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감독은 주인공이 가르강튀아를 향해 갈 때 ‘커 블랙홀’과 펜로즈 과정을 이용해 극적인 이야기를 구성했다. 연료가 부족해지자, 로봇 타스와 쿠퍼는 자신이 탄 우주선을 분리시켜 블랙홀 안으로 밀어 넣고 아멜리아가 탄 우주선 본체를 에드워드 행성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다. 이론적으로 제시된 ‘펜로즈 과정’을 이용한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다”며 “한 번 더 영화를 보며 매 장면을 곱씹고 싶다”고 말했다.
일반상대성 이론을 제창한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전자기현상과 중력을 포괄하는 ‘통일장 이론’을 연구했으나 실패했다. 인터스텔라는 이 꿈을 이뤄줄 이론을 맛보기로 보여주고 있다. 쿠퍼가 블랙홀에 들어간 뒤 미지의 존재에 의해 들어가게 된 5차원 공간 안에서다. 송용선 연구원은 이 장면에서 “초끈이론이 숨겨져 있다”고 짚어냈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연에 존재하는 힘은 4가지로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강력), 약한 핵력(약력)이 있다.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은 하나로 통일됐지만, 중력은 아직까지도 나머지 힘과 통일돼 있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초끈이론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입자가 아니라 아주 작은 끈으로 보는 이론이다. 이 끈은 끊임없이 진동하는데, 진동하는 유형에 따라 고유의 성질이 생긴다. 또 수많은 차원에서 각각 고유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각종 물리법칙에도 위배되지 않는, 마치 게임에서 깍두기 같은 존재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나오는 5차원 공간은 각본가와 감독이 첨단 현대물리 이론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참신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5차원 공간에 들어간 쿠퍼는 인류를 구할 중력방정식의 실마리를 머피에게 전달한다. 손 교수에게 자문을 받은 각본답게, 쿠퍼는 전달 방법으로 ‘중력’을 선택했다.
쿠퍼가 들어간 5차원은 시공간을 초월한 곳이다. 쿠퍼는 이 공간 안에서 자신의 과거와 머피의 현재 상황을 지켜본다. 위치와 장소를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지만 파동이나 빛, 전자기력으로는 시공간에 영향을 줄 수 없다. 가능한 것은 오직 중력뿐이다. 쿠퍼는 중력을 조절해 책이나 모래를 떨어뜨려 머피와 과거의 자신에게 의사를 전달한다. 그리고 시계바늘을 중력으로 움직여 훗날 과학자가 된 머피에게 양자 중력방정식을 푸는 데 도움이 될 자료를 전달하고, 인류를 구한다. 송 연구원은 “실제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해서 5차원 공간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영화는 블랙홀의 극한성을 5차원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삼아 현실과 허구를 그럴 듯하게 섞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5차원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당연히 없다.
주인공보다 먼저 인류가 살기 적합한 외계행성을 찾아 나선 나사로 대원 12명의 희생은 숭고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토성 근처에 나타난 웜홀을 통과해 무작정 먼 우주로 떠난다. 각각의 행성이 실제로 어떤지 아무 것도 모른 채. 무모하게 보이는 이들의 탐험에는 다 이유가 있다. 김승리 변광천체그룹장의 설명에 따르면 외계행성에 대한 정보는 그 행성에서 나오는 빛의 분광 스펙트럼으로만 간접적으로, 그것도 극히 일부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 있는 8~10m급 거대 망원경에서나 분석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고, 외계 행성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분광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영화처럼 웜홀이라는 필터가 있는 이상 지구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외계행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처럼 인간이 직접 가서 무엇이 있는지 확인한 뒤, 웜홀을 통해 정보를 보낼 수밖에 없다. 김 그룹장은 “케플러우주망원경이 발사된 뒤 외계행성이 7000~8000개나 발
견됐지만 행성의 구성성분이 제대로 밝혀진 것은 10개가 채 안 된다”며 “앞으로 25m 거대 마젤란 망원경이 완성되면 외계행성에 대한 정보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스텔라는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분명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허구가 있는 SF영화다. 항성간 여행을 하는 우주선과 우주에 임시 거주지를 만들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면 지구를 살기 좋은 곳으로 개조하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영화가 품고 있는 현대 물리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느껴보자. 4D 상영관에 간다면 몸으로 느낄 수도 있다.