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릉거리는 자동차 소리에 눈을 떴다. 환한 햇살이 나를 반겼다. 지구의 온기였다. 1년 동안 화성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마다 따스한 햇살이나 새소리가 부드럽게 깨우는 지구의 아침을 생각했다. 아니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돌아오니 실상은 달랐다. 해가 뜨고 새가 울기 전에, 먼저 골목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래, 지구는 붐볐지.’
돌이켜보면 화성의 적막함이 특이한 경험이었다. 화성에 있을 때는 지구의 북적거림이 그렇게 그리웠는데, 지구에 오니 다시 화성의 고요함이 간절해진다.

➋ 착륙하는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 주변 환경을 읽는 라이다 기술이 적용됐다. 두 기술 모두 지구에서 응용 중이다.

우주선 열기 막던 방열 재료
오가는 시간과 훈련 기간까지 포함해 5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의 삶은 꽤 변해 있었다. 연구소에서 최 박사가 바이오디젤을 연료로 하는 무인자동차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 차체가 탄소강화섬유로 만들어졌는데,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꽤 먼 길을 달려 왔는데도 그리 뜨겁지 않았다. 엔진과 배기관의 열을 차단해 주는 ‘새트피시에스(SatPCS)’라는 재료 덕분이었다. 이 재료는 원래 우주왕복선의 방열장치를 긴급 보수하기 위해 개발된 SMP-10이라는 재료를 지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다.
우주왕복선은 비행할 때 극단적인 고온을 경험한다. 특히 맨 앞 부분이 심한데, 아무리 탄소강화재료를 써도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
SMP-10은 바로 이런 응급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폴리머 형태라 작업할 땐 손쉽고, 약 815℃ 이상의 고온이 되면 저절로 내열성이 좋은 세라믹으로 변해 튼튼했다. SMP-10은 화성 궤도에 진입할 때는 물론, 지구로 귀환할 때도 매우 유용했다. 실제로 우리가 화성을 떠날 때 우주선의 방열장치 일부가 손상됐는데, 지구 궤도에 진입하기 전에 발견하고 SMP-10으로 수리했다. 내 생명을 구해 준 이 재료가 이제는 자동차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차를 타자 자동주행 모드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3차원 플래시 라이다(3D flash LIDAR) 카메라를 장착한 자동차는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주행했다. 자동차 전면에 표시된 홀로그램으로 주변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원래 화성 표면의 안전 착륙 장소를 찾거나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우주선을 도킹시킬 때 충돌하지 않도록 개발된 카메라였는데 이제는 항공기는 물론 자동차에도 사용되고 있다.
주위를 달리는 바이오 디젤 자동차를 바라봤다. 예전의 디젤 자동차에서 나왔던 검은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점이 신기했다. 검은 연기는 연료에 있던 탄소 성분이 완전히 연소되지 않고 배출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우주선 내부에 사용되던 광촉매 코팅 기술이 자동차 배기관에 적용되자 완전연소가 가능해졌고, 이제는 검은 연기가 눈에 띄게 사라졌다.
토사 녹여 황사 줄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3월 초인데도 맑은 가을하늘 같은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매년 초봄부터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던 황사도 달 탐사 과정에서 개발된 마이크로파 용융 기술을 통해 억제할 수 있게 됐다. 원래 달표면의 토사로부터 월면전차나 116장비가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었다. 마치 도로를 만들 듯 토사를 녹여서 굳히는 식이다. 이 기술을 내몽골의 황사 발생 지역에 적용했더니 황사가 뚜렷이 줄었다.
잠시 후 차량은 2km 길이의 터널로 들어갔다. 터널 상부에는 공기 순환용 팬이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 있었다. 이 터널은 내가 화성으로 떠나기 전부터 있던 것인데, 실은 이곳에도 오래 전부터 우주 기술이 적용돼 있었다. MSFC-398이라는 알루미늄계 고강도 경량합금은 고온에서 강도가 탁월해 우주선의 엔진 부품으로 이용됐다. 이 재료는 곧바로 터널 건설업자들의 눈에 들었다. 만약 터널 내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연기와 유독가스를 빠른 시간에 제거해야 한다. 선풍기로 연기를 날리듯, 공기순환용 팬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런데 팬이 불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면 정작 화재 때 무용지물이니 고민이 많았다. MSFC-398은 400℃의 높은 온도에서 2시간 동안 고속으로 작동해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재료였기에, 곧 터널에 널리 이용됐다.
