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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경주에서 만난 수중 고고학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완도선(1984), 달리도선(1995), 십이동파도선(2004), 태안선(2007) 등 총 13척의 고선박이 발견됐다. 이 중 신안선과 완도선은 중국 배로, 해외 무역 중 우리나라 해안에서 난파했다. 신기한 건 13척의 배 중에 11척이 고려시대 배라는 점이다. 통일신라 시대 배는 2012년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된 ‘영흥도선’이 유일하며, 조선시대 배는 2014년 태안 마도해역에서 발견된 마도4호선이 유일하다. 이 점은 학자들에게도 미스터리다. 다른 시대에 난파됐던 배도 비슷한 비율로 어딘가에 묻혀있는데 아직 다 찾지 못했다고 믿을 뿐이다.

배에서 발견된 기록이 도자기 역사 바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발견된 배 중 무려 5척이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영화 ‘명량’의 배경인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의 울돌목, 심청이가 공양미 300석을 위해 몸을 던진 황해도 인당수, 김포의 손돌목과 더불어 태안의 안흥량이 4대 험로 중 하나기 때문이다. 태조 4년에 쓰여진 조선왕조실록엔 ‘조선(漕船) 16척이 안흥량에 이르러 바람을 만나 침몰했다’는 기록도 있다.

태안 안흥량에서 발견된 유물은 유별나게 상태가 좋다. 이지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학예연구사는 “서해안의 갯벌 때문”이라고 말했다. 갯벌에 파묻힌 유물은 패각류를 포함해 여러 해양생물들이 접근할 수 없고, 유물을 산화시키는 산소도 차단돼 훼손이 적다. 이런 이유로 태안에서 발견된 유물중에는 역사적 가치가 큰 문화재가 많다.

2009년 태안 마도해역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고선박 마도1호선에서는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죽찰)가 발견됐다. ‘대장군 김순영 댁에 올림. 화물은 벼 6섬.’ 흐릿하게 남아있던 이 정보로 도자기의 역사가 바뀌었다. 마도 1호선이 고려시대 1208년에 출항한 배라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굴된 1208년의 도자기를 기준으로, 학자들은 도자기 역사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그 밖에도 한때 젓갈이었을 동물의 뼈는 당시 조상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다. 2010년, 마도2호선에서 발견된 온전한 매병(입구가 작고 아래가 잘록한 병) 2점에도 죽찰이 있었다. ‘중방 도장교 오문부에게 참기름을 보낸다’, ’오문부에게 꿀 단지를 보낸다’. 이 죽찰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학자들조차도 매병의 용도를 장식용이나 화병 정도라고 생각했다. 이 기록으로 꿀이나 참기름 등을 담아놓던 매병의 용도를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매병 2점은 보물로 지정됐다(보물 제1783호, 1784호).
 







수백 년 전의 역사가 처음으로 빛을 보는 순간

수중 고고학의 가장 첫 단계는 수중 발굴 작업이다. 현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14년에 발견된 ‘마도4호선’과 ‘대부도2호선’을 발굴 중이다. 이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6월 9일 ‘바닷속 경주’라는 태안 마도해역을 찾았다.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 아침 7시부터 태안 신진항에는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저녁 4~5시만 되면 바닷속은 이미 컴컴한 밤이라 시야 확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야 해요.” 이지희 연구사가 말했다. 신진항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5분 정도 나가니 저 멀리 정박돼 있는 누리안호가 보였다. 누리안호는 수중문화재 발굴선으로 290t 급의 대형선박이다. 누리안호에서 발굴하고 있는 ‘마도4호선’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첫 조선시대 고선박이다. 고대 문헌으로만 존재했던 조선시대 생활상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값진 기회다.

“팀장님~, 라이트 확인 좀 해주세요!” 8시 20분, 전문 잠수사들이 잠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발굴의 첫 단계는 잠수사가 아래로 내려가 선체에 가득 차 있는 흙을 빼내는 제토 작업이다. 잠수사의 잠수경에는 발굴에 필요한 라이트와 누리안호에 물속 상황을 중계할 카메라가 달려있다. 이 카메라로 작업을 지켜보다 특이사항이 발견되거나 선체가 노출되면 연구사가 직접 잠수해 들어간다. 이 날은 D3구역 (가로, 세로 1m 너비로 선체의 구역을 나눠놨다)의 선체가 얼굴을 드러냈다.

9시 30분, 이 연구사가 모눈종이와 줄자를 챙겨 물 속으로 들어갔다. 실측 작업을 위해서다. 실측 작업은 선박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측량작업이다. 최첨단 기술이 발전한 21세기에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걸까. “사이드 스캔 소너(측면주사음파탐지기)나 다중빔음향측심기와 같이 음파를 이용해 지형을 그리는 탐사 기법도 있어요. 하지만 선박은 단 몇 cm의 오차만 나도 배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사람이 측정하는 게 가장 정확하죠.” 홍광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팀장이 말했다. 아래로 내려간 이 연구사는 줄자로 선박의 크기를 재고 10:1의 비율로 축소해 모눈종이에 그렸다. 사람이 일일이 재다 보니 하루에 가로, 세로 1m도 실측하기가 어렵다. 마도4호선은 이제 외관만 완성한 상태다.

