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너가 되고 우리자기♥로 바뀌는 동안 소녀와 소년의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집니다. 심야 영화 보느라, 술 한잔 하느라, 끝없는 과제(공대생!) 하느라 등. 핑계는 다양합니다만, 네, 그렇습니다. 이 밤의 끝을 잡고 함께하고 싶은 거지요. 급기야 소년은 라면 먹고 가라는 말을 남발합니다.
소년의 칭얼거림이 극에 달한 어느 날, 소녀가 큰 결심을 한 듯 말합니다. “오늘은 자기랑 더 있고 싶어.” 소년의 동공이 2배로 커지는 찰나, 소녀가 덧붙입니다. “찜질방 가자!” 저런… 소년이 휘청대네요. 여러분은 지금 소녀가 소년보다 더 먹은 3년×365일×3끼=3285 그릇 분량의 연륜을 목격하셨습니다.
전기난방이 낭비라고?
어쨌든 칼바람이 쇳소리를 내는 겨울엔 찜질방 데이트가 제격이지요. 학교 근처에 있는 ‘앗뜨거불가마’에 들어갑니다. 특유의 향이 훈훈한 공기 위에 떠도네요. “30분 뒤에 만나자.” 소년과 소녀는 예쁘게 양머리를 틀어 올리고 (비비크림을 바른) 쌩얼을 점검한 뒤, 찜질방으로 나갑니다. 후끈후끈, 가마 속에 들어 앉은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땀이 비 오듯 흐릅니다.
“자기야, 여기는 불 때는 구멍이 안 보이네. 어떻게 난방 하는 거지?” 소년이 알 리가 있나요. 민망함에 여기저기 둘러보던 소년은 벽에서 온도 조절기를 발견합니다. “이 찜질방은 전기로 하나 봐. 에잇, 고급에너지로 난방을 하다니.”
갑자기 소녀가 웃음을 터뜨립니다. “푸하하, 에너지에 고급 저급이 어디 있어? 총량은 보존되고 에너지끼리 서로 전환되는 거 몰라?” 이에 질세라, 소년이 딱 잘라 말합니다.
“전기는 연료 태워 만든 거라 고급이야.”
소녀는 열역학 제1법칙을 말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는 서로 전환될 수 있고 총량은 보존됩니다. 예컨대, 롤러코스터는 바닥과 가까워질수록 빨라집니다.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 것이지요. 만약 평평한 레일에 도달한다면 일정한 속도로 평생 달릴 겁니다. 에너지는 보존되니까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마찰 때문이죠. 운동에너지가 소리나 열 에너지로 전환돼 허공으로 날아갑니다. 때문에 에너지 보존을 생각할 땐 가능한 모든 형태의 에너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소리나 열을 다시 모아 운동에너지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소년이 말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불가능합니다. 뜨거운 커피는 식지만 식은 커피가 저절로 뜨거워지지는 않지요. 마찬가지로, 일은 열로 쉽게 바뀌지만 열을 일로 만들기란 어렵습니다.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수증기로 터빈에 연결된 발전기를 돌려 만드는 전기는 효율이 30~40%에 불과합니다. 공급된 열의 3분의 2는 허공으로 사라지지요. 열역학 관점에서 보면 전기는 열보다 3배 이상 귀한 고급에너지입니다.
“그러니까 난방 같은 저온 열에너지를 얻으려고 전기를 쓰는 건 낭비다, 이 말이야. 등유나 가스난로는 효율이 80~90%거든. 아, 물론 냄새는 좀 참아야지.”
180℃ 맥반석에서 계란은 갈색이 된다
소녀는 소년이 멋져 보였을까요, 아니면 그저 피곤했을까요? 그건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이제 캐릭터 파악하셨잖아요? 소녀가 말합니다. “계란이나 사 묵자.”
‘톡톡’ 쫄깃해 보이는 갈색 살이 드러납니다. 찜질방 데이트의 별미, 맥반석 계란입니다. 소년이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네. 시 한 편 지어볼게. 수많은 이마들에 대항하여 보지만, 너는 힘없이 벗겨지고 만다. 평생 희고 순수한 줄 알았건만, 무엇이 너를 갈변케 하였느냐. 뜨거운 맥반석이 그리도 좋았더냐. 포도당과 아미노산이 손을 잡고 춤을 추네.”
끓는 물에 익히는 삶은 계란과 달리 맥반석 계란은 고온(180℃)에 굽습니다. 달걀 흰자에는 아미노산뿐만 아니라 포도당도 들어 있는데, 고온에서 두 성분이 반응해 갈색 색소를 만들지요. 소년이 시를 마무리합니다.
“너를 감싸는 건 작은 소금 알갱이뿐. 싫어요. 혼자는 싫어요. 이 어두운 터널을 뚫고 가기엔 난 너무 푸석한 걸요. 내 친구를 불러줘요. 냉정하고 싸늘하지만 알갱이 많은 내 친구. 식혜야.”
“ㅋㅋㅋㅋㅋㅋ” 소녀가 배꼽을 잡고 뒹구네요. 오늘도 두 공대생은 끊임없이 키득거리고, 사랑은 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