터널을 통과하자 멀리서 항공우주연구소의 새로운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우주선 모양의 수려한 외관에, 표면은 우주선에서 사용되는 낯익은 태양광 전지 패널로 둘러싸여 있었다. 건물에서 사용되는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으로 공급받는 친환경 빌딩이었다. 태양광 전지의 표면은 우주 기술로 개발된 처리기술(상온습식화학증착, RTWCG 프로세싱)을 이용했다. 표면에 얇은 산화막을 만들어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표면에 산화티타늄 코팅도 해, 따로 청소하지 않아도 항상 깨끗한 표면을 유지할 수 있다.
새로운 항공우주연구소 건물 건너편에는 제철소가 세워져 있었다. 철 이외의 금속 자원이 대부분 고갈되면서, 철은 탄소 강화 섬유와 함께 가장 중요한 소재로 각광 받고 있다. 제철소에서는 이전까지 사용되지 않던 저급 광석과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넣어 철강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미분탄(입자 크기가 0.5mm 이하의 아주 잔 가루로 된 석탄) 고압 연소 기술이다. 이 기술은 원래 우주왕복선의 추진체 연소 기술이었다. 지금은 합성가스를 만들어 전기를 생산하는 데에도 쓰고 있다. 기존 기술보다 설치비용이 10~20% 싸고, 이산화탄소도 10% 적게 나온다.
새로운 우주 임무를 꿈꾸는 큐브샛
연구소에 도착하자, 최 박사가 놀라운 말을 했다.
“화성 유인탐사는 성공적이었어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정반대의 아이디어가 제기되고 있답니다.”
정반대라니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최 박사가 “큐브샛”이라고 말해줬다.
큐브샛은 20세기 말 미국에서 개발된 초소형 위성이다. 가로, 세로, 높이 각각 10cm의 정육면체형 기기를 기본 단위(1U라고 한다)로 하고, 이 기본 단위를 두세 개 연결해서 길게 만들기도 한다. 큐브샛은 개방형 위성이라 안에 통신, 생명과학, 재료 등의 실험 장비를 자유자재로 탑재할 수 있다. 첫 개발 이후 발전을 계속해 왔는데, 이제 바이오 3D 프린팅 기술(생체재료로 인공 조직과 장기를 만드는 기술)과 DIY생물학의 대중화로 활용이 정점에 달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특히 생물학과 재료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6년부터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진새트-1(GeneSat-1)’ 등, 정육면체 세 개 크기(3U)의 위성으로 생명과학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주로 우주환경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지, 유기물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을 모니터링했죠. 우리나라는 2010년 중후반기부터 ‘한국형 바이오큐브랩’ 임무를 제안하며 이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어요.”
1kg짜리 위성 하나를 1억 원 정도면 발사할 수 있다고 했다. 굳이 비싼 국제우주정거장(ISS)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더구나 추진모듈까지 더하면 항성간 우주선 탑재물로도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노아의 방주처럼 생명체를 담아 먼 우주로 보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젠 고전이 된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플랜-B처럼.
연구실 창문 너머로 들여다 보니 젊은 과학자들이 한창 큐브샛에 실험 키트를 장착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화성 탐사와 이주라는 거대하고 긴 꿈을 꾸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작고 실용적인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전방위적인 우주시대에 돌입했다는 사실이 훅 느껴졌다.
최 박사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제 가야지? 자네 자리로.”
최 박사가 가리키는 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곳에 내가 해야 할 다음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우리 인류는 이제 더 큰 꿈을 꿀 것이다. 화성을 넘어, 더 먼 우주로의 여행이라는 꿈을. 언제 끝날지 모르고 성공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