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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한-미 협력으로 중국발 초미세먼지 밝힌다

작년 3월 무렵, 갑작스런 초미세먼지의 습격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뿌연 대기오염물질이 연일 서울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중 40~80%가 중국에서 넘어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이었을 뿐, 실제로 얼마나 넘어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초미세먼지 습격사건을 겪은 뒤 한국과 미국의 과학자들은 조용히 연구에 착수했다.


서울 남산의 ‘N서울타워’ 4층엔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는다. 3층 전망대나 5층 식당과 달리, 4층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구역이다. 5월 28일,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특별한 대기질관측장비를 설치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4층에 가려면 5층에서 어두컴컴한 회전계단을 타고 빙글빙글 내려가야 했다. 오래된 성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남산 위 쪽방 연구실의 비밀

4층 한쪽 구석의 작은 쪽방을 열자 빼곡하게 들어찬 기상관측장비들이 보였다. 연구실은 딱 고시원 방 하나 크기였다. “열악하죠?” 함께 갔던 민경은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공학부 교수가 뒤에서 웃었다. N서울타워에서 이 작은 공간 빌리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여기에 수억 원짜리 장비들을 놓은 덕에 중요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해발고도 300m에 위치한 덕분에 한밤중에 잔류층에서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넘어오는 오염물질도 일부 측정할 수 있다.

잔류층(Residual Layer)
야간에 지표면에서 100m~1km 사이에 형성되는, 공기가 안정된 층. 오염물질이 야간에 잔류층으로 들어오면 다음날 낮까지 이동하지 않고 머무르게 된다.


이 ‘쪽방 연구실’에는 세계에 딱 한 대밖에 없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서 빌린 질산화물·오존 측정장비 ‘아놀드(ARNOLD)’가 있다. 민 교수는 “질산라디칼(NO3)과 오산화이질소(N2O5) 등 우리나라에서 기존에 측정하지 않던 반응중간생성물의 농도를 아놀드로 측정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초미세먼지와 오존이 생기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 교수의 연구는 ‘한-미 협력 국내 대기질 공동조사 캠페인(KORUS-AQ)’의 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국립환경과학원을 중심으로 지역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40여 개 연구팀, 그리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협력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동북아시아 일대의 대기오염원을 찾고, 초미세먼지 생성경로를 밝히는 게 목적이다. 본 연구는 내년 5월부터 6주간 진행된다. 올해는 5월 18일부터 4주간 예비 관측활동을 진행했다.

캠페인 기간에는 모든 장비와 인력이 총동원된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의 강력한 지원도 등에 업고 있다. 벌써 ‘지상의 위성’이라 불리는 원격측정장비들이 한국으로 들어왔고, 내년엔 최고급 장비들을 다룰 수 있는 연구인력과 ‘하늘 위의 연구실’인 대형항공기 ‘DC-8’도 미국에서 들어온다. DC-8은 한·중 경계인 황해 위를 비행하며 물질 농도를 측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소형항공기 두 대와 기상관측선 ‘기상1호’가 관측에 참여할 예정이다. 2019년 발사될 환경위성은 여기에 힘을 더한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이렇게 단일 연구에 ‘화력’을 집중하는 이유가 뭘까. 주된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일대는 세계에서 초미세먼지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인데, 어디서 얼마나 발생해 어디로 이동하는지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오염물질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데, 정작 최대 배출원으로 추정되는 중국에선 대기질 정보를 꽁꽁 숨겨두고 보여주지 않는다. 민 교수는 “내년엔 항공기나 선박에 아놀드를 실어 황해에서 오염물질을 측정할 계획”이라며 “중국에서 어떤 오염물질이 넘어오는지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대륙에서 편서풍을 타고 에어로졸이 한반도로 넘어오는 모습.
여기에 초미세먼지를 만드는 오염물질도 상당량 포함돼 있다.

 
◀ 연세대 옥상에 있는 에어로넷(➊)과 판도라(➋). 에어로넷도 초미세먼지의 높이별 농도를 측정하는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전국에 9대가 있다.


