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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혀를 중독시킨 붉은 마약

좋은 맛 똑똑한 맛 ➌ 매운 맛

아이들은 대개 매운맛을 싫어한다. 김치라면 손사래를 치고, 마늘이나 고추는 입에도 대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 김치찌개에 매운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혀를 길게 내밀며 물을 찾아도 결코 불닭을 포기하지 않는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매운맛을 좋아하는 걸까.


마약떡볶이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먼저 하나 짚고 가자. 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맛은 기본적으로 혀에 특정한 맛수용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5가지 기본 맛이다(감칠맛 대신 매운맛을 기본 맛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감칠맛이 5가지 기본 맛이다). 이외에 다른 맛은 기본 맛에 향기와 식감이 더해진 ‘합성된 맛’이다. 그런데 매운맛은 느끼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50~100여 개의 맛세포가 들어 있는 미뢰는 TRPV1이라고 하는 통각 수용체에 둘러싸여 있다. 이 통각 수용체에 매운맛 물질(고추라면 캡사이신, 마늘이라면 알리신)이 달라붙으면 통증을 느끼고 이것이 뇌에 전해져 매운맛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매운맛은 한마디로 혀가 아프다고 보내는 신호다. 그런데 왜 우리 뇌는 매운맛을 맛있다고 느끼는 걸까. 대구 신천시장에 가면 ‘마약떡볶이’라는 오래된 메뉴가 있다. 사람들이 맵다맵다 하면서도 마치 중독된듯 계속 이 떡볶이를 찾아서 붙은 이름이다. 과학적으로 알고 붙인 말은 아니지만 실제로 매운맛에는 이 두 단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마약’과 ‘중독’이다.

뇌가 매운맛을 느끼면 혀에 느껴진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엔돌핀이라는 물질을 내보낸다. 우리 뇌에 있다는 ‘천연 마약’이다. 이것은 마라토너들이 긴 거리를 달릴 때 느끼는 현상과 비슷하다. 오래 달리다보면 우리 몸은 고통을 느끼게 되고, 이 고통을 달래기 위해 뇌는 엔돌핀을 분비한다. 엔돌핀이 주는 쾌감에 빠져 마라토너는 계속 달리게 된다. 김선아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 교수(식품영양 전공)는 “우리의 혀 역시 더 많은 엔돌핀을 얻기 위해 계속 매운 음식을 찾게 되고, 더 매운 음식에까지 손을 돌리게 된다”고 말한다. ‘달콤한 통증’에 중독되는 셈이다.
 

 
청양고추는 점잖게 매운맛

그렇다면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민족일까. 자신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매운 청양고추는 세계의 다른 매운 고추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다. 매운맛의 단위를 스코빌(SHU)이라고 하는데 청양고추는 1만 정도다. 타바스코 고추가 그 10배인 10만에 이르고 인도의 나가 고추는 100만에 이른다. 인도에서는 이 고추로 수류탄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매운맛이 전해지는 시간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바네로(SHU로 10만~25만)라고 하는 멕시코 고추는 입에서 주로 맵다. 일단 위로 넘어가면 더 이상 매운맛이 강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양고추는 뱃속에 들어가도 계속 매운맛이 전해져 온다. 김선아 교수는 “고추 속에 들어 있는 매운맛의 성분 차이 때문”라고 말한다. 고추의 매운맛 물질은 캡사이신이지만 그것 외에도 캡사이시노이드에 포함되는, 비슷한 매운맛 물질이 꽤 많이 들어 있다. 이런 물질이 얼마나, 어떤 종류로 들어 있는지에 따라 매운맛의 성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시간이 좀 지나야 소화되는 매운맛 물질이 들어 있다면 음식을 먹은 뒤에도 오랫동안 매운맛을 느끼게 된다.

작은 고추가 정말 맵다

고추라는 식물이 열매에 매운 캡사이신을 넣은 것은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고추 안에 씨앗이 달린 태좌라는 부분이 가장 맵다. 만일 고추가 작게 자란다면 그만큼 캡사이신이 농축된다. 속담처럼 작은 고추가 매운 것이다. 지나치게 매운 음식을 먹으면 몸에 좋지 않지만 적당히 먹으면 항암이나 항염증에 효과가 있다. 권대영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전 원장은 “한국인의 유전자 변이를 연구하면 한국인이 왜 이렇게 매운맛을 좋아하는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1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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