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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개저씨’와 ‘꼰대’를 위한 변명

옆집 어르신의 ‘꼰대질’에는 이유가 있다

‘개저씨’와 ‘꼰대’를 위한 변명
나이를 먹어가면서 종종 옹고집 노인이 되거나 혹은 스크루지 영감처럼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젊을 때는 별로 그렇지 않았는데, 점차 거만해지거나 혹은 무례해져서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있다. ‘노망 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편견에 가득 찬 악플을 인터넷에 잔뜩 올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고위 법조인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필자의 진료실에도, 노인이 잘못된 결정을 고집하거나 갑자기 화를 내는 증상을 보이는 바람에 치매를 걱정한 가족들이 모시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검사를 해보면 일반적인 지적 능력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 뭐가 잘못된 걸까. 잘못된 게 아니다. 그저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변한 것이다.

성격은 사고의 패턴이나 감정, 판단력 같은 인지적 능력이다. 이는 기억력과는 다른 차원의 능력이다. 또다른 인지능력인 기억력을 살펴보자. 누구나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기억력의 감퇴는 행복한 삶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복학습이나 보조기억술 등을 통해서 충분히 보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은 행복한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 성격이 변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고약하게.

젊은 뇌 유지하는 비결은 운동‘꼰대’는 숙명? 나이가 들면 완고해진다!

우선, 나이가 들면 사회적인 판단을 내리는 방법이 변한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를 생각해 보자.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은 의사 결정 패턴이 서로 다르다. 젊은 사람은 다양한 정보를 탐색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반면 노인은 기존에 이미 알고 있던 정보에 의존해서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 여러 정보를 통해 최종 결론에 이르는 방법을 ‘상향식 처리 전략’이라고 하고, 그 반대를 ‘하향식 처리 전략’ 혹은 ‘범주 기반의 판단’이라고 한다. 노인은 주로 범주 기반의 처리 전략을 택한다. 이 전략은 신속한 판단이 가능하고 인지적 노력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정보가 부정확한 경우, 즉 급변하는 환경에서 잘못된 기존 전략을 고수할 경우 틀린 판단을 내리기 쉽다. 점점 고리타분한 결정을 내리는 완고한 성격이 돼가는 것이다.

유연성도 떨어진다. 노인은 젊은 사람에 비해서 올바른 관점이 단 하나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두 개 이상의 관점을 폭넓게 수용하는 열린 인지 태도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감소한다. 더구나 노인은 판단을 할 때 그에 따른 결과보다는 수반되는 감정 반응을 더 많이 고려한다. 따라서 어떤 선택에 따른 결과가 감정적으로 불편하다면(예를 들어 현재 처한 상황이 불안하거나, 제안자의 태도가 무례하다고 느끼면), 결정을 미루거나 바꾸는 경향을 보인다.

또, 노인은 어떤 사건의 원인을 추정할 때, 젊은 사람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실패 등을 접할 때, 그 사람의 타고난 성향이 그런 결과를 불러왔으리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가 출근 시간에 지각을 하면 사람들은 그 친구가 원래부터 시간 관념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같은 일을 겪으면 ‘오늘따라 차가 많이 막혀서’라며 상황 탓으로 돌려 버리곤 한다. 이를 귀인 오류라고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런 귀인오류가 더 많이 일어난다. 특히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의 본래 성격이나 자질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속단하는 경향이 심하다. 더 놀라운 것은 행위자(예를 들면 지각을 한 사람)의 나이에 따라서 이런 판단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만약 부정적인 사건(지각)과 관련된 사람이 젊은 경우에는 타고난 나쁜 성향을 탓하고,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치매 위험성



