇은 막이 생겨서 부식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가장 과학적인, 가장 세심한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는 다양한 전문가와 기기가 있어서 다양한 실험과 연구,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 주사전자현미경과 X선 회절분석기, CT 등의 장비가 있어 유물의 재질을 분석하기도 하고, 내부 구조를 열지 않고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앞서 부식된 철제 칼의 예에서처럼, 내부의 부식 여부를 부위별로 상세히 알아보기도 합니다.

권 연구사는 박물관에 가면 마음 편히 유물을 보지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청동 유물이 전시돼 있으면 먼저 그 아래에 혹시 가루가 떨어졌나 그것부터 눈이 간다니까요. 아무리 보존 처리를 잘 했다 해도 부식이 생길 수 있거든요. 가루가 떨어진 유물이 간혹 보이는데, 괜히 눈에 밟히곤 하죠.” 권 연구사에게, 금속은 차갑고 날카로우며 강한 재료일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공동기획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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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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