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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을 거니는 느낌으로

과학동아가 선정한 이달의 책 | 한 권의 물리학 |

동네 서점을 거니는 느낌으로
동네 서점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놀이터였던 시절이 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오는 서점 안을 그저 휘 둘러보면서 거니는 것만
으로, 차곡차곡 쌓인 지식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눈에 띄는 책 한 두 권을 슬쩍 들춰봤다가, 운이 좋으면 나와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 특별한 목적 없이 거닐 수 있었던 동네 서점은, 그래서 지혜의 샘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20년 전까지만 해도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의 집에는 백과사전이나 과학전집이 꼭 있었다. 그 어린이들 중 누구도 “나는 사하라 사막에 사는 회색개미의 생태에 대해 알고 싶어!”라면서 책을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넘기다 보니 눈을 잡아 이끄는, 호기심을 끌어 당기는 내용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그냥, 우연히, 76년 주기로 지구에 찾아오는 핼리혜성을 알게 됐고 아마존에 사는 고함원숭이를 만났다.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꿈을 꿨다. 무언가 꼭 찾아야겠다는 부담감 없이 들춰볼 수 있었던 백과사전은, 그래서 지혜의 샘이었다.

동네 서점과 백과사전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 이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였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였지만, 지혜의 샘일 수는 없었다. 백과사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인터넷 망에 공짜로 올라왔지만, 정작 우리가 보는 정보의 양은 더 줄어들었다. 지금 당장 꼭 필요한 정보만 검색했기 때문이다. 때론,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 몰라서 정작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지도 못한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골라내야 하는 수고로움은 또 어떤가. 무엇보다도, 우연한 깨달음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양장에, 500쪽을 훌쩍 넘기는 이 책이 결코 무겁지 않은 건 그래서다. 빅뱅에서 양자 부활까지 물리학을 완성한 250가지의 아이디어를 모은, 속이 꽉 찬 ‘물리학 백과사전’이다(백과사전 치고 얇다!). 동네 서점에서 할 일 없이 거닐다가 우연히 발견한, 반짝이는 보석 같은 느낌. 어렵지도 않다. 각 항목을 한 두 쪽 내외의 쉬운 글로 풀어냈다. 게다가 재미있는 비화가 가득하다. 현대 물리학을 완성한 중요 사건은 다 들어 있고, 전문성도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물리학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을 이 한 권에 꾹꾹 눌러 담는다는 심정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신중하게 추려냈다”고 밝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편파적으로 고른) 물리학의 중요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물리학의 큰 줄기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세세한 내용은 알기 어렵다. 그러나 거대한 지식의 섬의 중심에 접근하려면, 겉에 보이는 숲의 지형을 가늠하는 게 먼저다. 미처 알지 못했던, 물리학의 새로운 면모를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그냥 한번 들춰보자. 동네 서점을 거니는 느낌으로.

[한 컵의 과학]

 

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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