‘꼰대질’의 배후, 뇌의 노화

그렇다면 이런 성격 변화의 이유는 뭘까. 신경생물학적 노화도 한 몫 한다. 나이가 들면 뇌의 영역 중 전두엽(이마 위쪽의 뇌)의 기능이 특히 떨어진다. 이 부분은 추리나 판단, 공감, 계획 등 고차원적 사고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유연한 인지적 판단을 할 때에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젊은 사람은 어려운 과제를 만나면 좌측 뇌의 활성이 두드러지게 일어나는 데 반해, 노인은 활성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하지 않은 좌측 전두엽 기능을 보상하기 위해서 우측 전두엽이 같이 활성화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뇌 기능의 전반적인 저하도 일어난다. 뇌 백질(회백색 뇌껍질에 둘러 싸인 안쪽 뇌)의 부피가 감소하는데, 이 부위는 뇌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신경다발이 위치하는 곳이다. 뇌의 여러 부분 사이의 정보 교환 속도가 점차 떨어지는 것이다. 또 각성과 기억, 학습 등에 작용하는 신경호르몬인 콜린성 신경전달물질도 많이 줄어든다. 그 결과 전처럼 명료한 정신으로 빨리 판단하고 많은 것을 기억하기 어려워진다. 노인성 치매에 사용하는 약물의 기전은 상당히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바로 이렇게 부족해진 콜린성 물질을 보충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왜 굳이 성격이 변하고 인지 기능이 떨어질까. 젊을 때처럼 우수한 기능을 유지하면 안 될까. ‘늙었으니 당연하지’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오직 인간에게서만 관찰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즉 다른 동물은 나이가 든다고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인지적 노화는 인간이 ‘너무’ 오래 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생애사 이론’이라고 한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되새겨보자. 수백만 년 전부터 인간의 뇌는 계속 크기가 증가해 왔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크면 엄마가 아기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아기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채 태어난다. 그 상태에서 아기가 엄마나 아빠가 되려면, 적어도 15년에서 20년은 걸린다. 장기간 부모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부모는 나중에 손주까지 돌봐야 하고, 사냥기술이나 도구 제작 기술도 후손에 전달해야 한다. 그러자면 수명은 긴 게 유리했다. 이런 상황이 선택압이 돼 인류의 수명은 점점 더 길어졌다. 자연계에서 폐경이 끝난 뒤에도 수십 년을 더 살아가는 포유류는 오직 인간 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소위 '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간섭이나 무례함도 당연한 것은 아니다.
 

진화가 낳은 치매 유전자

치매를 유발하는 유전자도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이다. 인간의 몸에는 콜레스테롤 대사와 관련된 세 종류의 아포지방단백질 E(Apo E)가 있다. 다른 포유류는 Apo E4라는 한 종류의 형태만 발견되는 데 반해, 인간은 예외적으로 Apo E3와 E2의 형태도 같이 관찰된다. 이 단백질은 E4→ E3→ E2의 순서로 진화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발현율은 각기 다른데, 보통 E4가 15% 발현되고 E3는 78%, E2는 7% 정도 발현된다.

이런 변이는 인류의 뇌가 커지고 수명이 길어지는 과정과 함께 일어났다. E4형은 콜레스테롤 대사를 잘하지 못하는 단백질인데, 장수에 적합하지 않고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취약해 인류의 유전자 풀에서 E3나 E2로 점차 대치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E4유전자를 하나 이상 가진 사람은 수명이 4년 이상 짧아지고, 폐경도 더 일찍 일어난다. E3를 가진 사람보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릴 확률이 3배 높다. 심지어 E4유전자를 두 개 가진 사람은 치매 확률이 무려 5~10배까지 높아진다. 반대로 E2를 가진 사람은 치매의 위험율이 상당히 낮아지고, 보다 오래 사는 편이다.

이렇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더 이상 생식을 하지 못하는 나이가 돼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인지 능력의 노화가 일어날 때까지도 살아야만 하는 것은, 자식이 충분히 클 때까지 보살펴야만 하는 부모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나이들어 좋을 때도 있다

나이가 든다고 성격의 부정적인 변화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노화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 맥락에 대한 이해등을 통해서 이른바 ‘지혜’를 발달시키기도 한다. 현명함을 측정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도 지혜는 감소하지 않고 일부에서는 더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게다가 노인은 더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노인은 희망적인 정보에 보다 주목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충동성이 줄고 신중함이 늘어나서 성급한 실수도 줄어든다. 또 대인관계를 단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으로 여기는 젊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들면 관계 자체에서 오는 감정적 교류를 보다 중시 여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와 장시간 즐거운 정서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젊은 엄마보다는 오히려 연세가 많은 할머니인 경우가 많다.

노화는 인간이라면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예술가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 엄청난 창조성과 유연성을 선보이며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제2의 전성기를 이른바 ‘백조의 노래’ 현상(일생 동안 노래하지 않는 백조가 죽기 직전에 아름다운 노래를 한다는 서양 속설에서 비롯함)이라고 한다. 수천 명의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 실적은 50~60대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됐다. 나이가 들어도 하지 못할 것은 없다. 노화는 두려워하며 피하고 싶은 운명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고 기쁘게 누려야 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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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 에디터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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