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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따뜻한 마음이 부른 폭력

따뜻한 마음이 부른 폭력

타인의 아픔을 무시하고, 누군가를 조롱하는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공감 능력의 부재’가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4월 팽목항 앞바다에서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아이들 앞에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이 그러했다. 우리는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고 비인간적인 말을 내뱉은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공감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 폭력적으로 바뀐다.

나의 친구를 위해 적에게 ‘핫소스’를 먹여라

2014년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에 실린 연구에 의하면 공감 때문에 공격성이 높아질 수 있다. 연구팀은 두 집단에 금전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후 사연의 주인공이 상금이 걸려있는 시합에 출전한다고 알려줬다. 이때 실험 참가자들에게 주인공의 경쟁자를 방해해서 주인공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경쟁자에게 매운 핫소스를 먹이는 정도였다. 실험 결과 공감능력을 발휘한, 불행한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경쟁자를 더 많이 괴롭혔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죄를 덮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모함하는 실제 사례를 예로 들기도 했다.

생리학적으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이런 경향을 강화시킨다. 옥시토신은 유대감, 이타심과 관련15된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에는 선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 옥시토신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집단의 적이 나타났을 때는 그 적을 심하게 배척하게 만들고 내가 속한 집단 사람들을 편애하게 한다. 이렇게 공감능력 자체가 ‘도덕적’ 행동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안면수심의 행위를 공감과 항상 연관 지을 수는 없다. 악행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수의 괴물이 일으키기도 하지만, 공감할 줄 아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이 저지르기도 한다.

밀그램의 실험

공감하는 바람에 고문까지 저질러

사람들과의 ‘관계’, ‘유대’를 중시하는 편일수록 누군가 시키면 쉽게 잔인한 일을 저지른다는 연구도 있다. 연구팀은 유명한 밀그램의 실험을 재현했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참가자의 70% 이상이 단지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험대상을 고문했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그대로 재현했다. 재현된 실험에서 ‘원만성’ ‘외향성’ ‘개방성’ 같은 여러 가지 성격 특성 중에서도 쉽게 공감을 하며 다른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를 추구하는(원만성이 높은) 사람들이 더 쉽게 전기고문에 응했다. 이들은 친구나 윗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최우선이고 명령을 거슬러 심기를 불편하게 하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옳지 않은 일에도 일단 순응하고 본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또 공감과 이타심이 원리원칙, 공평성, 정의를 지키는 행동들을 방해한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가 남이가’ ‘정’ ‘의리’라는 말이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낯선 현상은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애썼을 뿐인데, 상황에 따라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관계를 먼저 생각했을 뿐이야’ 같은 사소한 동기로 우리는 얼마든지 누군가의 괴물이 될 수 있다. 원빈과 김혜자가 출연한 영화 ‘마더’를 생각해보자. 영화 속에서 엄마로 나오는 김혜자는 살인을 저지르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까지 지른다. 이 끔찍한 행동 모두 사랑하는 자식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행동이었다. 이렇게 사랑은 항상 선한 행동을 보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 엄마처럼 이미 공감하고,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정한 선행은 그 외의 사람들이나 낯선 이를 고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앞서 보았듯이 내 주변이나 나와 같은 편인 사람들만을 향한 공감과 이타심은 종종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누군가를 신실하게 아끼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이 추악한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1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작가
  • 에디터

    송준섭 기자
  • 일러스트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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