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5/03/168550415551237b42654d.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5/03/1882778278551238caa3c27.jpg)
2013년 경남 진해 벚꽃은 3월 21일 개화했다. 당초 기상청 예보는 3월 28일이었다.
결국 군항제는 벚꽃이 만개한 4월 1일에 열렸다.
봄 꽃 축제 망친 개화 시기 예보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지자체들이 울상이다. 기상청이 예측한 개화 시기가 자꾸 빗나가기 때문. 그 바람에 몇몇 지역에서는 ‘꽃 없는 꽃 축제’가 열리거나 벚꽃이 지기 직전에 개막하기도 했다. 2013년 기상청은 경남 진해 벚꽃이 3월 28일쯤 필 거라고 예보했다. 실제로는 이보다 7일 빠른 3월 21일에 개화했다. 벚꽃은 개화부터 만개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꽃보다 짧은, 약 1주일에 불과하다. 진해 최대 꽃 축제인 군항제는 결국 4월 1일, 벚꽃이 절정인 상태로 개막했다. 2010년에는 기상청이 예보를 세 번이나 바꿨는데, 야속하게도 벚꽃은 결국 마지막 예보보다 하루 늦은 4월 12일 개화했다. 기상청은 체면을 구길 대로 구겼다.
왜 자꾸 예보가 빗나가는 걸까. 기상청이 봄 꽃의 개화 시기를 예측해온 방법은 다음과 같다. 주요 도시와 벚꽃 군락지에는 그 지역에 벚꽃이 폈는지 판단하는 표준 나무가 따로 있다. 서울의 경우, 종로구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에 있는 대표 벚나무에 꽃이 세송이 이상 펴야만 공식적으로 벚꽃이 개화했다고 본다(만약 과학동아 사옥이 있는 용산에만 폈다면, 그 해 서울에는 공식적으로 벚꽃이 피지 않은 셈이다). 여의도 벚꽃 군락지는 국회의사당 뒤에 있는, 영등포 구청 관리번호 118, 119, 120번 나무가 표준 나무다. 기상청은 이들 표준 나무가 과거 꽃을 피운 시기와 장기 기후자료로부터 얻은 관계식(회귀식)을 이용해, 올해 봄 꽃이 언제 고개를 내밀지 예측한다.
문제는 이 같은 방법이 과거의 통계만을 기반으로 한다는 데 있다. 회귀식이 도출되지 않은, 다시 말해 장기 관측자료가 없는 지역에서는 예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만약 현재가 과거와 다른 이상 기후를 보이면 회귀식이 잘 맞지 않는다. 말 그대로 통계를 벗어나는 예외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시기를 더 정확히 예측할 방법은 없을까.
‘생물계절’을 이용하면 가능하다. 생물계절이란 동식물이 계절에 따라 반복해서 보이는 변화다. 식물의 발아 · 성장 · 개화 · 결실 · 낙엽 · 고사 등과 동물의 겨울잠· 발정 · 분만 등이 속한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전국 73개 기상관서에서 매년 생물계절을 관측한다. 동식물 성장의 규칙성은 물론 예외적인 환경변화가 있을 때 보이는 변동성도 연구한다. 이런 데이터가 쌓이면 기온 변화에 따라 식물이 언제 꽃을 피울지역으로 알 수 있다. 이런 방법론을 ‘생물계절모형’이라고 부른다. 손경수 기상청 기상기술융합팀 주무관은 “매일 관측된 기온 변화를 개화 예측에 바로 반영할 수 있는 생물계절모형을 개발했고, 2년 전부터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물계절모형](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5/03/1631580542551239101632f.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5/03/16460077375512391bb5fc5.jpg)
봄의 ‘온기’로 개화 시간 안다
이 모형은 10여 년 전 이탈리아 생물기상연구소(IBIMET)가 개발했다. 온대수목의 꽃눈 분화 · 휴면 · 발아 · 개화 등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시간과 온도 개념을 붙인 ‘냉각량’과 ‘가온량’으로 표현한다. 개나리나 벚꽃처럼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전 해 여름부터 꽃 피울 준비에 돌입한다. 일부 조직으로 훗날 꽃이 될 싹인 꽃눈을 만든다.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면 얼어 죽지 않도록 겨울잠에 든다. 살아있지만 더 이상 크지 않는 상태인 ‘내생휴면’이다. 겨울잠에서 깨려면 겨우내 일정량 이상의 추위를 견뎌야만 하는데, 이 추위의 총량을 ‘냉각량’이라고 한다. 물컵에 물을 채우듯 매일 냉각량이 차곡차곡 쌓여 기준을 넘기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날씨가 충분히 따뜻하지 않으면 꽃눈 껍질을 터뜨리지 않고 기다리는데, 겉으로 보기엔 계속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강제휴면’ 상태다.
