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스터리는 매혹적이다. 알 듯 말 듯,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음산한 안개가 흐르고 신비로운 달빛이 떨어지는 우거진 숲은, 미스터리 사건이 일어나기 가장 좋은 장소다. 그래서일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세계에는 숲 속에 사는 괴생명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995년 8월 27일, 두 사람이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 주 쿠트네이 호숫가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숲에서 저음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호기심에 소리를 따라갔다. 지독한 악취가 났다. 그리고 곧 맞닥뜨렸다. 말로만 듣던, 북미에 종종 출몰하는 거대한 괴물인 빅풋(bigfoot)을. 익명을 요구한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그들로부터 7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키가 2.5m에 달하고 곰처럼 어두운 빛을 띠는 생물체가 무릎을 굽혀 죽은 동물을 위에서 굽어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생물체의 얼굴에는 털이 없었고 피부는 검은 가죽 같았다.
“그 동물이 무서운 눈으로 우리를 뚫어져라 봤을 때 우리를 곧 죽여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닥에서 먹이를 들어올리고는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 밀림 속으로 달아났어요. 우리가 체험했던 것을 아마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저는 그 숲 속으로 결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7년간 300명 이상이 본 괴물
두 사람 외에도 빅풋을 봤다는 목격자들은 넘쳐난다. 1964년에서 1970년까지 미국에서 빅풋을 봤다는 사람은 약 25회에 걸쳐 총 300명에 달했다. 1924년 캐나다 농부 알버트 오스트만은 자신이 빅풋 가족에게 납치당했다가 탈출했다고 주장했으며, 빅풋이 자신의 집을 습격했다거나 빅풋을 총으로 쐈다는 사람, 심지어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빅풋을 내려주고 갔다는 목격자까지 나타났다. 빅풋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발자국 외에도 사진이나 영상 같은 다양한 증거를 제시한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페터슨-김린 필름’이다. 1967년 10월 20일 로저 페터슨은 밥 김린과 함께 북캘리포니아 블러프크리크강을 따라 말을 타고 달리다가 갑자기 검은색 생물체가 걷는 것을 목격했다. 페터슨은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달리며 그 유명한 필름을 촬영했다. 완전히 털복숭이인 직립 동물은 독특하게 비틀거리며 숲으로 도망가면서 카메라를 향해 한차례 뒤를 돌아본다. 영상을 구성하는 총 952개의 프레임이 하나하나 분석됐지만, 진위여부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신비동물학(cryptozoology)자들은 빅풋을 비롯한 미확인동물을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려고 노력한다. 신비동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르나르트 회벨만스가 쓴 ‘미지의 동물을 찾아서’라는 책이 1959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신쯤으로 여겨지던 신비동물학이 일반 대중은 물론 주류 과학계의 관심을 받게 됐다. 이 책에는 알려지지 않았거나 존재 여부가 논란인 동물 100여 종이 분류돼 있다. 이를 발판으로 1982년국제신비동물학회(ISC)가 발족했다. 신비동물학자들은 빅풋이나 히말라야의 예티(설인), 러시아의 알마스등을 찾아 다니며 증거를 수집한다.
이들이 말하는 연구방법은 이전과 달리 과학적인 냄새가 나기는 한다. 예를 들어 빅풋 연구가 헨너 파렌바흐는 40년에 걸쳐 수집된 551개의 빅풋 발자국 석고 모형을 연구했다. 발자국 길이를 순서대로 늘어놓자, 가우스 정규 분포 곡선을 이뤘다. 즉 발이 매우 작은 빅풋, 매우 큰 빅풋 그리고 중간 크기 빅풋이 존재하며, 중간 빅풋이 가장 흔했던 것이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는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의 발자국을 다룬 것이 아니라면 이런 결과가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라며 “이 모든 것이 위조된 것이라면 40년 간 아주 정밀한 조작이 이뤄져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이 빅풋이 남긴 발자국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여전히 없다.