초미세먼지 원료, 아놀드와 판도라가 잡는다

이번 캠페인은 중국발 오염원을 찾는 것 외에도 또 하나 중요한 목적이 있다. 초미세먼지가 어떤 반응을 거쳐 생성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실제론 매우 복잡하지만, 단순화해서 A→B→C 세 단계 반응을 거친다고 하자. 그동안은 주로 결과물인 C(초미세먼지나 오존)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를 해왔다. 이번엔 A와 B에도 초점을 둔다.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나 이산화황(SO2), 이산화질소(NO2) 등이 여기 해당한다. 연구가 잘 된다면 C가 생성되기 전에 A나 B의 농도만 보고도 미리 예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연구가 어렵다. 고체인 초미세먼지와 달리 이들 전구체는 기체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크기도 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 수준인 초미세먼지에 비해 1000분의 1 수준으로 작다. 반응경로가 복잡해 수백 가지 성분을 동시에 측정해야 한다. 대규모 인력과 장비가 붙어야 가능한 일이다. NASA의 새로운 원격측정장비 ‘판도라(왼쪽 아래 사진)’도 이런 기체 물질을 측정하기 위해 참여했다. 전 세계에 20대밖에 없는 최고급 장비인데, 그 중 6대가 한국에 배치됐다.

판도라를 만나러 6월 3일 서울 연세대를 방문했다. 건물 옥상에 설치된 판도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죽은 듯이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동행한 김우경 연세대 대기과학과 연구원에게 물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판도라가 기계음을 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권총처럼 생긴 판도라는 사방으로 총구(?)를 돌리며 관측을 하기 시작했다.

판도라는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자동으로 움직이며 대기 중 물질농도를 측정한다. 기체는 각각의 성분별로 고유진동수를 가지고 있어 특정 파장의 빛만 흡수하는데, 판도라는 어떤 파장의 빛이 사라지는지 살펴 대기 중 기체성분별 농도를 파악한다.

각도를 바꿔가며 높이별로도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김준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판도라는 작동원리와 성능이 환경위성과 비슷해 ‘땅 위의 위성’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장비 주위뿐 아니라 대기 전체의 질을 측정한다는 점에서 실제 위성과 역할이 비슷하다. 판도라를 움직이는 건 전자기기로 가득 찬 노란 박스인데, 항상 온도를 20℃로 맞춰줘야 한다. 박스를 열면 온도가 달라져 고장 나므로 ‘절대 열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판도라’가 됐다. 판도라가 오기 전에는 에어로넷(왼쪽 위 사진)이 유일한 원격측정장비였는데, 고체만 측정 가능한 한계가 있었다. 이제 에어로넷과 판도라가 짝을 이뤄 기체와 고체 모두를 측정한다.
 
하늘을 날며 대기질을 관측할 수 있는 NASA의 대형항공기 DC-8
 
초미세먼지 중 몇%가 중국 것인가

늘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사람을 보고 ‘바람 같다’고 한다. 바람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다. 서울 하늘에 초미세먼지가 가득하다고 해도, 중국산인지 북한산인지 남한산인지 가리려면 우선 ‘바람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역 간 협조가 필수적이다. 바람이 백령도-서울-강원도로 흐르고 있을 때, 세 곳에서 동시에 농도를 측정하면 서울에서 오염물질이 얼마나 생성됐는지 알 수 있다. 동시측정 장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치모델은 정확해진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40개 연구팀은 공동조사 기간 동안 매주 서울 홍릉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모여서 회의를 한다. 백령도와 제주도에서도 물 건너와 참석한다. 기자가 참관한 회의에선 활발하게 질문이 오고 갔다.

“5월 25일 제일모직 화재사건 기억하시죠? 남산 사이트에서는 피크가 나타났는데, KIST 사이트에서도 영향 있었나요?” “네 영향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초미세먼지 농도가 증가한 이유를 파악하려면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인지, 인근의 화재사건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 기계오차인지. 여러 관측소의 자료를 비교하면 원인을 찾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DC-8에는 각종 첨단장비가 실려있어 중국에서 날아오는 오염원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며 얻는 정보는 나중에 환경위성 운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이면 우리나라의 환경위성 ‘GEO-KOMPSAT-2’가 우주로 발사될 계획이다. 성공한다면 세계 첫 정지궤도 환경위성이다. 동북아시아 일대를 1시간에 한 번씩 촬영할 수 있다. 판도라처럼 기체·고체 모두 측정할 수 있는 센서가 설치돼 있어 중국에서 초미세먼지가 날아오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다. 서울 하늘의 초미세먼지 중 몇 %가 중국에서 왔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 되면 명백한 증거를 중국 코앞에 들이밀며 책임을 추궁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문제제기만 해서는 외교문제만 생기고 실익이 없을 수 있다. 민 교수는 “중국도 대기오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만큼, 기술적 대안을 함께 제시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중국 과학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단순화시킨 세 단계 반응에서, A와 B가 언제 어떻게 생기는지 정확히 알면 정책을 효율적으로 짤 수 있다. 그 순간을 위해, 지금도 수백 명의 대기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201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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