날이 따뜻해지면 비로소 꽃눈이 터진다. 꽃을 피우기까지, 이번에는 따뜻한 온도에 일정 시간 이상 노출돼야 한다. 이를 ‘가온량’이라고 부른다. 매일 기록된 가온량이 기준을 넘기는 시기가 바로 예상 개화일이다. 기준은 식물종마다 다르다. 이은주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개화까지 필요한 가온량을 개나리는 84.2, 진달래는 96.1, 왕벚나무는 106.2로 추정했다. 벚나무는 개나리보다 따뜻한 기온에 더 오래 노출돼야만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기존의 회귀식만 이용했을 때는 전국적으로 3일에서 1주일까지 예보가 어긋났지만, 생물계절모형을 이용했더니 오차가 최대 2일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식물의 개화 과정을 분자 수준으로 파헤치면 보다 정확한 예보가 가능하다. 개화유전자를 추적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기온이 올라가면 식물은 평소 개화유전자를 방해하는 FLM과 SVP 단백질의 양을 줄여 결국 꽃을 피운다. 이상고온이 계속되면 단백질이 더 빨리 줄어들면서 개화가 앞당겨진다. 따라서 이들 단백질의 양이 줄어드는 양상을 포착하면 개화 시기도 알 수 있다. 개화유전자도 마찬가지다. 안지훈 고려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애기장대의 경우, 개화와 관련된 AP1 유전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4~5일 안에 꽃이 핀다”며 “개화와 관련된 유전자나 호르몬, 단백질의 양을 재면 꽃이 언제 필지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홋카이도대 환경과학과 아키코 사타케 교수팀은 유채과 식물인 자주장대나물의 개화유전자 발현량으로부터 개화 시기를 추정하는 데 성공해, 2013년 8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온도 조건에서 개화를 억제하는 FLC 유전자와 FT 유전자(개화호르몬)의 발현량 변화를 관찰한 뒤, 이를 바탕으로 야외의 복잡한 온도 조건에서 개화 시기를 정확히 맞췄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분자생물학적 예측모델 가운데 상용화된 것은 아직 없다. 생물계절모형보다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추정오차 1~2일 내 예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로 예측할 수 있는 정도보다 식물이 훨씬 민감하게 기온에 반응한다. 안 교수는 “기상청도 개화와 관련한 유전자나 호르몬을 이용해 개화 시기를 추정하는 기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런 한계 때문에 실제로 적용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5/03/54974903255123a2465ee1.jpg)
꽃이 피는 시기를 미리 아는 건 중요하다. 개화 정보는 축제 준비 외에도 농업, 종 다양성, 생태, 자연자원 관리, 교육, 원예, 보건, 환경 홍보, 여행, 레저, 스포츠 등 다방면에 이용된다. 가령, 배나 복숭아, 사과 등 주요 과수의 개화기를 추정하면 과수농가가 1년 재배 계획을 세우거나 늦서리 피해를 적극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쓰든, 추정오차는 당분간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때문에 기온 예측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상 기온은 개화 시기를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다. 예상 기온이 틀리면 예상 개화일도 틀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가 바로 그런 경우다. 2월 기온과 3월 예상 기온으로부터 벚꽃 개화 시기를 추정해 예보를 냈는데, 그 다음날부터 3월 내내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됐다. 급기야 서울 벚꽃은 3월 28일 개화했다. 평년보다 13일, 한 해 전보다는 무려 18일이나 빨랐다. 서울에서 3월에 벚꽃이 핀 건 1922년 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만약 겨울이 너무 따뜻해져 벚나무가 냉각량을 채우지 못하면, 아예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꽃 축제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매년 기상청 꽃 예보가 엇나간다고 화를 내는 동안, 우리는 정작 중요한 걸 잊고 있었던 게 아닐까. 봄 꽃이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늦게 피는 이유 말이다. 올해는 이상기후도 없고 예보도 정확히 들어맞아, 봄 꽃의 화려한 춤사위를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