신비동물학, 과학의 탈을 쓴 거짓 신화?
한 가지 사례를 더 보자. 미국 텍사스 주의 수의사 멜바 켓첨도 열렬한 빅풋 신봉자다. 그는 수십 명이 북미 34곳에서 채취한 빅풋의 털과 혈액, 근육, 발톱, 침, 피부 등 샘플 111점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사람, 개, 소, 말, 사슴, 여우, 곰, 코요테, 늑대 등의 염기서열과 비교했다.
그 결과를 ‘데노보’라는 학술지 2012년 11월호에 발표했다. 그는 “미확인생명체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인간 종 남성과 호모 사피엔스 여성의 잡종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분명 사람의 것이었던 반면, 핵 DNA는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이는 “빅풋은 검은 털로 뒤덮인 미지의 새로운 영장류(혹은 인류)일 것이다”라는 일부 빅풋 신봉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였다. 41쪽에 달하는 이 논문은 대중과 빅풋 신봉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주류 과학계는 늘 그래왔듯 이 논문에도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켓첨의 연구는 일반적인 논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을 뿐, 그 과정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NBC 보도에 따르면, 샘플이 오염됐다는 게 가장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다.
샘플을 수집한 사람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했다. 또 재미있게도, 켓첨이 논문을 출판한 데노보라는 학술지는 출판 시점에서 불과 3주 전만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 논문을 제외한 다른 논문은 없다(지금도 이 학술지에는 켓첨의 논문 두 편만 달랑 실려 있다). 논문을 억지로 출판하기 위해 학술지를 만들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정황인 것이다.
과학과 신화, 그리고 조작의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이런 관례(?) 때문에 신비동물학은 지금까지 ‘사이비 과학’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학술지에 발표된 신비동물학 관련 논문은 위 논문 외에도 두 편이 더 있는데, 이들은 아예 작정하고 우스개로 쓴 논문이었다 (박스 기사 참조). 신비동물학에서 다루는 자료는 과학적 증거보다 목격자 증언이나 발자국,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영상 등이 대부분이며, 조작으로 밝혀진 것
도 많다.



이 때문에 권위 있는 학술지로 인정받는 ‘영국왕립학회보B’ 2014년 7월 2일자에 빅풋과 예티, 알마스 털의 DNA를 검사한 논문이 실렸다는 것은 큰 화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유전학연구소 브라이언 사익스 교수는 2012년 5월 14일, 전설속 미확인동물의 DNA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겠다며 스위스 로잔 동물박물관과 공동으로 미확인동물에서 채취된 (것으로 추정되는) 샘플을 수집한다고 보도했다. 사익스 교수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같은 고대 인류의 뼈에서 DNA를 추출해 1989년 ‘네이처’에 최초로 논문을 출판한 유명한 과학자였기에, 과학계 안팎에서 그의 도전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은 위조하거나 속일 수 없어서 완전히 객관적”이라며 과학자들의 우려를 잠재웠다.
“목격자들은 본대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주류과학계가 괴생명체의 존재를 거부한다고 생각하죠(rejected by science). 하지만 저는 불평하는 대신, 과학적 증거를 통해 신비동물의 정체를 밝히는 데 도전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빅풋 신봉자들이 물심양면으로 협조했다. 전세계에서 목격담과 샘플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사익스 교수는 신중했다. 목격담을 상세하게 보내게 한 뒤, 하나하나 검토해 샘플을 엄선했다. 그 결과 털 샘플 57개를 모았다. 그 가운데 식물 줄기나 유리 섬유로 밝혀진 20개를 제외하고 샘플 37개를 엄선했다. 연구팀은 샘플에 묻은 손때, 즉 표면 오염을 최대한 제거했다. 미국 뉴욕대 인류학과 토드 디소텔 교수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연구진은 모든 표준절차를 준수해 오염의 소지를 최대한 줄였다”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그 뒤, 샘플에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 RNA의 염기서열을 해독했다(7개는 오염이 너무 심해 결국 분석할 수 없었다). 해독된 염기서열을 유전자은행(GenBank)에 등록된 다양한 포유동물의 염기서열과 비교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빅풋’의 털은 하나같이 현존하는 종과 완벽하게 일치했다(샘플의 염기서열이 기존 염기서열과 100% 일치했다는 것 역시 샘플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30개 가운데 10개는 곰, 4개는 말, 4개는 늑대나 개, 하나는 인간, 나머지는 소, 너구리, 사슴 등이었다. 즉, 그 샘플이 발견된 지역에 원래 사는 포유류가 대부분이었다. 사익스 교수의 연구대로라면 지금까지 발견된 빅풋의 털은 모두 가짜였던 것이다.

“신비동물학 하려면 동물학 학위 필요해”
비록 이번 연구에서는 빅풋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지만,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사익스 교수는 예티샘플 두 점이 최소 4만 년 된 고대 북극곰 턱뼈와 DNA가 일치한다는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샘플들은 각각 라다크와 부탄 왕국에서 발견된 것들이었다. 그 바람에 연구팀은 히말라야 곰이 지금은 멸종한 고대 곰과 갈색곰의 잡종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후속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몰랐던 진화의 비밀을 새롭게 밝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신비동물학자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고 숲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빅풋의 존재를 밝힐 황금의 털(golden hair)을 다시 찾기 위해서 말이다. 비록 엉뚱해 보이는 연구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진짜 새로운 거대생물을 찾아 금의환향할지. 자이언트팬더, 오카피, 마운틴고릴라, 코모도도마뱀도 100여 년 전까지는 모두 전설적인 괴생물체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어느 주장이든 과학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비동물학의 아버지 베르나르트 회벨만스도 말했다. “신비동물학을 하기 위해서는 동물학 학위가 필요하다”고. 이번 연구의 진짜 의의는 바로 빅풋 신봉자와 과학자들을 연결해줬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어둡고 습한 숲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미확인동물의 존재를 신비동물학이 밝혀내길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