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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의 과거


세계사 시간에 지겹게 외웠던 사실 하나.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뒤 도량형을 통일한다. 만일 길이를 재 는 자와 무게를 재는 저울이 지역과 시간에 따라 달라 진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다행히 자는 이제 정확하다. 길이, 즉 1 m는 빛이 아주 짧은 시간에 이동한 거리를 기준으로 정한다. 문제는 질량, 즉 1 kg이다. 금고 안에 들어 있는 국제 kg 원기가 기준인데, 실제 물체로 정하 다 보니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kg 원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889년이다. 물 1 L의 질량을 기준으로 백금 90%와 이리듐 10%의 합금으 로 만들었다. 그리고 형제인 6개의 복사본과 함께 바 로 국제도량형국(BIPM)에 있는 금고에 들어갔다. 126 년이 지난 오늘까지 kg 원기가 금고 바깥으로 나온 것 은 딱 3번이었다. 그것도 복사본 원기만 1946년, 1991 년, 그리고 2014년에 한번씩 나와 질량을 쟀다.
당황스 럽게도 형제들의 질량은 조금씩 차이가 났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무거워졌다. 비록 120년 동안 50마이크로 그램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표준을 정하는 과학자들 은 이 점이 늘 불만이었다. 미터처럼 결코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질량을 정의할 수는 없을까. 다른 단위는 모 두 자연상수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세련되게 변했는 데 kg만은 여전히 '올드'했다.
 
kg의 새로운 기준을 제정하기 위해 와트저울을 만들고 있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연구원들. 왼쪽부터 김진희, 김동민, 우병칠, 이광철 책임연구원이다. 오른쪽 사진은 1889년 처음 만들어져 프랑스에 보관중인 kg 원기.
kg의 미래

드디어 때가 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질량힘센터 의 이광철 책임연구원은 "1980년대 들어 플랑크 상수 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이론이 나왔는데, 질량이 플랑크 상수에 비례한다는 점을 이용하면 kg 원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데 꼭 기준을 바꿔야 할까. 120년에 기껏 50마이크로 그램 차이 아닌가. 보통 사람들은 불편한 게 없다고 해 도 과학자들은 그게 아니다. "킬로그램은 표준과학계 에서 하얀 재킷에 묻어있는 얼룩"이라는 말이 있다. 얼 룩을 벗겨 완벽을 추구하는 게 과학자의 본능이다. 더 구나 나노그램, 피코그램 등 아주 작은 질량을 재는 일 이 늘어나면서 부정확한 kg은 조금씩 문제를 키우고 있었다(다만 저울 업계는 최근까지도 기준 변경에 반 대했다고 한다).
플랑크 상수
독일 과학자 막스 플랑크가 1900년 만든 양자역학 상수 중 하나(96쪽 참조).

두 개의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1 kg을 정의하는 새로운 후보는 두 가지다. 먼저 쉬 운 것부터. 규소 원자를 하나하나 세서 정확히 1 kg에 해당하는 공을 만든다. 즉 '규소 원자 1조 개가 모인 게 1 kg'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현재 독일을 중심으로 한 국제컨소시엄에서 이런 공을 만들고 있는데, 동위 원소 하나 없이 깨끗한 1 kg짜리 공 하나는 무려 10억원이나 된다. 이를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데 반도체 기술과 원심분리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능 해졌다. 반도체를 만들듯이 규소 원자가 빈틈없이 규 칙적으로 배열된 공을 만들고, 이 중 무게가 조금 다른 동위원소는 원심분리 기술을 이용해 제거한다.
두 번째는 꽤 어렵다. 와트저울이라는 것을 사용하 는데 간단히 말하면 어떤 물체의 중력과 그 물체를 둘 러싼 전자기력을 똑같게 한 뒤 이 과정에서 플랑크 상 수를 이용해 1 kg이 정확히 얼마인지 정의한다. 이해하 기는 어려워도 기술적으로는 좀 더 쉬워서 캐나다, 프 랑스 등 표준 선진국들이 각각 와트저울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표준과학연구원도 이쪽이다.
이광철 연구원은 "kg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현재까 지 밝혀진 플랑크 상수의 값을 2018년까지 더 정확히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와트저울 연구팀과 아 보가드로 국제연구팀은 최근 정답에 거의 근접했지만,프랑스 미국 등은 아직 오차가 크다. 이 연구원은 "우리 나라도 올해말까지 장치를 완성한 뒤 외국과 실험값을 비교할 예정"이라며 "세계 6위권의 표준과학 역량을 이번 kg 프로젝트에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표준과학계는 kg의 정의가 성공적으 로 바뀌면 새로운 노벨상이 이 분야에 주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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