누리안호가 갑자기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11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릇의 일부가 보였다. 항구를 출발한 지 4시간 만이었다. 이날 발견된 유물은 조선 초기의 도자기인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15~16세기 약 200년간 제작되다가 임진왜란 때 맥이 끊겨 사라진 비운의 도자기다. 물속에서 건져 올려진 문화재를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신기하죠? 400년 동안 물에 갇혀있던 유물이 처음으로 육지의 빛을 보는 순간이에요.”
 

바닷속에서 약해진 문화재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렇게 발굴된 유물은 선체의 유물보관실에 보관되다가 태안보존센터로 옮겨져 복원된다. 보통 수중 문화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도자기다. 실제로도 수중 문화재 중 90% 이상이 도자기다. 그래서 ‘수중 문화재는 도자기’라는 인식이 강한데, 사실 수중에서 발굴되는 모든 게 유물이다. 볏짚도 유물이다.

철제 솥과 같은 금속 유물도 있고, 도자기를 포장하는 데 쓰였던 밧줄같은 유기 유물도 있다. 가라앉은 배 자체도 문화재다. 도자기는 물이나 공기와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훼손의 위험이 적지만, 금속이나 유기 유물은 상태가 안 좋을 확률이 높다. 특히 목재와 같은 유기 유물은 물속에 오래 있으면 분자 구조가 망가져 본래의 딱딱한 성질을 잃게 되기 때문에 보존처리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발굴 현장을 떠나 태안보존센터를 찾았다. 바닷속에서 머금은 소금기를 빼는 탈염 작업이 한창이었다. 동네 수영장만한 탈염처리장에서였다. 탈염 방법은 간단하다. 수조 안에 담수(수돗물, 이온수, 증류수)를 채워 넣고 유물을 넣은 뒤 주기적으로 염수치를 확인하며 소금기를 빼주면 된다. 도자기의 경우 한 달 정도 탈염을 하고, 선박의 경우엔 1년 가까이 한다. 큰 수조 옆에 주저앉아 안을 들여다 보니 큼직한 목재덩이가 들어있었다. “안쪽 절반은 마도2호선, 나머지는 마도3호선의 부재들이에요. 3개월에 한 번씩 전체 물을 갈아주면서 탈염작업을 하고 있죠. 목재 같은 유기유물은 다른 유물에 비해 소금을 더 많이 머금고 있어 더 오래 탈염작업을 해야 해요.” 김효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말했다. 마도2호선은 벌써 4년째 탈염작업 중이다.

김 연구사는 “탈염작업이 끝난 목재를 만져보면 마치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하다”며 “이런 유기 유물은 딱딱하게 만들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이 있던 자리에 화학 약품을 넣어주는 작업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약품은 폴리에틸렌글리콜(PEG)이다. 문화재를 얼른 복원하고 싶다고 한 번에 고농도의 PEG를 쓰면 안 된다. 처음엔 PEG 함유량을 10%, 일 년 뒤엔 20%, 또 일 년 뒤엔 30%. 이렇게 일 년에 10%씩 70%까지 올려야 목재가 뒤틀리지 않고 모양을 유지한다. 즉, 이 작업만 7년이 걸린다. 밧줄이나 볏짚 등 작은 유기 유물은 진공동결건조법으로 처리한다. 영하 40°C에서 빠르게 냉각시키면 유물 속의 물이 고체 상태가 되는데, 그 이후 진공동결건조기에 넣으면 목재 속의 수분이 진공상태에서 승화돼 순식간에 기체가 된다. 컵라면에 들어있는 건조 김치나 건조 계란도 이 방법을 사용한다. 이 방법을 쓰면 모양이 그대로 유지되면서도 1~2일이면 경화작업을 끝낼 수 있다.



20년 뒤를 내다보는 복원처리가 중요하다

발굴 현장을 보기 전까진 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물은 다 깨져있고 따개비가 무수히 달려있는 모습일 줄 알았다. 신안선 발굴이 배경인 다음 웹툰 ‘파인’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날 발굴한 도자기는 깨진 데 하나 없이 멀끔한 모습이었다. 김 연구사는 “도자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2004년 충남 보령군 원산도 인근 바다에서는 청자 파편만 1000여 점이 발견됐다. 이 파편들은 12~13세기, 고려가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청자라 많은 학자들이 아쉬워했71다. 이처럼 일부가 소실된 유물이 발견되면, 사라진 파편을 복원하는 건 연구사의 몫이다. 석고로 비어있는 부분을 만든 뒤 기존 유물과 유사한 색으로 칠하는 복원 작업이 필요하다. 정용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문화재를 다룰 땐 반드시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물질을 써야 한다”며 “현재 사용하는 복원 방법은 최선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최후의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형체가 복원되면 색맞춤 과정으로 넘어간다. 실제 복원 작업이 진행되는 복원실에서는 연구사들이 미대생들처럼 물감을 이리저리 섞으며 고심하고 있었다. 원형과 유사한 색을 만들어 칠하는 색맞춤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작업이 하도 신기해 가까이 가 유물을 살펴봤더니,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짜 티가 너무 났다. 정 학예연구사는 “복원이라고 하면 감쪽같이 원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거야 말로 가짜를 만드는 일”이라며 “문화재의 복원 수칙 1호는 가까이에서 봤을 때 일반인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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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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